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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돈키호테, 햄릿, 그리고 파우스트 -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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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Q] '덕'은 '관계'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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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에 대한 많은 정의와 모호성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지! 사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기에 혼란스럽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식하고 노력하게 되는 가치가 바로 덕인 것이겠지.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덕이라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타인과 집단 속에서 발현된다는 사실이지. 즉, 혼자가 아니고 ‘관계’라는 것! 말하자면, 나 혼자 있을 때 필요한 가치라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가치가 덕인 것이지. 그러고 보면, 덕을 ‘도덕’이라는 것으로 쓰고, 거기에 ‘공중’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 것은, 바로 덕의 이런 특성이 발현된 표현이겠지. 소크라테스가 ‘지혜’라는 것을 더 알기 위해, 정치인, 수공업자, 시인 등을 찾아간 것과 같은 맥락으로 ‘지혜로운 자’라고 찾아간 인물이 프로타고라스다. 사람들은 그를 지혜롭다고 했으며, 자신도 지혜롭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혜롭다’는 것이, 단지 ‘내가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를 찾아가는 것,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당대 가장 명성이 높았던 소피스트에게 던진 대화의 주제가 ‘덕’이고, 그 대화를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에 남겼다. 그들의 대화를 보면, 특히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보면, 덕이라는 개념의 기본적인 상황은, ‘나’와 ‘타인’ 간의 관계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인간이 홀로 살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든 개념이 그렇겠지만, 특히 덕이라는 개념은 나와 타인, 나와 사회, 나와 국가라는 틀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빌리자면, “나라나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지녀야 하는 것”이 덕이다. 그가 말한다. “프로메테우스는 마침내 헤파이토스와 아테나에게서 지혜와 불을 훔쳐 내어 사람에게 주었다네. 그런 까닭에 사람에게 삶을 위한 지혜는 전해지게 되었지만, 나라나 사회를 이루기 위한 지혜는 주지 못하였다. 그것은 제우스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세.”([프

[DQ] ‘돈키호테‘, 세르반테스의 자화상 ('돈키호테 들여다보기'(DQ)에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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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세르반테스의 자화상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는 ‘거울보기’라고 할 수 있겠다. 50대 후반, 그리고 60대 후반,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지나온 삶을 정리해보는 그런 것이다. 거기에 ‘기사’라는 특정한 인물은 나체로 거울 앞에 선 자신에게 입혀야 할 옷이었으니, 그 타이틀과 복장에서는 자신 만의 논리, 즉 ‘기사로서’ 자신을 규정해놓은 어떤 ‘특별한 자신’과 그런 ‘자신 만의 세계관’, 그리고 ‘삶과 생존 가치’ 속에서 겪어야 했던 자신과 자신의 밖의 세계, 즉 모든 타자들과의 대결을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그려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이런 가치들과 행동이 일반의 사람들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이고, 그 가치에 대한 실행의지 역시, 보통 사람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하게 표출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강렬한 인물이 존재할 때, 당연히 주변에는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어, 주변의 모든 것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대결 구도가 생기고, 대결의 상대가 나타나게 되고, 결투가 있게 되며, 그것을 ‘모험’이라고 한다.  동시에 아주 그와 가까이 존재하는 사람들, 특히 가족들의 반응은, 그를 붙잡고 현실에 내려오기 만을 바라는 행동으로 점철된다. 돈키호테와 동반한 산초가 그렇고, 그의 집을 지키는 조카가 그러하며, 신부와 이발사, 그리고 그 지역에서는 공부를 했다는 학사 산손 까라스꼬(Sansón Carrasco)가 그 역할을 한다. 보통의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모든 것이 ‘광기’로 해석되니,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큰 짐’이 아닐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타오른 자에게는, 그것이 그의 ‘생존방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못 견딜 ‘운명’을 타고난 사람 말이다. 아니, 그에게 그것을 중단하는 것 자체가, ‘죽으

[인문학강의] 무덤의 비밀 (산티아고 순례길-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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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5Pl-JXvtehs

[DQ]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 번에는 꼭 끝까지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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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작가로 알려진 [돈키호테]에 대해서는 일반 독자들보다도 비평가나 작가들이 더 많은 평가를 내리는 것 같군. “매년 시작하는 시점에 한 번씩 일독하고 글쓰기에 들어간다”는 소설가도 있고, 이 작품으로 “근대가 열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돈키호테] 이후의 작품들은 나의 ‘변주’에 불과하다고도 하니, 나로서는 몸들 바를 모르겠군. 물론, 이런 평가들을 통해 내가 힘을 받지만, 사실 일반 사람들 중에는 작품 [돈키호테]에 대해 전혀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사실도 너무 잘 알지. 어떤 때는 비평가의 연구 대상이고 어떤 때는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그런 책에 불과한 것일까? [돈키호테]를 접하는 일반 독자들은 왜 이 작품이 수 많은 대학과 기관의 추천도서 목록의 상위에 있을까하고 의문하는 경우가 많다.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달려든 돈키호테의 모습 외의, 다른 장면들은 마땅히 기억도 안난다. 괴상하고 미친 기사라고 하니, 그렇게 알고 있을 뿐,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일단 듣던 바, 기대했던 만큼 재미있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 거의 반복되는 듯한 여정에 긴박함도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두꺼운 책에 질려, 앞의 몇 장을 억지로 읽은 후, 다음에 읽겠다는 위안과 함께 그냥 덮어둔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일상의 대화에서, 그리고 신문과 방송에서 ‘돈키호테’라는 언급을 보고, 듣게 되며, 다시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읽기는 권하는 마음으로 몇몇 작가와 비평가들의 말을 인용해보기로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을 쓴 체코 출신의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 )는 [돈키호테]를 신봉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의 글쓰기는 철저하게 이 작품의 호흡을 이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다. [돈키호테]의 기법을 가져왔고, 세르반테스가 의도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형이상학적 세계관까지도 가져온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소설에서 뭔가 답이 나오기를 바라지만, 소설은 뭔가

[DQ] 열정과 고통은 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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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돈키호테가 미쳤다고? 좋아, 받아줄 게!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테니까! 그런데, 그대는 정상인가? 무엇이,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떻게 해야 광기인가? 나는 한적한 라 만차의 작은 마을에서 노년을 맞이하고 있었어. 죽음을 향해 시들어가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그렇지만, 나는 이런 나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지. 마침 기사들의 이야기책에 빠져있었던 터라, 미치기는 쉬웠지! 기사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 몸이 근질근질거리기 시작했어! 가슴이 뛰었지. 열정의 불이 당겨졌을까? 나는 그냥 집 안에만 있을 수 없었고, 준비도 없이 바로 집을 나왔지. 열정의 불은 활활 타오르고, 나는 미쳤고, 그에 따라 고통도 따라왔지. 그러나, 난 알아, 수난과 고통, 그리고 불행을 겪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의미임을…… ‘스페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정열’과 ‘열정’! 언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강렬한 ‘태양’과 ‘플라멩코’, 그리고 ‘투우’를 연상하면서 이내 이 말에 수긍하기도 한다. ‘열정’을 영어로 쓰면, ‘Passion‘이고, 스페인어로는 ‘Pasión‘. 그러나 사전을 찾으면 의외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수난’! 외국인인 우리에게 ‘Pasión‘이 수난이나 ‘고통’으로 쓰이는 경우는 아주 낯설지만, 예수의 수난을 담은 영화의 제목과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고통스럽게 오르는 모습이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담은 그림에는 ‘La pasión de Cristo‘(The passion of the Christ)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정리해보면, ‘Pasión‘에는 ‘열정’과 ‘고통’이라는 의미가 공히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 열정은 즉 고통인 것이다. 열정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 만큼 수고로움과 고통도 클 것이고, 혹시 열정이 적다면 고통도 적을 수 있겠다. 사람은 심장이 있고, 생명체로서 뭔가를 하기 때문에, 사람은 적든 많든 열정이 있고, 그래서 모두는 고통을 겪는다. 예

[DQ] '0'과 '1' 사이 ('0'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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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께서는 한번도 둘씨네아 아씨를 본 적이 없던데요. 이 귀부인이라고 하는 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이며, 나리께서 스스로의 지혜로 잉태라고 태어나게 한 환상의 여인이더군요. 나리가 바라는대로 온갖 매력과 완벽성을 겸비하도록 그려낸 여인상 말이에요.”(II, 32) ​ 스페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숫자판에 손을 대려는 순간 ‘0’(건물에 따라서는 ‘B’를 쓴다. 이것은 ’Planta baja’, 즉 ‘아래’라는 ‘Baja’에서 온 것으로, ‘밑층’을 의미하며, 1층의 아래이기도 하다. 한편, 같은 ‘B’로 쓰지만 통상 ‘Basement floor’에서 온 영어의 ‘B1’, ‘B2’ 등과는 다르다)를 발견하게 된다. 12층에 타고 1층으로 가기 위해서 ‘1’이란 숫자를 눌렀다면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못한다. 2층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0’(또는 ‘B’)을 눌러야 했다. 그렇다, 땅에서 다음 층의 바닥, 즉 1층이 시작되는 데까지는 모두 0층이다. 0층? 그런 게 있는가? 0은 음의 정수도 아니고, 양의 정수도 아니지만, +와 -의 출발점이기에, 1이나 -1에만 관계될 뿐 아니라, 모든 수의 근원이다. ​ 그러나 우리는 이 기본 숫자를 ‘빈 것’, ‘없는 것’,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온 것 같기도 하다. 1원, 1달러에 집착하고 있었으니, 계산의 첫 숫자는 언제나 1로 삼게 되고, 0은 아예 안중에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사회, 문화, 심리적인 접근이 있을 수 있겠으나, 어느새 우리는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즉, 물질과 실체 만을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야기를 다시 [돈키호테]로 돌아가서, 돈키호테의 둘씨네아에 대한 사랑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우리는 결혼을 두 사람 간 사랑의 중요한 의식으로 본다. 그러나, 결혼식이라는 구체적인 행사에 오기까지, 입을 맞추고, 손을 잡고, 헤어졌다, 만났다 등등의 사전 과정들이 있음을 안다. 거기서 좀 더 가면, 두 사람의 사랑이란 처음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라는 사실에 접근한다. ​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