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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 2020의 게시물 표시

[인문학강의] 당장 집 밖으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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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키호테』는 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인간과 사회를 비추는 살아 있는 고전이다. 이 작품은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말고, 결과보다 행동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자는 돈키호테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돌아보며 깊은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인간 내면의 두 자아가 공존함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메타픽션, 자기반영성, 상호텍스트성 등 현대 문학이론의 핵심 개념을 이미 담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질문하며 오늘날 SNS와 AI 시대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의미는 작가만이 아니라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현대적 독서관을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수없이 실패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과 용기를 상징한다. 결국 『돈키호테』는 행동, 자기창조, 성찰, 도전, 용기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 작품이다.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고전읽기 #행동하는용기 #자기성찰 #자기창조 #현실과이상 #실패를두려워말라 #메타픽션 #오늘의고전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21.똘레도(Tol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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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똘레도   “ 아 , 미안하오 .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고 , 내 말 만 하고 있으니 , 주책이지 . 내가 그대의 말을 끊은 것 같소 . 계속 말해보시오 .” “ 네 , 괜찮습니다 .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면서 , 참으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 꼬르도바를 출발한 우리 일행은 뿌에르또 라피세를 지나 , 똘레도에 도착 , 주교의 안내로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 성당은 대단히 컸습니다 . 기둥이 길고 높게 뻗어있어 그야말로 웅장함 , 그 자체였습니다 . 성당의 내부는 그리스 출신의 엘 그레꼬라는 화가가 그린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 [ 목동들의 경배 ], [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 [ 성령강림 ], [ 예수의 부활 ] 등 , 좀 특이하게 그려진 작품들인데 , 주교께서는 하나하나 친절하게 소개해주셨습니다 . 화가는 작년 4 월 이국의 땅 , 스페인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 도시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는데 , 따호라고 하는 강이 높게 솟은 도시를 감싸고 흐르고 있어 , 도시는 마치 섬처럼 보였습니다 . 우리 일행은 마드리드를 향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 그 주변에는 여러 상점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 다마스키야도라는 금세공품을 비롯 , 칼을 만들어 파는 게 눈에 들어왔는데 , 칼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며 , 아메리카로 많이 수출된다고 합니다 . 책을 거래하는 가게들도 눈에 띄었는데 , 제법 많은 책이 거래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저에게는 아주 신기한 모습이었습니다 . 똘레도에서 나와서는 헤타페를 지나 마드리드에 도착했는데 , 우리 일행은 가는 곳마다 ,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 모두 루이스 신부가 준비를 잘 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 덕분에 각 지역에 있는 수도원에서 묵을 수 있었고 , 왕실은 물론 , 지역의 귀족들로부터도 환대를 받았습니다 . 이상한 머리 모양에 , 허리와 어깨에는 칼을 차고 ,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동양의 사무라이 옷차림은 스페인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을 겁니다 . 저희들의 행...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20.과달끼비르(El río Guadalquiv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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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과달끼비르 “ 내 말이 길어졌군 . 미안하오 . 그래 , 베라끄루스에서 세비야까지의 여정은 어떠했소 ?” “ 아참 , 제가 베라크루스에서 스페인 배를 탄 것까지 말씀드리다가 말았군요 . 네 , 저희들은 1614 년 9 월 30 일 스페인의 까디스에 도착했고 , 거기서 해안을 타고 위로 거슬러 올라 , 10 월 5 일 산 루까르 데 바라메다라는 바닷가 마을에 닿았습니다 . 말하자면 내륙의 세비야까지 가기 위해 과달끼비르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당도한 것입니다 . 이어 , 한참 강을 따라가다 1614 년 10 월 21 일에는 세비야에 도착했습니다 .” “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도 벌써 100 년이 훨씬 넘어 , 이제 스페인과 아메리카 간의 항로는 그야말로 엄청 분주해졌다고 들었소 . 베라끄루스는 콜럼버스가 처음 개척한 곳이라 , 특히 그곳에서 세비야까지는 왕래가 아주 많아 졌겠군 . 처음에 비하면 , 배의 속도도 빨라졌으니 , 출발하면 금방 도착하게 된다고 말하더군 . 세상 참 많이 발전했소 .” “ 그렇습니다 . 아까 말씀드린 대로 , 우리가 직접 배를 운항할 필요도 없었으니 , 이동하는데 꼭 필요한 최소 인력만으로 일행의 수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 베라크루스에 오기까지 사망한 사람들이 있었고 , 중간에 남고자 했던 사람들의 요청을 모두 받아줘 ,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 한편 , 세비야에서 마드리드까지 사절단 일행 17 명은 일반 수레 두 대와 침대를 갖춘 수레 두 대 , 그리고 짐을 옮길 수 있도록 말 오십 마리를 데리고 이동했습니다 .” 저희들은 11 월 25 일 세비야를 출발 , 먼저 꼬르도바에 닿았는데 , 거기서도 큰 환대를 받으며 며칠 간을 머물렀습니다 .” “ 꼬르도바 , 그래 거기서는 뭘 봤소 ?” “ 네 , 이슬람 사원인 메스끼따를 방문했습니다 . 화려함과 정교함은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 스페인 땅에 뿌리 내린 이슬람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 그 먼 곳에서 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