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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돈키호테, 햄릿, 그리고 파우스트 -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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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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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옛날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는 남편을 잃었답니다. 사내 아이를 하나 두고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시부모는 젊은 며느리에게 새 삶을 찾아 떠나도록 했습니다. 정처없이 집을 나서야만 했던 엄마는 어린 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여기 감나무를 심고 간다. 만일, 이 나무가 살아나거든,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고,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거라! 아들아, 넌 꼭 굳세게 자라야 한다!” 아들은 감나무를 살리는 데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것 만이 어머니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봄이 되면 나오는 감나무 잎을 보면서, 그리고 꽃과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아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할머니의 사연을 전했습니다. 손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 나무에 대한 애정을 아버지 만큼이나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손자의 이런 마음과 행동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으로 이어졌고, <전국효행자위원회>에서 주는 최고 효자상을 받았답니다.  할머니도 안계시고, 그 아들도 떠나고, 그 아들의 아들도 떠나고, 그 아들의 손자가 그 집을 지키고 있어도, 그 감나무는 그 집 옆에 굳건히 자라, 매년 빨간 감을 자손들에게 선사합니다.

[짧은이야기] 포크레인 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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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PenEbLZNGs

[짧은이야기] 개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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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잡기 시골집에서 갑자가 돼지가 <꽤 꽥>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칠월칠석일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샘에 몰려와 있고, 아들은 낳은 사람이 대표하여 샘물을 모두 퍼내고 샘의 벽도 청소하는 날입니다. 마을 사람 모두의 축제였습니다. 닭이 갑자기 <꼬꼬 꽥>하고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는 날은 아마도 고모내외가 집에 오셨다는 뜻일 겁니다. 옛시골 집에서는 돼지, 닭, 토끼, 고양이, 개 등 여러 동물들을 키웠는데, 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에서 잡았답니다. 어느날 <깨갱>하며 나갔던 개는 반쯤 태워진 모습으로 다시 집에 찾아왔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고도 애석한 상황이어서, 봐서는 안되는 광경이었답니다. 뒤를 따라온 사나운 마을 사내들은 개를 사정없이 다시 묶어 뒷동산으로 데려갔고, 그날 저녁 밥상에 개고깃국이 올라왔고, 며칠 간 계속해서 개고기를 먹었습니다. 지구 상에 개를 잡아먹는 민족은 많이 있을 것이지만, 한민족이 그중 특별하다고 합니다. 한자의 <그럴 ‘연’>자는 원래 <그을릴 ‘연’>자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개’가 ‘불 위’에 올려있는 모습의 글자입니다. 청년들은 마을의 뒷동산 키 큰 소나무에 개를 매달아놓고, 때린 후, 바로 그 밑에 불을 지펴 개의 털을 태웠던 것이랍니다.     민족의 전통방식대로 말이죠!

[짧은이야기] 수양버들(El sauce llor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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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선생님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아이였답니다.    전쟁 후 주변이 온통 민둥 산일 때, 나라에서는 나무심기 캠페인을 하였으니, 나무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것조차 큰 죄책감을 느끼는 시기였습니다.   식목일이 다가오면서, 학교에 멋지게 서있는 수양버들을 자기 집에도 꼭 심고 싶었답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자 수양버들 한 가지라도 찾기 위해 소년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꼭 나무 밑에서 서성거렸지만, 참으로 몸이 유연한 수양버들답게 작은 한 가지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가 가고 식목일도 지나 소년의 마음이 아주 무거워진 시점에, 강한 비바람이 치는 날이 왔답니다. 이런 날 시골 마을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아무리 강한 소양버들이라도 견디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 소년은 학교 가는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풀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작은 가지를 들고, 소년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집으로 달려왔고, 수양버들을 집 대문 바로 옆에 심었답니다.   소년의 마음을 담아 나무는 커갔지만, 수양버들이 대문 옆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속설은 몰랐던 것입니다. 10년 넘게 자라 제법 곱슬한 가지를 늘어뜨릴 때 쯤, 몸둥이가 잘려졌답니다. 수양버들이 갖고 있는 주술적 해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쑥쑥 자라는 모습을 기분좋게 지키던 소년이 공부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고, 청년이 되었을 때 쯤이었답니다.   이제 학교에서도 그렇게 크고 실하게 버티고 있던 수양버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많은 동요처럼 말입니다.

[짧은이야기]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Velázquez, o el caballete fantástico)(I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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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IV-4) 나 .- 이 그림은 뭔가? 벨레스께스 .- ( 중앙의 어린 아이를 가리키며 .) 마르가리따 공주님과 여러 궁녀들일세. 제목은 ‘왕가’(Retrato de familia)이지. 나 .- 아, 이게 바로 자네가 1년 이상 끌어오고 있는 그 그림이구먼. 벨라스께스 .- 그렇다네, 난 이 그림에 내 모든 혼을 불어넣으려고 했지만, 그만 벽에 부딪히고 말았네. ( 힘없이 자리로 돌아가며 .) 거의 막바지에 왕이 자신의 모습을 마르가리따 공주 대신 그 자리에 넣어달라는 게 아니겠는가. 난 그럴 순 없었지. 이건 희망의 그림이거든. 만일 왕과 왕비가 들어온다면 그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될 수 없지. 나 .- 난, 잘 이해하기 힘들군. 왕의 명이면 그 신하로서 복종해야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왕이 공주와 함께 있다면, 당연 왕의 자리가 정 중앙에 가장 크게 그려져야 되는 게 아닐까? 더구나 왕가의 그림이라면 더욱 그렇지. 벨라스께스 .- ( 약간 화를 내서, 격앙된 목소리로 .) 모르는 소리. 이건 미래의 그림이야. 그 속에 과거가 중심에 위치한다면 말도 안돼. 미래의 그림은 미래를 준비하는 그림이며, 미래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지. 왕은 과거일 뿐이고, 그의 미래를 그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벨라스께스는 ‘왕가’란 그림에 온 정열을 쏟아 부었다. 그는 온 생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이 그림을 대했고, 스페인의 운명을 그려 넣겠다는 의도에서 더욱 숭고한 뜻을 품고 있었다. 단순한 현실을 미화하는 그런 의미보다는 스페인의 모든 것을 상징해 넣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는데, 왕이 이 그림에 참견하기 전까지는 그림이 그런대로 잘 되어가고 있었으나, 어느 날 화실을 들른 왕이 관심을 표명하면서 제안한 지시가 있은 후, 벨라스께스는 홍역 같은 긴 시름의 터널에 와있었던 것이다.                                                  Vos creéis que hay que pintar las cosas

[짧은이야기]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Velázquez, o el caballete fantástico)(I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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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IV-3) 벨라스께스는 1599년 6월 6일 세비야에서 태어난다.  이 시기는 스페인이 정치적으로 하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으며, 그가 성인이 되어 세상에 대해 더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스페인이 과거의 것을 단지 향수로 밖에는 접할 수 없었던 시점이었다.  카톨릭 양왕에서 시작된 스페인의 영광은 그들의 손자 격인 까를로스1세 때에 더욱 무르익어 갔으며, 1598년 까지 통치한 펠리뻬2세에 이르러서는 가장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그것도 잠시, 당대에 벌써 쇠락을 맛봐야 했다.  영토가 워낙 넓고, 다양한 지역에 위치하다보니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고, 전쟁과 아메리카대륙 진출로 스페인 본토의 인구는 날로 줄어만 갔다. 그리고 하락하기 시작한 스페인은 펠리뻬3세에 이어 벨라스께스가 궁정화가로 있었던 펠리뻬4세 때에는 이전 시대에 비한다면 아주 저 밑에까지 닿았던 것이다.  고향 세비야에서 처음 프란시스꼬 빠체꼬를 만나 그림을 배우게 되었고, 이 당대 그림을 대표하는 선생은 제자의 성공을 점쳤으며, 그 믿음 속에 딸을 내주기도 하였다. 그는 1622년 당대 최고의 문인인 루이스 데 공고라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마드리드와 궁정생활이 시작된다.  물론 남부 세비야를 중심으로 일어난 그림의 추세는 당시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마드리드로 상경하여 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인생에 절대적인 전환의 기회가 된 셈이다.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스페인 전통 기법을 터득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이미 그리이스 출신으로 이태리에서 공부한 뒤 스페인에 귀화해 이곳 그림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엘 그레꼬가 있었고, 띤또레또의 그림 경향 역시 마드리드 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기초가 탄탄해 질 수밖에 없었다.  1628년 유럽 땅을 전전하며 여러 활동을 한 루벤스가 스페인에 방문한 사실은 우물 안의 벨라스께스에게 중요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일이 되고 만다. 드디어 이듬해 8월 화가는 3년간

[짧은이야기]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Velázquez, o el caballete fantástico)(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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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IV-2) “가장 친한 친구시라니, 하나 여쭤 보겠습니다.” 얼굴에는 온통 털이 수북하고, 실내에서도 벗지 않는 모자를 무겁게 쓰고 있는 연출가가 담배를 길게 들이 마시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예, 말씀하시죠.” “가장 최근에 함께 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뭐 특이한 행동이라도 없었습니까? ( 갑자기 생각난 듯, 잽싸게 .) 벨라스께스? 그래요, 그가 잠자는 동안 여러 번 이런 이름을 헛소리로 흘리곤 했습니다.” “쁘라도 미술관에서 ‘라스 메니나스’를 봤습니다. 제가 미술관을 다 둘러보는 동안 그 그림 앞에 계속 앉아 있더군요. 아무 말도 없이...” Es triste no saberse pasar sin enseñar lo que uno pinta.  No es vanidad: es que siempre se pinta para alquien...  A quien no se encuentra.  Es mi pintura la que se siente sola. 나는 마드리드 중앙에 자리잡은 마요르광장에서 빠져 나와 국립극장 옆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좁은 건물 사이로 그늘이 있어, 여느 때 같으면 시원한 바람을 제공할 텐데, 지독하게도 바람 한 점 스쳐지지 않고 있었다. 정원이 바로 앞에 다가서고, 그 앞으로 거대한 석조건물이 서있다. “제기랄, 뭘 쓰지?” 아침에 일어나 의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눈감을 때부터 괴롭혀왔던, ‘뭘 쓸까’, ‘어떻게 쓸까’에 대한 물음은 더 부지런을 떨며 천장에서 날 내려보고 있었고,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을 가지고 다시 나의 목을 조여오는 것이었다. 써질 것 같은 확신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상상과 공상을 해대지만, 막상 타자기 앞에 앉으면 그것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그 금속성 소리 때문일까? 글자화하려면 아름답고 기찬 발상들이 산정의 구름처럼 빠르게 날아가 버리고 만다. 구름을 잡아 둘 수는 없다. 잡으면 구

[짧은이야기]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Velázquez, o el caballete fantástico)(I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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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IV-1) (Velazquez, o el caballete fantastico)   VELAZQUEZ .- ( Mirando .) Es curioso lo poco que nos dicen de las cosas sus tintas... Se llega a pensar si no nos estarán diciendo algo más verdadero de ellas. PAREJA .- ¿Qué señor? VELAZQUEZ .-( Lo mira y sonríe .) Que no son cosas, aunque nos lo parezcan. PAREJA .- No entiendo, señor. 작은 빛이 가물거리며 흐르던 사르수엘라 극장의 무대 위를 초조하게 거닐던 그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외치면서 뛰쳐나간 사건이 바로 일주일 전에 일어났다.  사람들은 극의 마지막 부분에 갑작스레 일어난 일을 보고 과연 극 중 상황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미친 듯이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더니, 몇 차례에 걸쳐 벽에 힘차게 부딪치는 그를, 상대하던 배우가 놀란 얼굴로 막고 나섰다.  정신병적 혼란이 있는가 하더니,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광채를 받아 빛나던 칼 끝에 닿아 호아낀 역을 하던 배우가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대단히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극장의 불이 완전히 꺼지고, 무대 위에서는 몇 명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으나, 다시 불이 켜졌을 때는 커튼이 닫히고 무대는 조용해졌다.  관객들은 순간적으로 벌어진 목전의 상황을 놓고 극이냐 현실이냐에 대한 각자의 의견에 따라 웅성거림과 함께, 한 쪽에서는 우렁찬 박수소리가 울렸던 것이다.  El actor rompe la barrera entre la ficción y la realidad, y escapa del escenario. 다음과 같은 제목 하에, 그 다음 날 아침 신문에 페르난도, 아니 세사르씨가 극중에

[짧은이야기] 세모시 옥색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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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시 옥색치마 모시는 그 굵기에 따라, ‘상저’, ‘중저’, 그리고 ‘막저’로 구분하며, 이 중에 ‘상저’는 가장 가는 것으로, 이것으로 만든 것이 ‘세모시’라고 합니다. 물론 모시 중에서 상품이고 비싼 것이니, 옛날부터 누구나 입기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모시를 만드는 여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지만 감히 세모시로 옷을 못 해 입고, 막저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시대에, 귀족의 자제도 아닌 하층민이 세모시를 입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봐야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기생들이 입었습니다! 어떻게 이들이 입을 수 있었는 지는 대충 상상이 갈 것 같습니다. 바로, 권력가들이나 돈 많은 상인들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힘깨나 쓴 던 남자들, 또는 남편들이었죠! 어떻게요?  궁궐에서 받은 이 귀한 하사품이 직접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 엉뚱한 곳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세모시는 기생들이 호사롭게 원하고 원하던 천이니, 당연히 기생 중에서도 아주 운좋은 소수 만이 그 혜택을 받았을 것입니다. 기생의 입장에서는 남자 하나 잘 둔 덕입니다. ‘모시째기’라 하여, ‘태모시’를 여인들이 하나하나 이로 쪼개서 올을 만들고, ‘모시삼기’라고 하여, 한 올 한 올씩 무릎 위에 맞이어 손바닥으로 비벼 연결시킨 후, 베틀로 직조하여 나온 것이 세모시라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그것도 며칠 간 여인들의 정성어린 손길과 노고로 빚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이 지역의 ‘소곡주’입니다. 자신들의 온갖 노동으로 만든 옷과 술이 남편들 바깥 생활, ‘일탈의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이래저래 옛 여인들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컸을 것 같습니다.   단아하면서도 화사한 세모시 옥색치마엔 이런 사연이 숨어있었군요! 모시째기(한 올 한 올 입으로 째낸다) 모시삼기(무릎 위에 올려놓고 비벼가며 모시를 잇는다)  모시삼기 소곡주

[짧은이야기] 한산모시와 가을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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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모시와 가을전어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을에 나오는 전어가 그 만큼 맛이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충청남도 서천군에는 한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마실 때는 전혀 모르다가도 일어나면서 많이 취해있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여 ‘앉은뱅이 술’이라는 이름을 얻은 ‘소곡주’의 고향이면서, ‘모시’로도 유명합니다. 모시라는 천이 만들어지기까지 참으로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남성이 할 일은 고작 모시나무를 잘라서 집으로 가져오는 일에 국한된다면, 그 다음부터의 거의 모든 과정은 여성이 담당합니다.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꾸기감기, 모시짜기 등 과정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곳 서천에서는 며느리를 고를 때, “얘야, 너 모시 잘 허니”하고 시어머니가 물어 봤다고 하며, “예, 헐 줄 알어유”라는 답이 오는 게 인터뷰 통과의 가장 큰 관문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시집 올 때, ‘베틀’을 혼수품으로 가져온다면, 어디 좀 부족하더라도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당시는 남녀 당사자들의 선택권이 거의 없었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렇게 이 지방의 여성들은 젊었을 때부터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모시와 함께 살았답니다. 특히 이 작업의 성격 상 한참 더운 여름에 해야하는 것이라, 고된 모시삼기는 물론, 농사짓기와 밥짓기, 아이돌보기, 생일 상, 제사 상 차리기 등 참으로 고생이 많은 삶을 살을 것 같습니다. 모시는 참 고약합니다. 하필 기온이 아주 높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니 말입니다. 이쯤되면 집을 떠나는 며느리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과거 여성들의 가출권이라는 게 거의 없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고 살아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가을 전어’ 때문에 나갔던 며느리가 집에 돌아온다는 상황보다는, 봄부터 여름내내 고생한 젊은 며느리에 대해 약간은 미안하고 안된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가 마침 한창 잡히는 전어를 구입해 한 입 넣어주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짧은이야기] 방풍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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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림 바닷가를 따라 길게, 참으로 우람하고 튼실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자연적으로 여기에 자리잡은 것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나라가 식민지시대를 지나,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를 잡던 시절,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온 국토에 나무심기 운동이 크게 있었습니다. 그 때 이 지역의 관리책임자가 나서서 나라에서 주는 나무를 특별히 더 많이 받아서 여기에 심었답니다. 바닷 바람과 모래 때문에 농사짓기가 어려운 땅에 벼농사를 하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당연히 설득 가능한 이유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이 땅의 주인으로 등록되었고, 공공의 목적이었던 것이 결국은 사적인 욕심때문에 국가에서 제공하는 나무도 더 확보하고, 무상으로 사람들도 동원했다고 그를 크게 비난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가 세상을 뜬 지 오래고, 이제는 그의 후손조차 이 땅을 팔고 떠났지만, 그 나무들은 세상의 이런 저런 소리에도 묵묵히 자라, 빽빽한 방품림, 멋진 자연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간 데 없고, 바닷가에 길게 늘어선 소나무숲을 보는 우리는 기분이 참으로 좋습니다.

[짧은이야기] 매바위와 왕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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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와 왕치산 바닷가 외로이 서있는 큰 바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매바위'라고 하였답니다.  매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근방 초등학교 학생들은 여기로 소풍을 오곤했기에, 나이가 들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장소가 되었답니다. 매바위 뒤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왕치산'이라는 평편한 야산이 있답니다.  산의 모양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는 꿩이 많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 근방에서 가장 명당이라고 하여, 사람들은 여기에 묘를 많이도 썼습니다. '꿩'은 '매'에게 잡아 먹힙니다. 그런데 굳이 여기가 명당이 된 것은, '매바위'가 가까이 있지만, 그 몸은 바다를 향하고 있고, 고개 만을 '왕치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꿩을 잡아먹는 매가 아니라, 꿩을 지켜주는 매라고 보면, 왕치산의 자리는 명당은 명당인 것입니다. *  雉 : 꿩 '치' 새모양을 하고 있는 절벽의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