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이상'도 흔들릴 때가 있다!
'만든다'(Obrar)라는 말은 '생존한다'(Vivir)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은 만드는 역사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일이며, 자신을 보호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키려는 행위다. 영원히! 나무, 풀, 동물,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향하며, 그래서 '만든다'. 소나무가, 유칼립투스가, 장미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과 대응 하듯이, '인위'는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대응하는 '생존 방식'이다. 인류의 문명과 문학, 철학, 문화, 예술, 과학 등은 그간 쌓은 생존 방식을 체계화한 것이며, '인문학' 역시, 인류 생존의 흔적이며, 기록이며, 미래 생존을 위한 자료다. 인쇄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인터넷 상의 글, 사진, 동영상 등이 그것을 빠르게 대체한다. 도서관의 책 중에, 살아남을 책이 얼마나 될까? '만든다', 즉 '생존한다'는 것에서 그동안 나에게서 나왔고, 앞으로도 나오는 생각과 상상의 흔적을 여기에 저장해놓는다! 행운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닮아 있을까요? 두 작품에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여러 명의 기록자와 번역자, 편집자가 등장합니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아드소의 수기가 마비용과 발레를 거쳐 에코에게 전달됩니다. 이 과정은 하나의 텍스트가 해석과 번역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형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세르반테스 역시 『돈키호테』의 진짜 작가를 아랍인 연대기 작가 시데 아메떼 베넹헬리라고 설정합니다. 세르반테스 자신은 창조자라기보다 원고를 편집하고 구성하는 사람으로 자리합니다. 이처럼 두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와 서술 층위를 겹쳐 놓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서사 형식을 우리는 ‘액자구조’ 또는 ‘액자소설’이라고 부릅니다. 액자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지금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진짜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바로 여기에서 현대문학의 중요한 개념인 ‘작가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작가의 죽음’은 작가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의미를 작가의 의도 하나로 결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역시 작품이 완성되면 작가는 작품의 해석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작가가 권위를 내려놓는 순간 작품은 독자에게 열리고, 독자의 해석이 시작됩니다. 에코가 말한 ‘열린 작품’은 바로 이러한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전제로 합니다.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 역시 창작을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배열로 바라봅니다.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또한 자신을 작품의 첫 번째 독자와 같은 위치에 놓습니다. 결국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새로운 해석의 공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열린 공간에서 독자는 단순한 독자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공동 창작자’가 됩니다. #움베르토에코 #장미의이름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액자구조 #액자소설 #작가의죽음 #롤랑바르트 #열린작품 #오픈워크 #독자와작가 #문학이론 #현대문학 #메타픽션 #다층적서사 #보르헤스 #모래의책 #문학과철학 #돈키호테읽기 #장미의이름읽기 #윤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