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이미지
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문예] 아지랑이 춤추듯 피어오르는 돈키호테(Don Quijote)의 기억

아지랑이 춤추듯 피어오르는 돈키호테(Don Quijote)의 기억

까스띠야 라 만차 지역에는 환상적인 빠라도르로 유명한 시구엔사(Siguenza)를 비롯하여 시우닫 레알(Ciudad real)이 있다. 특히 시우닫 레알 지역은 사막과도 같이 넓은 평원만이 있을 뿐이다. 길은 평탄하여 완전한 평면을 이루며, 산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황량한 벌판이 라 만차 지역의 대표 도시로서 우리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마도 <돈끼호떼>의 출발지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돈키호테의 편력길 (Ruta de Don Quijote)

강렬한 태양 빛과 광활한 평원을 배경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배고픈 마른 말 위에 앉아 뭔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고 거만하게 지나가는 돈끼호떼, 그 뒤를 지친 모습의 산초가 낮은 노새를 타고 따라가는 모습은 전형적인 스페인의 상징이 되어 있으며, 그 평원의 배경은 바로 시우닫 레알이 품고 있는 땅이 만들어낸 것이다. 독일의 우중충한 날씨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내면의 세계에 골똘하게 하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고 철학을 낳게 되었다면,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은 그 푹푹 찌는 광야를 무방비로 걷고 있는 사람의 머리를 정면으로 강타하여 미쳐버리게 하였으니, 내면으로 들어가는 생각이고 뭐고 걷다가 포기하고 풀썩 주저앉거나 살기 위해 쉽게 흥분되는 가슴으로 돌진하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 같다. 돈끼호떼는 이렇게 작렬하는 태양에 달궈진 머리를 가지고 먼지 나는 벌판을 미친 듯 달려가다가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걷기도 하는 것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돈끼호떼>를 쓴 미겔 데 세르반떼스(1547-1616)는 마드리드 옆의 작은 도시 알깔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작은 도시지만 대학이 있었으므로 당시의 많은 문인들이 들락거렸고 세르반떼스 역시 학문적 분위기가 풍기는 이곳에서 신학과 문학 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회는 어수선하였고 국가로서의 확고한 기반이 잡히지 않은 상태로, 점차 그 과정에 있었으니, 그의 집안 역시 바야돌리드(Valladolid)와 꼬르도바(Córdoba), 세비야(Sevilla) 등지를 전전하다가 결국에는 마드리드에 정착하게 된다. 여러 차례의 이동으로 그의 문학적 테마는 풍부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돈끼호떼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중요한 테마가 되어 주었다. 1569년에는 이태리로 건너갔으며, 1571년 레빤또 해전에 참가, 거기서 왼팔을 잃게 된다. 이런 그의 모험과 여행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쳐 작품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또한 그는 나폴리(Nápoli)에서 돌아오는 길에 터키 해적에 잡혀 알제리에서 5년간 감옥생활을 하게 되고, 3번의 탈출이 수포로 돌아갔으나, 삼위일체 수도승들이 몸값을 지불하여 풀려난다. 스페인에 돌아온 그는 1584년 까딸리나와 결혼하고, 이어 <갈라떼아>란 목가소설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후에는 무적함대의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일반 세금징수원으로 일했으나 일에서 비롯된 잘못으로 세비야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감옥에서 나와서는 바야돌리드에 정착하고, 1605년에는 <돈끼호떼> 1부를 발표하여 성공한다. 1608년에는 다시 마드리드로 옮기고 <모범소설>과 <돈끼호떼> 2부를 발표하게 된다. 그는 소설뿐 아니라 연극과 시 등의 작품들을 통해 르네상스와 바로코를 잇는 작가, 그리고 스페인 문학의 황금세기를 꾸몄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돈키호테] (Don Quijote)

소설 속의 인물 돈끼호떼를 작가 세르반떼스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돈끼호떼>를 읽다보면 돈끼호떼의 생김새에 대한 표현들이 나오는데 세르반떼스의 또 다른 작품 <모범소설>의 서문이나 다른 작품들의 서문에 나오는 작가 세르반떼스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분명 이들은 닮은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60살에 가까운 나이로, 빼빼 말랐고, 상대적으로 키는 크게 보인다. 세르반떼스가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방랑하며 겪은 모험은 바로 돈끼호떼가 추구했던 이상적 세계에 대한 편력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범소설] (Novelas ejemplares)

 반면 소설 속에서 돈끼호떼의 상대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현실주의자 산초가 세르반떼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설은 이색적이지만 설득력이 있다. 즉 거울 앞의 세르반떼스가 돈끼호떼와 산초인데, 볼록렌즈 거울 앞에서 세르반떼스는 돈끼호떼처럼 바싹 마른 형태가 되지만, 오목렌즈 앞에서의 세르반떼스는 산초처럼 뚱뚱한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이상주의자 돈끼호떼와 현실주의자 산초는 따라서, 세르반떼스 자신이 갖고 있는 이중성의 표현이며, 돈끼호떼가 작가를 닮았다고 말하지만, 이제는 산초조차 작가의 분신임을 알게 된다. 

[갈라떼아] (La Galatea)

소설 <돈끼호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세르반떼스는 시와 희곡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늘 ‘하늘이 주기를 원치 않는 은총’이라는 말로 자신의 운 없음과 관객의 몰이해를 한탄하곤 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문학적 자질과 작품들의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가들에 비해 독자들이나 출판사 등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로뻬 데 베가 (Lope de Vega)

당시 뻬 데 베가(Lope de Vega)라는 극작가가 인기를 누리면서 부와 명예를 독차지했는데, 상대적으로 세르반떼스는 가난에 찌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세르반떼스는 터키와의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알제리에서 감옥생활까지 한 만큼 나라를 위해 나름대로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창작에 있어서도 세속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로뻬 데 베가보다는 뛰어나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관객들은 세르반떼스의 극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으니, 이러한 시대상황을 간접적인 어투로 꼬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사회상으로 본다면 로뻬 데 루에다(Lope de Rueda) 이후에 스페인에 연극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그가 만약 극에서 성공했다면 경제적으로 많이 안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으니, 세르반떼스도 로뻬에 대해 극에서만은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는 로뻬 데 베가를 ‘괴물’라고 칭했는데, 거기에는 작품을 많이 잘 쓴다는 칭찬과 경이감이, 또 한편으로는 그의 창작 태도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이 들어 있는 말로 풀이된다. 로뻬 데 베가나 띠르소 데 몰리나, 그리고 깔데론 데 라 바르까 등 황금세기의 3대 극작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그의 극작품 역시 <돈끼호떼>를 비롯한 문학전반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내용을 시사하고 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문예]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I) (Camino de Santiago, su historia)

[문예] 나혜석의 스페인 여행 (스페인과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