[문예] 빠뜨리시아의 결혼(Boda en España)(II) (스페인의 결혼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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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뜨리시아의 결혼(Boda en España)(II) (스페인의 결혼 풍습)
시골 마을의 결혼일 경우, 마을과 집은 사나흘 이상 술렁거린다. 일종의 마을 축제인 셈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과거 한국 시골의 결혼 풍속과 같다. 가족 중심으로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모, 고모, 외삼촌, 삼촌 할 것 없이 분담해서 음식을 준비해 모으게 된다.
‘데스뻬디다 데 노비아’라는 행사는 아가씨로서의 마지막 날임을 서운해하고 기념해 주는 여자들만의 축제다. 신부 친구들이 몰려오고 그날만큼은 마음대로 모든 것을 풀어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끼리끼리 어울려 평소에 가 보지 못한 곳을 대담하게 찾아가기도 하고 진한 농담과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남자들도 이런 모임을 하긴 하지만 여자들이 느끼는 통쾌함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드디어 결혼식.
결혼식을 담당한 사제는 관례대로 신랑과 신부에게 자유의지에 따라 결혼이 이뤄지는 것인지를 묻고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즐겁거나 슬프거나 항상 서로 사랑할 것인지 다짐받는다. 결혼 당사자의 대답이 있으면 사랑과 결합의 징표로서 결혼반지가 교환되고 사제는 “하느님이 맺어 준 결혼이니 하느님이 아닌 사람이 이 결합을 가를 수 없다”는 말을 해 준다.
특이한 것은 남편이 벌어들인 금전은 교회를 위해서 헌금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는 것인데, 이 규정에 따라 행해지는 특별한 의식이 준비되어 있다. 맨 위에서 신랑이 동전 한 움큼을 떨어뜨리면 바로 밑에서 신부가 손으로 받으며, 신부의 손 밑에는 사제의 손이 있어 그것을 이어서 받는다. 과정과 모양을 나쁘게 볼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람이 벌어들이는 것은 신에게서 왔으며 다시 신에게로 돌아가야 정상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해된다.
예식이 끝나면 성당 문을 나오는 신랑 신부에게 사방에서 쌀 세례가 쏟아지고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게 살고 아이들 잘 낳아 기르라는 복된 바람의 표현이다. 이렇게 해서 성당에서의 예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피로연이 또 다른 결혼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은 결혼식 날의 주인공이다. 주변에서도 이들이 스스로 주인공임을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신랑과 신부는 새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포도주 한 잔을 마신 후 동시에 뒤로 던져 잔을 깬다. 이전의 모든 것은 버리고, 한 사람의 것이 이제는 두 사람 공동의 것이 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잔을 깨는 것이 불길하다는 한국의 통념과는 달리 스페인에서는 인생의 새 출발이란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마을의 널따란 공간에는 결혼식에 참석한 모두를 위한 향연이 준비된다. 중앙에 신랑 신부가 자리하고 그 앞에 거대한 케이크가 준비된다. 식사가 끝나면 신랑 신부와 대모 및 대부의 춤을 시작으로 춤판이 벌어진다. 저녁에서 새벽까지 프로그램에 따라 지칠 줄 모르고 흥겹게 시간을 보낸다. 때문에 결혼식이야말로 온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는 즐거운 날이 아닐 수 없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 중에 신랑 신부와 절친한 사람들은 단지 그 결혼을 위해 정장을 구입하기도 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옷을 새로이 장만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으로 드는 비용은 꽤 많은 편이지만, 한 달에 여러 결혼식에 불려 가는 한국과는 달리 스페인 사람들은 친한 사람만을 주로 부르기 때문에 그 부담 정도도 덜하고 축하의 기분을 마음껏 나눌 수 있다. 하객 자체가 신경을 쓰고 식장에 찾아왔으니, 신랑 신부 및 그 가족은 손님 한 명 한 명을 향해 정성스러운 인사를 하고 교제의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결혼식장에 들어가면 대단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여성들의 정장은 눈부실 정도다. 흰색이나 검정 색의 단색이 주종을 이루며 남성들은 검정 색 양복 차림이 많다. 신랑은 연미복을 입는데 신랑뿐 아니라 결혼 당사자 가족의 일부도 연미복을 입으며, 친한 친구들은 한국의 신랑들이 자주 입는 턱시도를 입는다. 그 밖의 남자 하객들은 일상의 양복을 입고 간다.
스페인에서 결혼에 관련된 여러 가지 풍습 중에는 특이한 것들이 많다.
먼저 결혼식 날 비가 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며, 혼례 때 보호자 또는 증인으로 붙는 대모 격의 ‘마드리나’가 머리에 쓰고 있는 천이 떨어지면 불길한 징조라고 여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수도원을 방문하여 열두 개의 달걀을 전달하는데, 숫자의 의미로 볼 때 구원과 복을 비는 가톨릭 전통과 민간신앙이 합쳐진 것 같다. 12라는 것은 구원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신부의 속옷은 청색과 장밋빛의 붉은색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색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서양의 많은 성화에서 볼 수 있듯이, 청색과 붉은색은 성모 마리아의 색이므로 정결함과 하늘나라의 신성함, 그리고 자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신부의 옷이나 귀걸이 같은 장식품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빌린 것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도 전통이다. 결혼 생활이 원만한 사람이나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사람, 또는 아이를 잘 낳아 키우는 사람의 것을 빌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이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웨딩드레스는 신랑과 함께 고를 수 없는 품목이며 결혼식장에서 놀라움으로 그것을 바라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새로운 신부의 모습을 신랑에게 끝까지 비밀로 하고자 하는 재미있는 풍습이다. 스페인 사람들의 신혼여행지는 상당히 다양화되어, 스페인 내의 마요르까 섬이나 지중해 연안, 또는 이탈리아 쪽이나 모로코, 요즘에는 동유럽 쪽으로 가기도 하지만, 멕시코나 쿠바 등의 해안가로 가는 것을 특히 선호한다. 이국적인 분위기에다 말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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