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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돈키호테, 햄릿, 그리고 파우스트 -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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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15.멕시코(Mé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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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멕시코 (México)  “네, 산 후안 바우띠스따 호는 1613년 10월 28일, 그러니까 음력으로 9월 15일, 센다이의 쑤키오우라 만을 출발했습니다. 배는 1613년 11월, 필리핀과 멕시코를 오가던 해상 항로를 타고 멕시코의 까보 멘도시노에 닿았습니다. 출발점인 일본에서 직선으로 갔을 때 태평양 넘어 첫 번째로 만나는 섬입니다. 여기서 다시 캘리포니아 반도의 해안을 따라 내려간 배는 1614년 사까뚤라를 지나, 일본을 떠난 뒤 3개월 만인 1614년 1월 25일, 아까뿔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사절단은 미리 보고를 받은 디에고 페르단데스 데 꼬르도바라는 멕시코의 부왕이 보낸 대표단으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후, 내륙지방을 2개월 이상 이동해, 1614년 3월 24일, 멕시코시티에 도착, 멕시코를 다스리는 최고 책임자인 부왕과 후안 뻬레스 주교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마침 세마나 산따, 즉 성주간이어서 4월 9일에는 일행 중 20명이 세례를 받았고, 4월 20일에는 22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4월 23일에는 주교로부터 63명이 세례를 받았으니, 저처럼 이미 일본에서 세례받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례교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절단은 다시 동쪽으로 이동, 뿌에블라를 거쳐, 베라끄루스에 도착했습니다. 1614년 6월 10일, 베라끄루스에서 산 후안 데 울로아라는 스페인 배를 타고 아바나를 거쳐, 대서양으로 나가, 스페인으로 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신부 40명 중 20명은 아메리카의 각 지역에서 내렸고, 나머지 20명은 스페인까지 동행했습니다. 140여명의 일본인과 조선인들 중 120명도 처음 기착지인 아까뿔꼬를 비롯, 멕시코시티 등 중간 기착지에 남았습니다. 사실, 멕시코 지역에 남겠다고 한 사람들은 주로 조선인이었습니다. 우선 일본을 벗어났다는 것 자체가 자유를 찾은 것이라 생각했고, 그 다음은 거기서 머물거나, 조선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접한 몇 명의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14.미션(Misi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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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미션 히데요시의 치하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있었지만, 권력이 이에야스로 넘어가면서 그 양상은 심해졌다. 권력의 이동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대립과 피바람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강력한 탄압으로 번졌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일본의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했다가 실패했던 사절단 파견을 포기하고, 일본 내에서는 무시 못 할 세도가였으며 신실한 기독교도인 마사무네에게 요청하여 사절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비센떼 권, 즉 성빈 형과 저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함께 갈 생각이었습니다. 루이스 신부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습니다. 따라서 배를 짓고, 출항 준비를 함께 했습니다만, 출발을 바로 앞두고 일본의 예수회 본부로부터 조선의 기독교 대표로 임명받은 비센떼 권이 포교를 위해 직접 조선으로 들어가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됩니다. 예수회 소속으로 포르투갈 출신인 프란시스꼬 빠체꼬 신부와 함께 우선 북경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조선의 북쪽 변방을 통해 들어가 포교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본과의 전쟁 후, 남쪽은 경계가 심하지만, 상대적으로 북쪽은 감시가 약하고, 접근이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임무를 받은 비센떼 권은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 1612년 북경을 향해 먼저 출발했고, 저는 1613년 배가 완성된 후 루이스 신부와 동쪽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비센떼 권과 저는 헤어지기 전 만나, 꼭 조선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성빈 형은 중국에서 조선으로 들어가 기독교를 알리고,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하듯이 조선에서도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으며, 저는 유럽으로 가서 조선을 알리며, 교황청에도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같은 사절단이지만, 일본인들은 일본인대로, 저희는 저희들대로 나름의 임무와 계획을 갖고, 한 명은 서쪽으로, 또 한 명은 동쪽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대단한 계획이군. 단 두 사람의 결의가 한 나라 전체를 변화시킨다는 장대한 포부가 아닐 수 없소.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13.사무라이(Samu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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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무라이   “180 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의 단장은 하세쿠라 쓰네나가였습니다 . 마사무네 휘하에 있는 사무라이이며 ,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참전하는 등 , 전투 뿐 아니라 , 항해술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 “쓰네나가는 어떤 사람이오 ? 지난 번 세례식에서 봤을 때 , 그에게서 보통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대단한 기운 같은 걸 느꼈소 . ” “네 ,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 물론 , 분명한 사무라이입니다 . 사무라이라고 하면 , 어르신께서 쓰네나가를 보고 처음 느끼셨다는 그 분위기 바로 그것입니다 . 주군에 대한 충성 , 절제와 단호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 마사무에와는 비록 세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처음부터 지원해준 그를 주군으로 따르고 , 충성을 다하는 사무라이 중의 사무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서양의 기사들이 어떤 목적과 맹세를 갖고 전쟁에 나갔는지는 모르겠으나 , 사무라이들은 어떤 명분보다도 주군의 뜻에 따라 목숨까지도 내놓는 충성도가 중요합니다 . 약한 자를 위해서 ,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전투를 하는 멋진 신사 , 정의의 신사가 돈키호테라면 , 사무라이는 이기기 위해서 , 목숨을 내놓습니다 . 자신이 아니라 , 주군이 명하는 바를 따르고 승리하는 것만이 명분이고 명예입니다 . ” “아 , 그렇군 . 그대가 말하는 사무라이와 내 소설에서의 기사 돈키호테를 비교하기는 어렵군 . 사실 돈키호테라를 기사의 표상으로 볼 수는 없소 . 그는 이 땅에 존재했던 중세의 기사와는 거리가 먼 존재요 .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그럼 , 돈키호테는 원래의 기사와 다르다는 뜻인가요 ? ” “그렇소 . 원래 서양의 기사라는 게 , 사무라이의 그것도 아니지만 , 돈키호테가 보여주는 그런 기사도 아니오 . 기사라는 것은 우리 시대에 존재하지 않소 . 다만 , 작품 속으로 들어온 기사라고나 할까 ? 중세의 기사와는 사뭇 다른 , 허구화 된 존재인 것이오 . ”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 ”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12.배(Barco San Juan Bauti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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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배  “일본으로 온 지 거의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제 나이도 서른 살에 가까워졌습니다. 예수회에 들어가자마자 저와 성빈 형은 매우 바빴습니다. 선교사들의 활동에는 늘 저희들이 동행했습니다. 초기인 1596년 한 해 만 해도, 천삼백 여명의 동포들에게 세례를 줄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포교에 전념했습니다. 저희들은 조선을 출발하기 전 세례를 받았고, 예수회 학교에서 모든 교육과정을 수료하면서, 정식 예수회 전도사, 여기서 말하는 까떼끼스따로 서임을 받았습니다. 한편, 그 사이 일본의 정세도 크게 변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조선에 있던 일본군은 세력을 잃고 패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그 분이 고안한 거북선이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용의 머리에서 불을 뿜는 전투선 말입니다.” “아, 결국 거북선이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군. 모양도, 작동하는 원리도, 참으로 내가 배우고 경험하고 싶은 그런 배임에 틀림없소. 전투 경험이 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더 그렇소.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든다는 것은, 그 만큼의 절박함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석희는 말을 이어갔다. “일본 내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넘어갔는데,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불교를 믿지만, 모든 사물에는 신이 있다고 하는 전통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조상도 신이 되며, 나무도 신이고, 우물도 신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일신을 수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거기에 기독교가 조선인들 사이에 갑자기 퍼지게 되니, 그것이 세력화될 것이란 두려움도 탄압의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에 끌려간 많은 사람들은 주로 교토와 오사카로 옮겨가기도 했고, 청소년들은 일본인들에게 팔리기도 했지만, 서양인들에게 팔려, 마카오, 필리핀, 그리고 인도로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여기 유럽까지 온 사람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박해가 심해지자 서양선교사들도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되었

[연재소설] 귀향(돈키호테를 만난 조선인) / 11.나가사키(Nagas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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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가사키 “저는 웅천 사람입니다. 일본군은 조선의 남쪽인 진해, 정확히 말하면 웅천에 진지를 구축하고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았습니다. 일본과는 뱃길도 가깝고, 배들을 정박시키기 좋은 지형적 장점이 많은 곳입니다. 당시 조선에 파견된 대장으로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있었는데, 웅천성은 고니시가 맡았고, 그 밑에는 사위인 요시토시가 있었습니다. 유키나가는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세례명을 받았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에 조선에 와있던 그의 휘하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일본에 있던 그레고리오 신부를 웅천으로 불러, 종부성사를 하도록 했답니다. 이 스페인 신부는 1593년 12월 말부터 웅천성에 머물면서 주로 일본군인들에 대한 포교와 예배, 고해성서, 종부성사 등을 했는데, 중요한 것은 진지 근처에 사는 조선인들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웅천의 병영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그레고리오 신부가 그곳에 부임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 주변에 모여든 어린이들에게 기독교를 이야기 해줬는데, 저는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그야말로 고아의 처지에 있었기에, 스페인에서 온 신부를 동행하여 왜군의 성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기본적인 일본말은 어느 정도 하였으나, 조선말은 전혀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를 통해 몇 가지 조선어를 배우는가 하면, 저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 나보다 먼저 고려 땅을 밟은 스페인 사람이 있었군. 아마 그는 예수회 신부였을 것 같소. 유럽에서 신교의 등장과 기독교 내의 혼란으로 인해 기독교는 오히려 해외로 방향을 전환했소. 세상의 소란을 등지고 신과의 조용한 합일 만을 원했던 사람들은 산 속으로 들어갔고, 종교적 논쟁을 하는 사람들은 신교와 철저히 대결하는데 전념했는데, 이 과정을 통해 기독교 자체의 문제를 직시하는 계기가 되었소. 한편, 이런 복잡한 양상을 외부로 돌려,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 신세계

[연재소설] 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9.소설(Nov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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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소설 “난 [명심보감]을 보고 깜짝 놀랐지. 우리 스페인에서도 그와 비슷한 시기, 유사한 내용으로 후안 마누엘이 쓴 [루까노르 백작]이라는 책이 있는데,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금쪽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네. 그 책도 기본 철학과 사상, 그리고 대화 형식은 동양에서 온 것이니, 그 뿌리가 페르시아나 인도까지 뻗어 있다고 말하고 있지. 말하자면 기존 서양의 책과는 다르게, 여러 상황에 따라 사람이 적절히 행해야 할 도리를 제시하는 아주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네. 그러다 보니, 오래 전부터 우리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지침서로 내려오고 있다네. 이런 이곳 사람들에게 [명심보감]은 미지의 책이었지. 고려라는 나라는 전혀 듣지 못 한 나라였으니, 내용은 물론이고, 멀리서 전해졌다는 그 자체로도 다른 책들과는 비할 바 없이 흥미를 끌었지. 이 책은 나 개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게, 내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오.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를 알게 되었고, 공자와 장자를 비롯, 동양의 많은 현자들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소. 사실, 선과 악, 그리고 자연의 이치와 하늘의 뜻에 대한 공자와 장자의 말은 나의 세계관, 우주관과 다르지 않았으니, 내 책 [돈키호테]에 무리없이 담아놓을 수 있었던 것이오.” 석희는 세르반테스가 [명심보감]을 접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 내용과 철학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음에 크게 놀랐다. “[돈키호테]가 허황되고 웃기는 이야기들로 만 채워져 있다 알려져 있는데, 심오한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니, 대단히 놀랍습니다. 거기에다 [명심보감]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니, 더욱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게, 현자들이 말하는 경구를 포함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저는 단순한 이야기들의 나열이라고 만 생각했는데….” “소설이란, 아니 문학이란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단지 내포하는 것이지. 말하자면, 간접적인 표현이라고나 할까? [명심보감]이 어떤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답을 제시한다고 보

[연재소설] 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8.명심보감(Espejo rico del claro coraz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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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심보감 “그대들이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했소?”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삶과 작품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조선이라는 이름을 상기시켰다. 참으로 기억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의 타고난 호기심이 그런 재주를 주었을 것 같다고 석희는 생각했다. 왕실에서 잠시 나눈 대화에서 자신이 처음 듣는다고 했던 나라의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 저희 나라를 지금은 조선이라고 말하지만, 루이스 신부나 포르투갈의 신부들은 꼬레아라고 불렀습니다. 꼬레아, 꼬리아, 꼬레이아…. 아까 말씀하신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왔다는 시대에 우리 조선 땅은 고려였습니다.” 세르반테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다, 주제가 바뀌자 석희와 훈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훈이가 바짝 다가 앉았다. “제가 일본에서 만난 서양 사람들은 아직 이와 비슷하게 불렀는데, 고려가 가까운 중국, 일본은 물론, 멀리 인도나 아라비아를 통해 유럽, 그리고 스페인에까지 알려지면서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중국이라고 부르고, 어르신께서는 ‘카타이’라거나 ‘치나’로 부르시지만, 사실 현재의 치나는 명나라인 것과 같습니다. 고려는 조선입니다.” “고려? 고려라고 했소?” 석희가 고려라고 하자, 세르반테스의 눈이 더욱 빛났다. “왜 그러시죠?” “[명심보감] 말이오! 고려의 추적!” 놀라는 쪽은 석희였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작가라지만 스페인 사람이 [명심보감]과 고려의 추적을 말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하하. 놀라지 마시오. 내가 책 수집가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가?” 한바탕 웃던 세르반테스가 말을 계속했다. “내 고향 알깔라 데 에나레스에 대학이 있소. 난 가난해서 거기에 입학해 공부할 엄두는 못냈지만,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은 모두 읽었다고 자부하오. 세상에 새로운 책이 나오면, 그 학교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즉시 읽어볼 방법을 찾았다오. 사실, [명심보감]이란 책에 언급한 고려라는 나라의 이름을 보고,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까울리라는 나라가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