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 2020의 게시물 표시

[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이미지
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짧은이야기]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Velázquez, o el caballete fantástico)(IV-3)

이미지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IV-3) 벨라스께스는 1599년 6월 6일 세비야에서 태어난다.  이 시기는 스페인이 정치적으로 하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으며, 그가 성인이 되어 세상에 대해 더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스페인이 과거의 것을 단지 향수로 밖에는 접할 수 없었던 시점이었다.  카톨릭 양왕에서 시작된 스페인의 영광은 그들의 손자 격인 까를로스1세 때에 더욱 무르익어 갔으며, 1598년 까지 통치한 펠리뻬2세에 이르러서는 가장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그것도 잠시, 당대에 벌써 쇠락을 맛봐야 했다.  영토가 워낙 넓고, 다양한 지역에 위치하다보니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고, 전쟁과 아메리카대륙 진출로 스페인 본토의 인구는 날로 줄어만 갔다. 그리고 하락하기 시작한 스페인은 펠리뻬3세에 이어 벨라스께스가 궁정화가로 있었던 펠리뻬4세 때에는 이전 시대에 비한다면 아주 저 밑에까지 닿았던 것이다.  고향 세비야에서 처음 프란시스꼬 빠체꼬를 만나 그림을 배우게 되었고, 이 당대 그림을 대표하는 선생은 제자의 성공을 점쳤으며, 그 믿음 속에 딸을 내주기도 하였다. 그는 1622년 당대 최고의 문인인 루이스 데 공고라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마드리드와 궁정생활이 시작된다.  물론 남부 세비야를 중심으로 일어난 그림의 추세는 당시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마드리드로 상경하여 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인생에 절대적인 전환의 기회가 된 셈이다.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스페인 전통 기법을 터득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이미 그리이스 출신으로 이태리에서 공부한 뒤 스페인에 귀화해 이곳 그림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엘 그레꼬가 있었고, 띤또레또의 그림 경향 역시 마드리드 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기초가 탄탄해 질 수밖에 없었다.  1628년 유럽 땅을 전전하며 여러 활동을 한 루벤스가 스페인에 방문한 사실은 우물 안의 벨라스께스에게 중요한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