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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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하몬(Jamón)에 중독되고, 꼬리곰탕에 놀라고

하몬(Jamón)에 중독되고, 꼬리곰탕에 놀라고

스페인의 식당이나 까페떼리아에 들어가면 천장에 거대한 다리들이 걸려있는 게 보인다. 비위생적이란 인상과 함께 그 모양에 역겨움을 느낄 수 있지만, 일단 한 접시 주문해 먹는 다면, 그 다음 접시를 시키게 되고, 그에 덧붙여 포도주까지 한잔 더 추가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햄이라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 접하는 햄과는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햄은 열처리 가공해서 만들지는 것으로 스페인에서는 이것을 ‘하몬 꼬시도’(Jamón cocido)라고 부른다. 물론 그 종류도 많기 때문에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하몬은 돼지 다리를 통째 걸어놓고 적당 양을 잘라서 먹는 스페인 고유의 음식이다.

하몬 (Jamón)

하몬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스페인 특유의 기후 조건과 관계가 있다. 먼저 도살한 돼지의 다리를 잘라 소금에 며칠간 절여놓은 다음 제거했다가 다시 절여놓고 제거함을 2-3번 반복한다. 그 사이 돼지다리의 여러 세균이 제거되고 염분이 가미되어 상하지 않게 처리된다. 최종적으로는 소금에서 빼어내 깨끗이 씻어낸 다음, 수개월에서 2년 이상 걸어놓는데, 일반적으로 집의 천장이나 지하실의 선선한 곳에 걸어 놓거나, 굴이나 저장 창고에 넣어 두는 경우도 있다. 순전히 자연에 의존하여 처리되는데, 온도는 점차 올라가고 건조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건조해도 안 된다. 바깥부분은 초로 얇은 막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파리나 곤충의 접근을 막는다. 먹을 때는 겉 부분을 떼어내고 안의 살만  썰어 먹는다. 하몬을 만들기에 적당한 시기는 11월 초순경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때의 온도가 가장 적당하다. 갈리시아의 시골 한 가정집에서 하몬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잡은 돼지의 다리를 구입해서 소금에 절여놓기 위한 소금저장고가 있었으며, 거기서 빼내 물로 씻기 위한 수조 및 처리한 다리를 걸어놓기 위한 창고 안의 특수한 자리가 있었다.

무르시아, 갈리시아, 아라곤, 엑스뜨레마두라 등 스페인의 거의 저지역에서 만들며 먹으며, 일반적으로 좋은 하몬으로 ‘하몬 세라노’가 있지만, 살라망까나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나오는 ‘하몬 이베리꼬’(Jamón ibérico)가 가장 비싼 편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돼지가 어떻게 사육되었는가, 그리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가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고, 가격 차이도 있지만, ‘하몬 이베리꼬 데 베요따’, 즉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로 만들어진 하몬을 최고로 친다. 또 하몬 이베리꼬 데 하부고는 안달루시아의 시에라 모레나 산맥에서 자라는 돼지를 처리해 만든 것으로 맛이 있으며 가격도 높다. 스페인 가정에서는 다리 하나씩을 식당에 마련해놓고, 특히 보까디요나 술을 마실 때 곁들여 먹고 있는데, 마지막 남은 뼈와 약간의 살은 잘게 썰어 스프나 기타 음식의 재료로 쓴다. 호텔의 등급을 매기듯, 하몬은 등급에 따라 J 하나에서 J 다섯 개로 표시된다.  

하몬 저장고

한국 사람들 중에는 스페인 생활 중에 먹던 하몬이 그리워 한국으로 공수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다습한 한국의 기후에는 견디질 못하고 이내 곰팡이가 들어차고 상하게 되므로 빨리 소비하는 게 좋다. 스페인을 특히 좋아하는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하몬을 대량생산하려 했지만 습한 기후 때문에 실패했다고 한다. 

결국 하몬은 장기보관이 어렵고, 모양으로 봐서, 공항을 빠져나오기 어렵다. 하몬은 농축산물로 분류돼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오래 견디고 맛도 좋은 초리소나 살치촌 등을 들고 오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것들은 그냐 햄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접하고 나름대로 즐길지라도, 역시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먹고 싶게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금전 사정이 좋지 않은 유학생으로서 음식에 있어서도 절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 보는 게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데, 그런 과정에서 입에 맞는 몇 가지 음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비싸다고 해서 먹지 못했던 아귀를 스페인 시장에서는 싼 가격에 만날 수 있다. 이것을 라뻬(Rape)라고 하는데, 실제로 흉측하게 생긴 아귀의 생김새는 스페인에서 처음 보았다. 입맛에 썩 맞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비싼 생선이려니 하고 위안해가며 먹었다. 무를 썰어 넣고 국을 끓여 먹는 정도가 유일한 요리법이었고, 콩나물을 넣고 아구찜을 해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한국식품점에서도 콩나물은 고가에 구입해야 했으므로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마드리드의 수산시장 (메르까마드리드, Mercamadrid),

 그나마 이따금 푸짐한 저녁상을 차릴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삼겹살을 사서 쌈을 싸먹는 일이다. 다행히 스페인에서 돼지고기 삼겹살은 가장 싼 부위이다. 삼겹살을 빤세따(Panceta)라고 하는데, 저렴하게 구입하여 양껏 먹을 수 있어서, 유학생활 동안 내 체력 유지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어 주었다. 물론 시장의 단골 정육점 아저씨는 내가 가면 으레 빤세따를 사러 온 줄로 알고 다른 부위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유학생들이 단체로 모이는 야유회나 회식에서 값싼 삼겹살은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이었다.

시장 (Mercado)

 스페인 음식 안초아(Anchoa)는 안초비로 알려진 멸치 젓갈과 비슷한 가공음식이다. 사실 멸치는 아니지만, 모양이나 맛에 있어서 멸치젓이나 다를 바 없다. 스페인에서는 이 생선으로 여러 형태의 안초아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훈제보다는 소금에 절인 안초아가 우리 맛에 가장 적당하다. 안초아는 술안주로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김치 담글 때 젓갈로 유용하게 쓸 수 있어 스페인 생활을 하는 한국인에게는 고마운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멜론을 수박 자르듯이 썰어 그 위에 놀려먹는 맛이 일품이다.

안초아 (Anchoa)

 스페인에서 소꼬리를 맛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부담 없다. 한국에서는 특별한 날이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접하기 쉽지 않은 음식이지만, 스페인에서의 소꼬리는 고기를 살 때 끼어주는 사소한 것에 불과했었다. 현재는 그 가치가 인정되어 식당에서도 꼬리로 요리한 음식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래도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소꼬리 곰탕은 따라서 유학생활에서 지친 몸을 추스리는 데 비상약이 될 수 있었다. 불규칙하고 영양가 없는 식생활을 하다가 몸 좀 챙기자 할 때 생각나는 것이 바로 소꼬리곰탕이었다. 내게는 바로 그 소꼬리곰탕에 대한 추억이 하나 있다.

까요 (Callo a la madrileña, 내장스프)

 어느 봄, 유학생들의 운동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나는 몇 개월을 한국인 유학생들과 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 모여 오전부터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지칠 줄 모르고 운동에 전념했었다. 저녁 무렵에도 오랜만의 즐거운 시간이라 집에 갈 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완전히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가던 길에 라디오를 듣게 되었고, 뉴스에서 어느 집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순간, 불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아침에 곰탕을 끓이느라 가스렌지에 올려놓았던 소꼬리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가스렌지를 껐다는 주장과 끄지 않았다는 주장을 농담처럼 주고받으며, 혹시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았을까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집 근처에 닿고 있었다.

끄로께타 (Croqueta, 크로켓)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우리가 사는 집 앞에 붉은 불빛이 돌아가고 있었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의 긴 사다리 같은 것이 우리가 사는 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집 주변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은, 달려드는 우리를 보며 뭔가 심한 말을 던지고 있었다. ‘치노스’라고 했는지 ‘꼬레아노스’라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것이 한심한 동양인들의 부주의에 의해 생긴 불상사라는 것이었으니, 화난 그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파트 1층에 닿자 냄새가 진동했고, 엘리베이터를 통제하고 있던 소방관은 우리의 신분을 확인한 다음, 뭐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너무나 당황해서 들을 수가 없었다. 유학생활의 모든 것들이 집에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나 옷가지는 다시 구입할 수 있다고 해도, 10년 이상 유학생활을 한 선배가 마지막 손질하던 소중한 논문을 비롯하여, 각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료와 물건들이 불로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깔도 가예고 (Caldo gallero, 갈리시아식 스프)

우리는 무작정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집안에 들어서자 상황은 너무나 평온했다. 집이 온통 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검은 연기만이 열려진 창문을 타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하얀 천장과 벽이 검게 그을렸을 뿐 불이나 세간이 탄 흔적은 없었다. 가스렌지 위의 큰 냄비만이 완전히 검은 숱이 되어 있었다.

소방관들은 우리가 집주인임을 확인하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냄새가 나더니 6층 밖으로 검은 연기가 나서 이웃사람들이 소방서에 연락했고, 소방관들이 집에 도착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옥상에서부터 줄을 타고 특공대식으로 집안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부엌의 큰 냄비만이 강한 불에 타고 있었고, 불은 옆으로 번지지 않아, 큰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일로 한 동안 이웃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소방차 출동에 대한 영수증도,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연락도 없었으며, 이국에서의 큰 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상적인 유학생활을 무난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소꼬리곰탕을 대할 때면 그 때의 일들이 추억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또르띠야(Tortilla, 감자전)

세계 각 나라에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음식이 있으며, 그것은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한국인들은 한국음식을 굳건히 만들어낸다. 한국 음식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맛을 낼 수 있는 기본적인 재료가 젓갈이나 고춧가루, 간장 정도이며, 그것도 없다면 고춧가루, 또는 고추장 하나면 대부분이 충족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젓갈은 그곳의 생선을 이용하여 만들면 되고, 간장은 유사한 것을 다른 외국 식품점에서라도 구할 수 있다. 아예 그곳에 장기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집에 약간의 공터가 있다면, 한국에서 씨앗을 가져다가 고추까지 해결하고 완벽하게 한국음식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한국인의 음식에 대한 저력은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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