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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돈키호테, 햄릿, 그리고 파우스트 -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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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돈키호테] 16.현실과 상상, 돈키호테와 살바도르 달리의 '남다른 눈'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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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관점, 사물을 보는 관점, 사람을 보는 관점 등, 각자 인간의 입장에서는 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이지, '존재'와 '본질'의 차이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즉, 세상에 대한 인간 중심의 해석이며, 구체적으로는 각자의 주관적 해석에 따라, 세상이 바뀐다. 아니, 세상은 그렇게 왜곡되고 만다. 존재하는 것은, 그냥 존재할 뿐인데 말이다. 굳이 양자역학을 꺼내지 않아도, 우리가 볼 때, 생명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똑같이 세상의 모든 것은 '존재'하는 범주에 포함된다. 어차피, '관점'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고, 이것이 인간이 만들고 있는 이 세상의 '모순'과 '대결', 그리고 '투쟁'과 '화해' 등 문제와 그 해결의 바탕이라고 보면, 누가 어떤 '관점'을 갖고 세상을 보고 있느냐에 '우리의 관심'이 가게 된다. 아무리 객관적인 견지를 유지하려 해도, '관점'이 주는 주관성의 뿌리 때문에, 결국 '꿈', '상상', '환상' 등이 함께 따라 붙을 여지는 너무나 많은데, 특히 돈키호테에게서,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세계에서는 이런 요소들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어, '돈키호테'를 소재로 하는 화가의 그림에 대한 감상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세상을 너무 진지하게 보지 않고, 희화화 해서 보는 것이나, 마치 몸을 완전히 거꾸로 해서 보려는 과감한 '관점'의 전환은, 초현실주의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를 광기의 돈키호테와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요소로 해석된다. 이렇게 세르반테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도 어쩔 수 없을 만큼의 '자기 독립'과 '자유의지'를 갖고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면, 살바도르 달리도 자신 만의 '비전&

[달리의 돈키호테] 15. 성모의 품으로 (살바도르 달리가 1957년 제작한 '돈키호테' 주제의 판화 12점 중 12번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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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서의 패배와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 돈키호테에게 사실 남은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우선 돈키호테의 재산 상태를 본다면, 독서를 위한 책구입과 거기에 빠져 편력을 하면서 보낸 시간 동안, 갖고 있던 것조차 탕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있었던 것도 관리하지 않았으니, 제대로 남아있을 수 없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본다면, 60대후반에 들어선, 돈키호테, 또는 세르반테스에게 모험과 글쓰기를 통해 남은 에너지도 거의 모두 소진할 상태에 있다. 여인을 향한 기사의 맹세도 편력과 모험을 통해 매우 마모되었고, 그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세상(특히, 종교적 경지)에 대한 눈을 갖게 된 돈키호테에게, 누운 침상을 박차고 일어날 이유가 사라졌다. (La Virgen María, Madona, [성모의 품으로]) 인생의 마지막 종점에 닿으면서, 신부와 그의 유언을 받은 서기가 등장하고, 조카와 가정부도 상태의 심각성을 인지한다. 특히, 돈키호테와 함께 마을로 돌아온 산초는 그가 모신 분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면서, 역시 '산초답게', 소리는 내며 엉엉 울어댄다. 진정 가슴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서러움과 아쉬움은 천둥같은 울음소리와 빗물같은 눈물로 표현된다. 산초에게 돈키호테는 인간적인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이나마 그에게 남겨주고자 한다. 그와의 동행 동안 돈키호테가 느꼈을 산초에 대한 애정과 그의 충직한 마음에 대한 댓가이면서, 못 난 자신을 믿고 , 따른 사람에 대한 당연한 마음이다.  물론, 끝내 자신이 정복한 '섬나라의 통치자'로 만들어 주겠다던 그 엄청난 꿈도 스스로 광기에 빠졌던 허황된 것임도 돈키호테는 밝힌다. 그리고 그 희생자가 산초임을 잘 안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돈키호테'에서 '알론소 끼하노'로 돌아온 그에게는 산초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깊이 배어있으며, 결국 성모의 자리에 '둘씨네아'를 올려놓고, 기관차처럼 거침없

[달리의 돈키호테](소장작품 기획전) 14. 치명적인 상처를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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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는 가족, 넓게는 사회 등 인간이 혼자 존재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에서, '나'(Yo)라는 존재의 어떤 생각과 행동은 주변에 꼭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돈키호테와 같이 아주 특이한 존재, 그리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생존의 불을 활활 태우는 사람은 주변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살아가게 된다. 열정이 가득한 돈키호테를 보면서, 그런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의 유형도 몇 가지로 정리되는데,  첫째로는, 그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즉, 돈키호테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않으니, 정면 대결로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둘째로는, 돈키호테의 이상한 행동을 수용하는 사람들인데, 그 내면을 보면, 그 수용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이 부류에 해당된다. 굳이 이익이 아니라도, 이 이상한 사람을 골려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면, 겉으로는 돈키호테가 기분이 좋을 지 모르나, 완전히 농락당하는 꼴이 된다.  셋째로는, 서로 부딪치지만 맞춰가면서 함께 동행하는 형태의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는 산초가 될 것이지만, 이런 동행조차 각자의 목적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돈키호테의 광기에 대해 바로 옆에서 반대하지만, 함께 동행함으로써 일종의 '방조자', 또는 '공조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가 없었다면, 돈키호테의 광기는 힘을 발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는 돈키호테를 집으로 데려오려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그의 광기를 잠재우고, 이성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존재들로, 조카나 가정부, 신부, 학사, 이발사 등 가족과 그를 생각 해주는 주변인물들이다. (Don Quijote Abrumado, Don Quijote Accable, [치명적인 상처를 당하다]) 크게 규정해본 네가지 유형의 인물 중에 어떤 인물이 좋고 나쁨을 말하기는 어렵다. 첫째 유형의 인물이 있었기에, 돈키호테가 그렇

[달리의 돈키호테](소장작품 기획전) 13. 이상향이 있어야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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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빠진 사람, 즉 '미친 사람'이 주인공인 [돈키호테]는, 그럼으로써 문학 작품이 갖춰야 할 다양한 가치들을 양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즉, 작가는 보다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셈인데, 먼저 형식과 내용에서 일반 상식과 크게 벗어나더라도 주인공이 갖고 있는 '미쳤다'라는 개념 때문에 어떤 것이든 용납이 될 '이유', 또는 '핑계'가 될 수 있다. 한편, '미친 경우'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사실 가장 괴롭히는 '광기'는, 일관성 있는 '미침'보다는 이랬다 저랬다, 불규칙하게 미치는 경우이다. 즉, 완전히 딴 세상의 사람이 되었다가도, 완전한 정상인이 될 때, 그리고 그것이 예측불허로 일어날 때, 주변의 사람들은 더욱 종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돈키호테의 광기가 그렇다. (Edad de Oro, L'Age d'Or, 황금시대-이상향) 이성으로 돌아온, 즉 미치지 않은 돈키호테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이성적이고, 세상의 '도'를 모두 깨우친 그런 존재로 나와, 주변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는 1권 11장에서, '이상향', 또는 '황금시대'를 말하는데, 그것은 마치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유토피아]와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내 것, 네 것'이 없는 사회, '공동생산', '공동분배', 즉 '공동소유'를 다루며, 가난하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지나친 욕심으로 자연을 파괴하지도 않으며, 서로를 위하고, 서로에게 나눠주는 참으로 이상적인 세상을 말한다. 특히, 재판을 받을 사람도 없으니, 판사도 필요없으며, 사회적 약자의 개념도 없이, 모두 자연스럽고 강요하지 않고,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시대를 말한다.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물론, 돈키호테는 이전의 세상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당시

[달리의 돈키호테](소장작품 기획전) 12. 원자폭탄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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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상상인가, 달리의 상상인가? 폭발과 함께 만들어진 엄청난 힘이 돈키호테, 아니 살바도르 달리에게 닥쳐온다. '괴물', '악마', '거인', 또는 모든 것을 삼킬 듯한 '쓰나미' 같은 위협!  20세기의 이 화가는 이 강력한 에너지에 대항하여 자신의 창과 방패를 들고 홀로 나서는데, 과거 돈키호테에게 다가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강력한, 그런 것으로 그려진다. 바로, '원자탄'(Bomba Atomica)!                          그 힘이 절대적이어서 어떤 것도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위협에, 살바도르 달리는 마치 그것이 '환상'(Fantasia)일 뿐이라고, '헛개비'라고 말하고 싶은 듯, 세기적 도전 앞에 온몸으로 대들고 있다. 과히, 돈키호테를 능가한다. (La Edad Atómica, L'ere Atomique, 원자폭탄의 시대) 돌판에다 던져 잉크가 만들어낸 자연스런 형체에서 새의 머리와 몸통을 확인했는지, 화가는 새의 다리를 넣어 완전한 새를 만든다. 전설 속 '새'(Quimera)의 부리에 돈키호테의 방패가 닿고 있으니, 이 역시 돈키호테에게 또 다른 도전이다. 어쩌면 새가 아니라, 마법사가 '새'로 변신한 '요괴'인 것이고, 기사는 이런 요사스런 존재를 물리쳐야 한다. 잘 만 된다면, 무찌르고 달래서 그 위에 타고 하늘을 날고 싶은 게 돈키호테의 마음일 것이다. 붉은 잉크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분명 '전투'면서 '상처'다. 그리고 그 위에는 작품 제작 시에 소라를 통해 만들어낸 자국은 오래된 신화 속 거대한 거북과도 같은 형체를 갖고 있다. 돈키호테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의 대결'이 '인생', '인간의 삶'이라고 본다면,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가 신봉하고 있는 여인, 둘씨네아를 구하기 위

[달리의 돈키호테] 11. 비겁한 가짜 기사,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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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어떻게 읽었느냐에 따라, [돈키호테]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피상적으로 말하듯이 '참 재미있는 책'이라고 덤벼서 읽을 경우, 사실 그 '재미'를 찾기 어려운 게 이 책이다.  아울러, 작품의 길이를 보건대, 우리가 보통 대하는 [돈키호테]라는 책과 이야기들은, 어쩌면 축약된 것, 또는 몇 몇 흥미로운 것 만을 모아놓은 '선별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돈키호테] 1, 2권을 모두 읽은 사람은 사실 상 많지 않다. 물론, 스페인 사람들 중에,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을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작품을 여러 번 읽고, 더 깊이 읽는 경우라면, 결코 이 작품이 '참 재미있다'라는 표현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게 되며, 소설이라는 이 작품의 장르조차, '과연 이 작품이 소설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작가의 일관적인 주장이나, 사안에 대한 규정 역시, '과연 이 사람이 어떤 구체적인 주장을 했는 지'에 대해 참으로 궁금해진다. (Odres de Vino, Les Outres de Vin, 포도주 주머니) 이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가 '이상하지만, 멋진 기사', '햄릿의 성격과 정반대의 과감한 기사', '정의의 기사'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 작품의 이것 저것을 읽다보면, '이 인물이 과연 그런 평가를 받을 만 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작품 중 돈키호테는 용감하고 저돌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이상한 행위로 인해 함께 동행한 '산초'가 고초를 겪은 경우가 많으며, 그 광경을 보고도 안타깝지만, 모르는 체 하고 있는 게 '돈키호테'다. 산초가 말리는 가운데, 스스로의 환상에 빠져 저돌적으로 달려가지만, 사실 '진짜 거인'이 아닌, '풍차'라던가, 아니면 '포도주 보

[달리의 돈키호테] 10. 내 아가씨가 최고 예쁜거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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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가 주변과 부딪치는 이유의 근본으로 내려가면, 바로 '절대성의 강요'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 예의 핵심이 '둘씨네아'(Dulcinea)인데, 그 만이 정한 이 여인에 대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다른 상대에게 무조건 수용하라고 하니, 상대가 '보지도 않았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해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돈키호테는 둘씨네아를 성모 마리아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는데, 반기독교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기사로서 성모의 자리에 둘씨네아를 올려놓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Aparición de Dulcinea, Apparition de Dulcinea, 둘씨네아의 현현) 그렇다면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돈키호테는 또 다른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기독교의 세상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절대성'(Absolutismo)을 가지면서,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존재였고, 그 누구도 '반기'(Rebeldia)를 들 수 없었지만, 이미 변화된 사회, 즉 돈키호테가 발로 밟고있는 사회에서는, 그 절대성이 상실된, '상대성'(Relativismo)의 시대에 사람들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 중에, "라 만차의 위대한 여인, 또보소의 둘씨네아와 비교될 만한 여인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녀를 보지 않고도, 믿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맹세하고, 그녀를 보호하는 것이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둘씨네아에게 성모 마리아의 절대성을 부여하여 사람들에게 강요하지만, 그것을 수용할 사람은 없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여인이 있고, 보고 만져야 만이 인정하고 믿는 시대에 와있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이런 것 저런 것을 다발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기사의 잘못 된 점을 비판하는가 하면, 동시에 시대착오적 기사를 통해, 자신이

[달리의 돈키호테] 9. 독자님 맘대로 판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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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에 대해서는 일정의 형식을 지켜야 헸다. 우선, 책의 가격(Tasa)을 정하는 것도 특별한 승인을 받아야 했으며, 원본과 다름이 없다는 확인(Testimonio de las Erratas)의 글도 있어야 했다. 아울러, 이 책이 독자들에게 '유용하다'는 점, 그래서 인쇄하기에 충분하다는 점(Previlegio Real)도 인정받아야 했다. 물론, 보통의 책들은 인쇄 등 제작비를 대는 사람에게 헌사(Dedicatoria)를 받쳤는데, 세르반테스는 베하르공작(Duque Bejar) 에게 하고 있다. 이런 형식적인 승인과 더불어, 그는 역시 작품의 서문을 썼는데, 대부분이 그렇듯이, 서문이지만 맨 마지막에 쓰는 경향이 있어,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철학, 그리고 작품의 의도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르반테스 역시, 당시 글쓰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 및 작품에 대한 자신의 역할과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역할, 즉 작품에 대한 독자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내고 있다. 특히, 당시 중요하게 대두되었던, '자유의지'(Libre Albedrio)를 언급하면서, 독자들은 얼마든지 자신들의 의지대로 작품에 대해 찬사나 비판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왕'이라도 말릴 수 없다고 해,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의 독립성 및 독자의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동시에 당시 사회에서 창작을 압박했던 '검열'이나 '종교재판' 등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글쓰는 사람들, 즉 '연극'이나 '시', '소설'의 세계에서 작가들은 "눈물로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 세태라고 지적하고, 독자는 작품의 친구도 가족도 아니니, 어떠한 두려움도 갖지 말고 맘대로 해석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서문에 적어두었다. 물론, 이런 세르반테스의 창작 태도는 작가 자신도 '신소설'(당시 주류는 목가소설, 악자소설,

[달리의 돈키호테] 8. 기사가 되다! (1권과 2권의 제목이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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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금부터 나는 기사다"라고 한다면 과연 기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스스로를 기사라고 칭할 수는 있겠지만, 모험이라는 것이 늘 상대가 있는 것이어서, 기사이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될 때, '기사' 대 '기사'로서의 결투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길 수 있다. 즉, 책을 읽고 무작정 집을 나와 밖으로 걸었지만, 돈키호테의 머리 속에 남은 가장 첫 번째 과제는, 첫 번째 모험보다도 자신이 공식적으로 '기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기사'라는 '칭호', 그리고 그에 맞는 '복장' 등 내면에서 다짐한 '기사'로서의 다짐과 함께, 형식적인 조건도 갖춰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Don Quijote, Don Quixote, 돈키호테, 기사가 되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내용'(Fondo)과 함께, '형식'(Forma)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돈키호테는 스스로 '기사작위식'을 마련하는데, 객주집 주인을 통해 억지로 상황을 연출한다. 아주 이상한 손님을 맞이한 주인은 돈키호테가 정신나간 사람이라 확신하고,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발생할 여러 시끄러운 일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돈키호테가 자신을 성주로 인식, 작위를 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라고 하니, 부정할 수 없이 수용하며, 돈키호테가 충분히 수용할 만한 그런 방법대로 기사작위식을 거행한다.  물론, 이 행사 후, 돈키호테가 숙박비도 지불하지 않고 도망치듯 떠나가는 것을 잡지도 않고, 오히려 후련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돈키호테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이 원했던 기사작위식을 얻었고, 역시 돈 한 푼 내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재치를 발휘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1권 3장에서의 일이다. [기사작위식](The Accolade)(Edmund Leignton

[달리의 돈키호테] 7. 풍차? 아니, 거인! 아니, 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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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아니 '거인', 아니 '풍차'와의 대결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이라고 덤비는 장면에 먼저 관심이 가는 바는, 그의 '착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거대한 존재, 즉 '거인'이라고 알고도 허약한 자신의 몸으로 덤비는 것 자체는, 그것이 풍차든, 거인이든 실체에 상관없이 무모한, 그러나 대담한 기사로서의 '도전정신'이 발휘된 것은 사실이다. [돈키호테]의 전체를 두고, 가장 흥미롭게 읽는 부분이 이 장면인데, '스페인'과 '라 만차', 그리고 돈키호테의 기발한 상상력과 환상, 그리고 기괴한 행동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풍차들의 공격] (살바도르 다리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 마법으로 풍차가 된 거인이 돈키호테를 공격하는 것을 봤다.) 1권의 8장에서 길을 걷던 돈키호테는 30여개의 풍차를 보고, 아주 근사한 모험이 곧바로 다가온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거인들과의 결투를 통해, 기필코 거인들의 생명을 끊어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공언한다. 당연히, 그의 시종 산초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지만,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그렇게 겁이나면 비켜서서 기도나 올리라고 나무라고, 즉시 로씨난떼에 박차를 가하며 달려든다. 그림을 보면, 거대한 풍차에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돈키호테를 보면서 지르는 산초의 안타까운 탄성이 들리는 듯하다.  기사도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생기를 얻은 돈키호테의 입장에서는 '기사가 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스스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을 것이니, 마치 우리가 말하는 '신들림', 또는 '신내림'을 받은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즉, 그의 행위는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겠으나, 그에게 떠오른 환상과 상상은, 그에게는 현실이고 그 누구의 말도 수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머리 속에 이미

[달리의 돈키호테] 6. 12, 또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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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또는 13 기독교에 바탕을 둔 세계에서 '12'라는 숫자의 이면에는 '13'이라는 숫자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예수의 제자 12명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그 명단에서 예수를 배반하여 제외된 '가룟유다'를 대신하여 선발된 '맛디아'가 있었으니, 어찌보면 예수의 제자는 12이기도 하고, 13이기도 하다. 즉 제자의 인연을 맺은 사람은 13명이지만, 역시 제자의 정원은 12명이었던 것인데, 이 숫자는 '12지파', '12개월', '구원'의 의미 등 수 많은 상징이라는 점은 익히 논의되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이 숫자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즉 [돈키호테]에서도 숫자 '3'과 '12'는 아주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다른 작품 [모범소설](Novelas Ejemplares)에서도 형식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12와 13이 섞여있다. [모범소설]의 단편작품 리스트 그가 주장하듯, 소설의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단편 작품 12개를 엮어, 크게보면 하나의 [모범소설]을 만들어 냈는데, 12개는 각각이면서, 동시에 하나임을 의도적으로 썼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론, 12개 이면서 동시에 13개(La Tia Fingida를 포함할 경우)의 모습을 갖고 있음으로 확인하게 된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이런 의도를 살바도르 달리는 알고 있었을까?  '돈키호테' 테마 1957년 판화 작품은 12개이면서, 동시에 13개를 보이고 있으니, 그 문제의 작품이 [독자로서의 돈키호테](Don Quijote, el Lector)이다. 12개의 시리즈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가 판화로 만들 때 동시에 만든 작품이니, 결국 제13의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마치, '가룟유다'의 상징처럼 말이다.                                  

[달리의 돈키호테] 5. 달리의 판화 1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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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벽에 잉크를 던지다! 영원성과 순간성의 혼합 달리의 판화12점은 [돈키호테 선집[(Paginas Escogidas de Don Quijote de la Mancha, 1957)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출판된 책의 삽화로 주문되어 제작되었다. 제작은 역시 실험정신이 투철한 달리답게, 잉크가 가득채워진 공들을 큰 바위벽에 던지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형체를 뜬 후,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그림을 즉흥적으로 그려가는 방법을 취했다.                       알려지기로는 1억3천5백만 전에 형성된 넓고 평평한 바위라고 하니, 돌이 갖고 있는 '역사성'과 동시에, '현재', '즉흥성', '도전', '실험', '모험'이라는 것이 크게 대비, 혼합되는 효과를 작가는 노린 것 같다. 물론, 잉크 공이 터지면서 만들어내는 형체는 '폭발'의 이미지를 작품 속에 부여함으로써, '속도감'과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국 위에 드러난 형체를 바탕으로, 붓과 펜을 동원하여 그린 것들이 바로 12점의 '돈키호테' 시리즈의 판화로 완성되었다.

[달리의 돈키호테] 4.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그리고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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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에 대한 살바도르 달리의 관심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역시 [돈키호테]는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임은 분명하다.  작가 세르반테스와 화가 달리를 연결해봤을 때, 분명 시대가 다르고, 현역 작품 활동 시에 누렸던 명예와 경제적인 여건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너무나 차이가 나지만, 두 사람이 한 울타리에서 '쉽게' 연상되는 것은, 그리고 두 작가 사이에 '돈키호테'가 작중 인물보다는 마치 살아있는 존재로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예술의 맥'이라는 차원에서 뭔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르반테스도 [돈키호테] 등 그의 작품 곳곳에, 당시의 창작세계, 즉 '시'와 '소설', 그리고 '극'의 세계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였고, 작가로서 자신의 창작 이념과 방법에 대해서도 늘 언급하고 있었는데, 달리도 자신의 그림 작업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빈 사막에 특별한 장면들을 그릴 수 있는 그런 사람! 역사 상 점철된 수 많은 수난과 상처들이 각인되고 반영된 하나의 '배'(과일)를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그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화가다." 돈키호테가 인생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들과의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나'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 대결, 해소의 과정을 거치며, 거기서 만들어진 상처와 흔적들이 자연스럽게 각인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에게 '꿈'이나 '환상', 그리고 '광기'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처럼, 사실 달리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도, 유사한 단어들로 나열될 것 같다. 꿈 속의 세상처럼, 상상이 너무 지나치고, 마치 환상이 현실인 것처럼 표현된다. 무모하고 과할 정도의 시도는 기사의 모험과 상통하며, 몽환적 분위기에서

[달리의 돈키호테] 3. 별난 사람,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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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는 지로나(Gerona)의 피게라스(Figueras)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1904년이었고,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마드리드에서도 활동하면서 뭔가 진보적인 생각으로 시대를 앞서갔던,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이나 페데리꼬 가르시아 로르까(Federico Garcia Lorca) 등과 교분을 나누면서, 다양성과 함께 당시 시도되었던 전위적인 도전들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8년에는 스페인이라는 좁은 공간을 떠나 활동의 무대를 파리로 확장하였고, '초현실주의자'(Surrealista)라고 하는 명찰을 단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수 많은 예술가들과 만날 수가 있었으니, 스페인의 살바도르 달리가 세계의 달리로 탈바꿈하게 전기를 맞이한다.                                       특히, 루이스 부뉴엘과 함께, [안달루시아의 개](Un Perro Andaluz)라던가, [황금시대](La Edad de Oro)라는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것도 바로 이 때다. 우리가 접하는 '돈키호테'의 주제 말고도, 살바도르 달리는 문예사의 주요 인물이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려봤는데, 1965년에 나온 ´스페인 불멸의 5인`, 즉 '엘시드'(El Cid), '돈키호테'(Don Quijote), '세르반테스'(Cervantes), '엘그레꼬'(El Greco), '벨라스께스'(Velázquez) 등을 그린 바 있다.                           이 밖에도, 디에고 벨라스께스의 [브레다의 항복](La Rendicion de Breda)를 비롯하여, [돈 후안](Don Juan)을 그렸고, 단테의 [신곡](Comedia Divina)을 '지옥'(Infierno), '연옥'(Purgatorio), '천국'(P

[달리의 돈키호테] 2. 피카소에게 먼저 안부인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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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스페인미술에서 살바도르 달리를 내세우려한다면, 먼저 꼭 언급해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  스페인의 예술이 빛을 발하면서, 세계적인 인물들이 여럿 나오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20세기 최고의 스페인인으로서의 '유명세'를 말한다면, 피카소가 가장 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피카소도 '돈키호테'를 다뤘고, 그의 스타일대로 나온 로시난테(Rocinante) 위의 돈키호테와 나귀, 루시오(Rucio) 에 올라탄 산초, 그리고 그 위의 강렬한 태양의 그림은, 스페인을 상징하는 그림이 되어, 여기 저기 참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1955년 [돈키호테] 1권이 나온 350주년을 기념하여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의 [돈키호테] 그렇다! 스페인의 많은 화가는 물론, 중남미의 작가들과 세계의 많은 화가들은 '돈키호테'를 주제로 많은 그림들을 남겼으며, 아마 관계도 멀고, 지리적으로도 멀리있는 한국에서도 조차 이런 저런 이유로 돈키호테는 끈임없이 재창출될 것이다.  역시 돈키호테와 산초가 함께 등장하고, 풍차가 나오는 게 주류를 이루는 것을 보면, 작품 중 가장 흥미로우면서, 가장 돈키호테 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여러 화가들이 그린 [돈키호테] 한편, 우리의 관심은 살바도르 달리에 꽂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작품세계와 그 구현 방법, 그리고 거기서 생성되는 결과물이 특별히 돈키호테의 심장을 다시 뛰게하고, 다시 걷게 하고, 다시 모험에 뛰어들게 할 것 같은, 그런 '생명력'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돈키호테는 살바도르 달리를 통해서 제 맛이 난다는 뜻이다. 이 정도 사전 언급을 했으니, '피카소'에 실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달리의 돈키호테] 1. 역시 '돈키호테'에 대해서는 '살바도르 달리'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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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돈키호테]를 소재로 수 많은 것들이 만들어졌다. 예술의 거의 모든 장르에 이 인물은 다시 다뤄졌으며,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물론 일상 생활의 대화나 사소한 글에서도 '돈키호테'라는 인물과 그 인물의 '유형'이 언급되는 것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으며, 주인공 뿐 아니라, '산초' 등 그의 주변인물들이 늘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예외없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출생지인 스페인에서는 당연히 그 어디에서 보다도 더 많은 시도가 있었고, 지금 이 시각에도 어디에선가는 계속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역적으로 '스페인'으로 제한하고, 장르로는 '그림'에 국한해도 수 많은 화가들이 '돈키호테'를 갖고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에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가장 눈에 들어온다. 같은 소재를 갖고도 작가 각각의 특징대로 그림을 그린 것은 당연한데, 특히 살바도르 달리야 말로, 가장 돈키호테적인 상상과 실제 행동을 한 화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런 차원에서 작가 세르반테스와 등장인물 돈키호테,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를 하나의 연결선 상에서 놓고 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시도일 것이다. 그가 1957년 제작한 판화는 프랑스에서 출판된 [돈키호테 선집]의 삽입화를 위한 것이었다. 12점으로 이뤄진 작품 시리즈는 300세트를 찍었는데, 그 중에서 74번째 세트 열 두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런 계기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장 돈키호테적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해석한 돈키호테를 통해, 이들과 세르반테스를 함께 이야기하는 기회를 마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