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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당장 집 밖으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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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키호테』는 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인간과 사회를 비추는 살아 있는 고전이다. 이 작품은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말고, 결과보다 행동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자는 돈키호테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돌아보며 깊은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인간 내면의 두 자아가 공존함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메타픽션, 자기반영성, 상호텍스트성 등 현대 문학이론의 핵심 개념을 이미 담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질문하며 오늘날 SNS와 AI 시대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의미는 작가만이 아니라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현대적 독서관을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수없이 실패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과 용기를 상징한다. 결국 『돈키호테』는 행동, 자기창조, 성찰, 도전, 용기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 작품이다.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고전읽기 #행동하는용기 #자기성찰 #자기창조 #현실과이상 #실패를두려워말라 #메타픽션 #오늘의고전

[DQ] 서양 문예의 평가기준은 '독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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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인문학을 잘 들여다보면, 특히 ‘문예’라는 것을 접하다보면, ‘독창성’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서의 독창성인가를 따져보면, 결국 ‘본질’의 표현에 있어서의 ‘Originality’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본질’이라는 단어는 ‘실체’, ‘사실’, ‘진리’,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데아’라는 개념들과 상통하는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본질’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느냐가, 독창성의 기준이다. 기존에 없었던 방법으로 말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어떤 사물을 사진처럼 그려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진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미술을 볼 때, 그림에 대한 평은 이미,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어떻게’을 그렸는가에 관심이 크다. 어떤 독특한 방법으로, 본질을 그려내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돈키호테]에서의 ‘이름짓기’는, 이름을 통해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본질을 모두 담아내지 못함을 작가는 인식하고 있다. 오히려, 순간 순간 이름은 달라질 수 있는 개념으로 봤다. 풍차는 방앗간도 될 수 있고, 거인도 될 수 있으며, 풍력발전의 날개나, 아이들이 들고 뛰는 바람개비도 될 수 있다. 이발사가 갖고 다니는 세수대야는 거울도 될 수 있고, 맘브리노 투구도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겨울철 땅에 묻은 김장독을 덮는 덮개로도 될 것 같다. 그 하나의 이름이 절대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본질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하게 나오는 이름들의 모음이 본질에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름이 본질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풀이한다면 말이다. 미셀 푸코가 말하고 있는, ‘말’과 ‘사물’의 문제도, [돈키호테]에서의 본질과 이름 간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기존의 말을 갖고, 자크 데리다가 고민했던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로의 분리와 해체, 그리고 재조립의 문제도, 결국 본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후안 라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