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이가 들어 이제는 고향으로 가는 꿈을 완전히 접어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긴 여행을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오늘 아내 아나 마르띤과 딸 프란시스까를 불렀다. 사촌 바르똘로메도 불러, 서기가 쓴 유언장을 확인하라고 했다.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의 나이는 벌써 33살이 되었다. 늦게나마 후아나 베니떼스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뤄 나로부터 독립했지만, 바로 나의 옆집에 살았다. 바르똘로메는 완전한 스페인 사람이니, 그는 내가 뿌린 조선의 씨가 이 스페인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 프란시스꼬는 몇 년 전 아메리카로 떠났다. 나는 아들에게 아메리카로 건너가 더 넓은 세상을 개척하고, 언젠가는 태평양을 넘어 조선에 가서 꼭 나대신 조선을 위해 일하라는 당부했다. 나의 꿈을 아들이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동시에 세르반테스가 아메리카로 가서 하고 싶었던 모험을 내 아들이 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내가 일본에 돌아가는 것보다, 그리고 조선에 가지 못하고 일본에서 세상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아예 여기서 세상을 뜨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내가 이룬 이 꼬리아, 즉 고려에서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수많은 서양의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천주와 함께 하면 세상의 어디에 있든 중요하지 않았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살아있는 것이니, 묻히는 장소는 의미가 없다. 나는 여기서 자유를 찾았다. 한 개인에게 가장 우선 시 되는 가치다.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자기의지,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운명이라면, 그 운명 안에는 분명, 나의 자유의지가 있었다. 내가 여기 이 마을을 내 마지막 머물 자리로 선택한 것도 내 의지였다. 그 모든 것들이 실현되었기에, 나는 후회가 없다. 그리고 시간은 내가 어디를 가든 예외없이 나를 따라왔고, 이제 나의 길을 막고 나섰다. 나는 마지막 숨을 쉬던 세르반테스와의 대화를 생각했다.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