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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돈키호테, 햄릿, 그리고 파우스트 -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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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Q] 추방된 인간의 콤플렉스와 과거시대에 대한 향수 (원전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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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된 인간의 콤플렉스와 과거시대에 대한 향수 'Ad fontes'라는 라틴어가 있다. '원전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다. 서양에서 원전이란 두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라는 서구문명의 출발점이며, 또 하나는 그보다 한참 뒤에 저기 지중해 남동쪽 예루살렘에서 온 기독교다. 원래 이 구호가 나온 것은, 전자에 대한 가치 회복이다. 후대에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이 고전의 회복운동은 중세 기독교가 오랫동안 강한 힘을 발하다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중에 나타난 현상이다. 거기에는 이슬람세력과의 대결과 십자군 원정이 있었고, 기독교 자체의 부조리가 산처럼 쌓였으며, 상업 자본가들의 등장 등 이유는 많았다. '원전으로 돌아가라'가 고대 그리스 원전에 대한 재해석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이미 서구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린 기독교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원전, 즉 '성서로 돌아가라'는 말로도 통했다. 뭔가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친다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가 어렵고 부조리하고, 현재를 바꾸고 싶을 때, 원래의 상태를 갈구한다. '원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결국, '개혁정신'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미 예견된 것처럼, 서구사회는 '원전'에 대한 추구를 통해, 개혁의 외침이 커졌는데, 그 방향은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이며, 기독교의 '에덴동산'이다. 이렇게 르네상스는 황금시대와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을 추구하고, 상호는 섞여서 설명되는데, 성서의 내용을 그린 그림에 그리스 로마신화가 섞이고, 성화의 인물에 당대 인물을 그려넣는 일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신성모독이라고 해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기독교적 인문주의'는 이런 절충형의 '개혁'의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중심과 인문주의의 인간중심이 혼합된 이 단어는 당시 사회의

[논문과 기고문] 깔데론의 Persona desnuda적 인물 구현과 극중극(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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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데론의 Persona desnuda적 인물 구현과 극중극   (『La vida es sueño』를 중심으로)                                                                                                                                               윤 준 식 I. 들어가는 말    스페인문학에서 세르반떼스 만큼이나 많이 언급되고 연구되는 작가를 찾으라면 바로 깔데론을 꼽을 수 있겠다. 세르반떼스와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동시대 양국의 대표작가라는 점과 기타 몇 가지 유사성에 의해 서로 비교 언급되고 있지만, 깔데론과 셰익스피어는 양자가 극작가라는 공통점 외에도 세계연극사에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 상호 비교되며, 여기서 괴테가 말했던, “셰익스피어가 포도송이라면, 깔데론은 포도즙이다.”(Shakespeare era el racimo de uvas, y Calderón el zumo)라는 표현은 깔데론의 작품세계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는 점을 지적해주는 예가 될 것이다. 영국의 작가에게 ‘세상은 연극’(Theatrum mundi: El mundo es un escenario)이라는 단어가 따라 다닌다면, 깔데론에게는 ‘인생은 꿈’(La vida es sueño)이란 표현이 언급되며, 이것은 삶의 정의이자, 그것을 반영한 연극의 형이상학적 결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지만, 깔데론은 거기에 비한다면 미약한 편이며, 한국에서는 ‘전혀’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작품 번역은 물론,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연구가 되어있지 못한 실정이다. 세계적으로 깔데론에 대한 접근 방법은 지금까지 수 없이 제시되어 왔다. 그 중에서 바로꼬와 예수회 등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해석 등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테마를 통해 연구된 것이 많으며, 천문학이나 연금술적 이해를 바탕으로 확장해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