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이미지
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짧은이야기] 수양버들(El sauce llorón)

소년은 선생님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아이였답니다. 

 

전쟁 후 주변이 온통 민둥 산일 때, 나라에서는 나무심기 캠페인을 하였으니, 나무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것조차 큰 죄책감을 느끼는 시기였습니다.

 

식목일이 다가오면서, 학교에 멋지게 서있는 수양버들을 자기 집에도 꼭 심고 싶었답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자 수양버들 한 가지라도 찾기 위해 소년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꼭 나무 밑에서 서성거렸지만, 참으로 몸이 유연한 수양버들답게 작은 한 가지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가 가고 식목일도 지나 소년의 마음이 아주 무거워진 시점에, 강한 비바람이 치는 날이 왔답니다. 이런 날 시골 마을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아무리 강한 소양버들이라도 견디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 소년은 학교 가는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풀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작은 가지를 들고, 소년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집으로 달려왔고, 수양버들을 집 대문 바로 옆에 심었답니다.

 

소년의 마음을 담아 나무는 커갔지만, 수양버들이 대문 옆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속설은 몰랐던 것입니다. 10년 넘게 자라 제법 곱슬한 가지를 늘어뜨릴 때 쯤, 몸둥이가 잘려졌답니다. 수양버들이 갖고 있는 주술적 해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쑥쑥 자라는 모습을 기분좋게 지키던 소년이 공부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고, 청년이 되었을 때 쯤이었답니다.

 

이제 학교에서도 그렇게 크고 실하게 버티고 있던 수양버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많은 동요처럼 말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문예]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I) (Camino de Santiago, su historia)

[문예] 나혜석의 스페인 여행 (스페인과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