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훈족(Hunos)의 침입과 게르만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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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Hunos)의 침입과 게르만의 이동
서양이 동양으로부터 대단위의 침략을 받은 대표적인 경우는 역사상 두 번으로 기억된다. 먼저, 훈족의 침입이며, 훗날 징기스칸의 서양진출은 두 번째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민족의 이동보다는 서양에 동양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 및 여러 가지의 문물을 전해주는 선에서 끝났지만, 전자의 경우는 유럽전체의 판도를 바꿀 만한 대단한 사건이었다.
서기 376년, 강력한 동양인들이 들이닥치자 흑해로부터 밀려나기 시작한 야만족 게르만족속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으며, 자신들의 본거지를 떠나 서쪽으로 행진해야 했다. 한편 서쪽에는 이미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 로마인의 땅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세력이 날로 약화되고 있었다. 결국 게르만족속들은 문화적으로는 볼품없었지만, 워낙 건장한 체력에다 많은 전쟁으로 단련되었기 때문에 서쪽으로 쫓기면서 오히려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서기 409년 이들이 등장하면서 로마인들이 손을 들었고, 550년경에는 반도의 중심 똘레도에 정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훈족의 침입과 게르만족의 이동은, 기존 라틴족 중심의 로마문화 위에 게르만족의 전통이 혼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 한편, 지금의 헝가리와 루마니아 등 동부유럽의 각지에서 아시아계 얼굴들이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 이동한 훈족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게르만족속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어서, 알라노족(Alanos)과 수에보족(Suevos), 그리고 반달족(Vándalos)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이들 야만족들 중에 반달족은 포학하기로 유명해, 지금도 ‘반달리즘’하면, ‘문명파괴주의’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였다. 로마인들이 세워놓은 찬란한 문화를 이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파괴하면서 진격했었던 것이다.

이들 야만 게르만족속들은 청동을 잘 쓰는 민족이었으며, 무기를 잘 다루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비시고도들은 나름대로 체제가 잘 잡혀진 민족이었으므로 이전의 야만족들을 물리치고 주도권을 잡게 되며,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기존 야만족들이 차지했던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들은 아리아니스모(아리우스파)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를 단지 선지자 정도로만 평가하고 있었으니, 기독교입장에서 볼 때는 이단이었다.
5, 6, 7세기의 교회들은 이러한 비시고도들의 건축양식, 즉 고딕 양식이란 독특한 모양을 띠기도 했다. 고딕 양식은 로마식의 넓고 평평한 아치를 반쯤 겹치게 놨을 때 생기는 뾰족하고 좁은 아치 형태를 말한다. 이렇게 로마식의 아치에서 변형된 이 양식은 보다 더 높고 웅장하게 건물을 지을 수 있고 더 견고하여, 교회 건축에 잘 어울린다.

로마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에서 기독교와 아리아니스모 간의 갈등이 있었으나, 결국 598년 똘레도에서 열린 제3차 종교회의 때 레까레도 왕이 기독교로 정식 개종함으로써 기독교화 된다. 이 왕의 개종은 강력해진 왕권을 상징하며, 전형적인 게르만형의 정치를 구가하다가, 결국 왕위 쟁탈전에서 화근이 되어 왕자가 백작들의 항거에 반대, 아랍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711년 이후는 아랍인들의 진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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