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바르셀로나 일행은 마드리드에서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 약 9 개월 정도 머물면서 스페인 왕실의 특별한 관심에 따라 공식 행사도 많았으며 , 가장 실권자인 레르마 공작을 비롯해서 교황청에서 보낸 대사 등 스페인의 많은 고위인사들과도 만났다 . 쓰네나가는 마드리드 왕궁 가까이에 있는 왕실 전용 사냥터인 까사 델 깜뽀에서 펠리뻬 왕과 사냥을 하는 등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 한편 , 사절단의 일행으로 온 루이스 신부는 물론 , 현재 일본에 있는 선교사들의 많은 수가 스페인 사람들이다 보니 , 일일이 그들의 가족들과 만나는 일도 중요했다 . 가족들은 마치 자신의 아들이 집에 온 것처럼 반겼고 , 일본으로 돌아가서 전달해달라고 편지도 써줬다 . 아무리 신에게 자식을 바쳤다 해도 , 부모의 입장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먼 땅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자식의 안위 만을 바라고 , 한 시도 쉼없이 기도한다고도 했다 . 로마 방문에 대한 교황청으로부터의 공식 승인도 늦게 났다 . 인편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받아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도 그렇지만 , 교황청 내부의 절차에 따라 답을 내는 데에도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 일행은 이 시간을 이용해 마드리드 주변을 구경했다 . 방문한 곳 중에서 , 석희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엘 에스꼬리알 궁전이었다 . 왕실에서 운영하는 여러 개 궁전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는데 , 산 위에 드러난 건물의 위용은 참으로 웅장했다 . 마드리드에서 말을 타고 빨리 달리면 한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펠레뻬 2 세가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큰 궁전을 짓겠다는 야심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 파리까지 진격하여 , 프랑스 왕으로부터 신교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그는 , 궁전을 짓는 동안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수 없이 오가면서 직접 지휘를 했다고 하니 , 이 건물에는 스페인의 영광과 자부심이 담겨있다 . 스페인이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면서 자신은 그 수호자가 되겠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