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니체의 [돈키호테](전체내용)
#니체 #돈키호테 #비극적 영웅 #광인 #신은 죽었다 #절대성 #작가의 죽음 #자라투스트라 #죄와벌 #라스콜리니코프 #즐거운 학문 #비극의 탄생 #나폴레옹 #히틀러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아모르 파티 #Will to Power #Amor Fati #Ubermensch #포스트모더니즘 #움베르토 에코 #Gott ist tot #알론소 끼하노 #Alonso Quijano #세르반테스 #Cervantes 니체는 돈키호테를 ’비극적 영웅’으로 봤다! 왜? 니체가 어린 시절 『돈키호테』 를 읽었다는 사실은 그의 사유의 근원적 층위를 해명하는 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영원회귀', '초인(Übermensch)', 그리고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알론소 끼하노가 돈키호테라는 기사로 변모하는 과정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이 변모의 과정에서 주인공이 기존의 현실을 깨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모습은 니체가 제시한 초인의 면모를 상기시킨다. 물론 니체의 사상을 돈키호테에 완전히 적용할 수는 없지만, 그는 세르반테스의 주인공에게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니체는 돈키호테를 단순한 광인이나 희극적 인물로 파악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비극적 영웅'으로 봤다. 그런데, 니체에게서 ‘비극적’이란 표현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그가 쓴 『비극의 탄생』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 비극이 갖고 있던 디오니소스적 요소와 아폴론적 요소 중에, 덕과 이성을 강조한 소크라테스 이후 아폴론적 요소 만 강조되고, 디오니소스적 요소가 제거됨으로써 비극의 원형은 파괴되었다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삶의 표현은 두 요소가 대립하고 자극하여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이라고 본 니체는, 두렵고 부정적이었기에 제거되었던 비극적인 요소가 살아나야한다고 본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니체는 돈키호테가 보여주는 질풍노도의 열정과 좌절 등은 오히려 인간이 현실 속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서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그렇기에 비극적이며, 그래서 인간의 진정한 전형으로 본 것이다. 이 인간형은 번번이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며, 존재의 한계와 맞서는 강력한 의지를 구현한다. 니체의 비극적 영웅 돈키호테는 조용하고 안정된 시골 생활을 버리고 세상의 혼돈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감으로써, 현실의 질서로부터 탈주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신념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려 한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그의 태도는, 동상 속에서 손을 높이 들고 있는 동작에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결의 선전포고'이자, 자신이 신봉하는 이상에 대한 의지의 표출이다. 그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자발적으로 행위에 나서는 인물로서, 바로 이러한 행위성 속에 '힘에의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낡은 기사 장비를 엉성하게 챙겨 떠나는 장면에서부터 농사용 말을 명마로 상정하고 '로씨난떼(Rocinante)'라 명명하는 행위,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여인을 '이상적 사랑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모습은 모두 그 의지의 표현이다. 그의 사랑은 감정적 애착이 아니라 존재를 뜨겁게 태우는 생의 에너지, 즉 '열정의 원천'이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온 돈키호테에게 현실은 끊임없는 시련과 패배로 다가온다. 그는 조롱을 받으며 여러 차례 좌절을 겪지만, 니체에게 이 모습은 단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 인간적 존엄의 비극적 구현이다. 이상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의 행보는, 니체가 말한 비극적 영웅의 핵심을 이룬다. 2부 68장에서 돈키호테는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백월의 기사 산손 까라스꼬에게 패배한 뒤 귀향길에 오르며, 돼지 떼에게 짓밟히는 굴욕을 겪는다. 이때 돈키호테는 격분한 산초를 달래며 이렇게 말한다. "그냥 내버려두게, 친구, 이 치욕은 다 내 죄의 대가일세. 패배한 방랑기사에게 하늘이 내린 정당한 벌이야. 패배한 기사는 불여우들이 뜯어먹고 말벌들이 쏘아대고 돼지들이 짓밟게 되어 있다네."(II,68) 이 장면은 기사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하층의 존재들에게 밟히는 절대적 몰락을 드러낸다.아울러, 이상주의자가 맞이하는 비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 대목에서 돈키호테는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기에 오히려 더 비극적으로 보인다. 한편, 이어지는 장면에서 돈키호테는 자신의 시를 읊으며, 사랑의 고통이 곧 생의 환희임을 노래한다. "사랑, 네가 나에게 준 그 강하고 무시무시한 놈을 생각할 때면 나는 거대한 그 악한 놈을 끝장내기 위해 어쩌면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센 풍랑의 바다에서도 항구에 닿을 때는 큰 환희를 느끼게 되니, 삶이 고생스러울지라도 그 사랑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이러한 고백은,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긍정하려는 그의 내적 열정을 드러낸다. 돈키호테는 비극을 파괴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로 전환시키며, 오히려 고통을 통해 생의 활력을 확인한다. 니체가 초인을 ‘자신의 열정이 일으키는 혼돈을 질서화하고, 독자적 성격을 창조해내는 존재’로 규정한 대목을 상기하면, 돈키호테의 이러한 태도는 초인의 윤곽과 맞닿는다. 그는 운명적 고난을 기꺼이 수용하며,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정신으로 삶을 긍정한다. 즉 그는 삶의 비극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기 자신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존재다. 2부 73장 마지막에서, 돈키호테가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산초는 무릎을 꿇고 말한다. "두 팔을 벌려 그대의 아들 돈키호테를 맞이하게나. 남의 팔뚝에 져서 패배하긴 했지만 자기 자신을 이기고 돌아온 아들일세. 그분 말에 따르면 자신을 이기는 게 인간에게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승리라는 걸세." 산초의 말은 니체적 의미에서의 자기 초월, 즉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인간'의 면모를 상징한다. 함께 동행한 산초의 돈키호테에 대한 평가라는 점을 깊이 새겨볼 일이다. 알론소 끼하노는 돈키호테로 변모함으로써 단순한 인간을 넘어선 창조적 존재가 된다. 그는 비극을 체험하면서도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한 인물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따라서 니체가 돈키호테에게서 발견한 비극성은 절망이 아니라, 자기 초월의 생명력으로 읽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