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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당장 집 밖으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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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키호테』는 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인간과 사회를 비추는 살아 있는 고전이다. 이 작품은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말고, 결과보다 행동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자는 돈키호테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돌아보며 깊은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인간 내면의 두 자아가 공존함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메타픽션, 자기반영성, 상호텍스트성 등 현대 문학이론의 핵심 개념을 이미 담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질문하며 오늘날 SNS와 AI 시대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의미는 작가만이 아니라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현대적 독서관을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수없이 실패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과 용기를 상징한다. 결국 『돈키호테』는 행동, 자기창조, 성찰, 도전, 용기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 작품이다.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고전읽기 #행동하는용기 #자기성찰 #자기창조 #현실과이상 #실패를두려워말라 #메타픽션 #오늘의고전

[강좌] 돈키호테와 함께 하는 인문학 여행 (서초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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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와 함께 하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돈키호테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번 강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등록은 (중간에라도)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문의는 서초문화원 02-2155-8607 강 좌 명                                                        [돈키호테]와 함께 하는 인문학 여행 요일/시간 월요일 / 15:10~16:40 강 사 명                 강 의 실 3층 홍익홀 모집인원                    준 비 물 (재료) 강의소개 [돈키호테]를 중심에 놓고,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의 문학과 철학, 그리고 역사와 미술 등을 다룬다. ‘산티아고순례길’, ‘프라도미술관’, ‘플라멩코’, ‘투우’, ‘스페인어’, ‘스페인음악’, ‘음식’, ‘와인’, 그리고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 등 다양한 주제들을 접한다. 차시 강 의 주 제 강 의 내 용 비 고 [1차시] 오리엔테이션 강의소개 및 [스페인에 한 발 더 다가가기] [2차시] 한 눈으로 보는 스페인 스페인의 지역과 역사 등 전반적인 이해 [3차시] 프라도미술관 산책(1) 프라도미술관 작품 감상 [4차시] 프라도미술관 산책(2) 프라도미술관 작품 감상 [5차시] 산티아고순례길(1) 산티아고순례길 이야기 [6차시] 산티아고순례길(2) 산티아고순례길 이야기 [7차시] 투우 투우와 관련된 이야기 [8차시] 플라멩코 플라멩코에 대한 이해 [9차시] 돈키호테(1) [돈키호테]의 주요 주...

윤준식의 놀이터(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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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식의 블로그입니다.  pinoypiedra@gmail.com (010-3502-1666)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문학 학사, 석사 스페인 마드리드대학교 스페인문학 박사 스페인 ICI 스페인어문학 교사과정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스페인문화원장 멕시코명예영사 달리상상공간  달리상상TV (유튜브채널) 논문, 역서, 저서 등 다수 [돈키호테를 따라간 스페인] 및 [스페인](스페인역사, 문화, 문학, 예술 등) [개시](창작시집) [Antología poética](김남조 시선집 번역) [인생은 꿈](La vida es sueño 번역) [Cielo, viento, estrellas y poesía](윤동주 시집 번역) [따끄나의 아가씨](바르가스 요사의 희곡 번역) (논문) - '모범소설'에 나타난 세르반세스의 자연관 - 20세기 초 스페인 메타극의 이론과 실제 - Sentido y papel de Clarin, personaje calderoniano   (깔데론의 극작품에 나오는 끌라린의 역할과 의미) - 돈키호테의 간구형태와 세르반테스 - 창작불가능에서 가능으로의 전환과 요사의 메타극 - 세르반테스의 '놀라운 인형극'에 나타난 극작가 자의식 - 우나무노의 '안개'에 나타난 작가의 죽음 - 로뻬 데 루에다의 연극에 보이는 카니발적 요소 - 깔데론의 Persona desnuda적 인물구현과 극중극 - 깔데론 극의 현실전이과 극중극 - 깔데론 데 라 바르까의 연극에 나오는 끌라린의 역할과 의미 - 로르까의 극에서의 V-efecto와 그 유형 - 피가로의 기원으로서의 삐까로와 둘 간의 비교 - 따마요 이 바우스의 신극작법     외 다수

윤준식(YOON)의 놀이터(Parque infant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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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시작하며] 세상은 '해석'이다. 물론, 이 말은 '사람의'라는 제한을 둬야할 것 같다. '우주'가 있고, '자연'이 있을 뿐이다. 그 안에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생명은 숨쉬고 움직이는 게 다가 아니다. 빛, 공기, 물, 흙 등은 무생물이라고 말하지만, 생명체는 거기에 뿌리를 두고 산다. 그래서 생명체와 무생명체는 구분할 수 없이 '하나'다. 세상을 이렇게 인식하고, 세상 이야기를 할 때는, 분명 제한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사람의'라는 조건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세상은 '해석'이다"라는 말에서, 결국 "세상은 '나의 해석'일 뿐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의 해석은 매일 매일 달라진다. 아니, 매 순간 달라지기도 한다. 오늘 내가 깨달은 것이, 내 인생 끝날 때까지 절대적인 것 같지만, 내일이면 달라진다. 이 순간 깨달음이 금방 달라진다는 점에서는 불행하지만, 그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역시 '나의 해석'에 달려있을 뿐이니......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데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의미에 대한 질문 자체가 중요할 뿐, 그 답 역시 '나의 해석'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놀이터'라고 지어봤다. 어제 만들고, 오늘 다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다. 말하자면, 오늘의 해석이 절대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포기했다. 오늘 이렇게 해석하고, 내일 다르게 해석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놀이터'이고, 놀이터에서 놀았던 자취, 즉 나의 하루짜리 유효기간의 해석들을 (의미없지만) 보관해놓기로 했다. 그냥 기념사진 찍어 앨범에 넣어 두는...... 생각날 때, 다시 볼 수도, 아니면 다시는 안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