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속임의 미학(Engañ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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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의 미학(Engaño)
투우사는 소를 속인다. 그것도 멋지게 속여야 한다. 사람들은 그 속임을 보고 즐거워한다. 속임과 거의 붙어서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아슬하고 짜릿하다. 필사적인 속임이다. 속여야만 살 수 있음이 투우의 매력이다.
그러난, 투우에서, 그리고 스페인 문화에서 속임만이 있는 게 아니다. 속임의 이면에는 그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개념이 있으니, 스페인에서는 이를 데센가뇨(깨달음)로 해석한다. 한 사람이 속임을 당하게 되면 허망함이 따르고, 그에 대한 반성과 명상은 자연스럽게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즉, 속임과 깨달음의 사이에는 깨달음에 따른 ‘환멸’이 아닌, ‘정신차림’ 또는 ‘깨어남’이 존재한다. 또한 ‘황소는 스스로 속음으로써 보는 이에게 뭔가 깨달음을 주면서 죽어간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이쯤 되면, 투우의 예술로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소를 속이는 행위에조차 미학적 설명이 더해지고, 그것은 스페인 문화의 특징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 돈 후안에 의해 사랑의 속임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삶에 대해 더 강한 신념을 보이며 결혼에 다다른다. 돈 후안에게 속임은 실존적 삶의 한 형태이기도 했다. ‘속임’을 하는 동안 그는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을 행하지 않을 때는 이미 돈 후안이 아니다. 마치 돈끼호떼의 모험이 미친 상태에서만 가능했듯이 말이다.
어떤 이는 반데리예로의 행위에 또 다른 해석을 가하기도 한다. 극에서의 시의 기능을 여기에 빗댄다. 극적인 긴장을 시가 승화시키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객관성을 회복케 하는 것처럼, 반데리예로는 그 날랜 몸 동작으로 소의 숨통에 강한 작살을 가함으로써 소의 숨을 약화시키고 투우장의 분위기를 바꾼다. 관객들이 극에 익숙해져, 극 상황에 빠질 경우 시를 씀으로써, 관객을 극에서 나오게 하는 기능을, 황소의 기를 빼는 반데리예로의 행위에 비유한 것이다.
이 미학적인 투우의 끝은 관중들의 환호 소리와 손수건의 나풀거림에 따라 그날의 쁘레시덴떼(주: 일반적으로 그날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며, 행사의 성격에 맞춰 정해지기도 한다.)가 되는 사람이 판결을 내리는 시간이다. 관객의 손에 들려진 흰 손수건 같은 것들이 열광적으로 나풀거리고 ‘또레로’ 라는 소리와 함께 투우장이 떠들썩해지면, 투우를 주재하는 당일의 쁘레시덴떼가 관객의 반응과 자신의 평가를 종합해 손수건을 앞으로 내밀어 판결을 한다. 손수건 하나를 내밀면 황소의 귀를 하나 잘라 투우사의 용맹에 답해 주라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를 내면 다른 쪽의 귀도 잘라 주라는 것이며, 이어서 다시 하나의 손수건을 내밀면 이번에는 꼬리까지 잘라 주라는 뜻이다. 마지막의 경우는 투우사에게 최고의 영예이므로, 관객 중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뛰어내려와 투우사를 무등 태우고 투우장을 한 바퀴 돈다. 이 때 관중석에서는 꽃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물건들을 던져 축하해준다. 어떤 경우에는 여자의 속옷가지를 던진다고 한다.
이윽고 투우사를 태운 무등 행렬은 투우장의 큰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고, 그의 영예를 사람들에게 알린다. 일반적으로 귀 하나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렵다고 말할 수 없으나, 두 개의 귀, 그것도 꼬리를 얻는다는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투우사들도 가장 큰 영예로 생각하며, 투우사의 경력은 바로 이 귀와 꼬리의 숫자로 구분되기도 한다.

빰쁠로나 축제는 좀 더 이색적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황소들과 같이 거리를 달린다. 손목과 목에는 빨간 천을 묶고 소들의 앞에 서서 달리다 넘어지고 일어나 다시 뛴다. 넘어진 사람은 땅에 바짝 엎드려 소에게 밟히는 것을 피하려 하는데, 흥분한 소들은 이런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그 위를 짓밟고 달린다. 거친 황소의 뿔은 한 젊은이를 공중에 붕 뜨게 만들고, 부상자가 속출하고, 죽는 사람까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무모한 축제를 보고 한심하다고 말하지만 참여하는 젊은이들은 죽음보다, 왕성한 용기에 가치를 더 주는 것 같다. 이 축제를 보고, 참가하기 위해 각지의 관광객들과 외국인들이 몰리며, 외신을 타고 외국의 여러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된다. 빰쁠로나시의 축제를 통해 알려진 일종의 소몰이는, ‘인시에로’라 불리는데, 이 행위는 원래 축제가 시작되면서 소들을 목장에서 투우장에서 가까운 외곽으로 옮겨, 임시로 가둬둔 장소에서 투우장까지 데려가는 과정의 산물이다. 그들은 이 과정을 또 하나의 축제로 만들었고 결국 스페인의 또 하나의 명물이 되고 있다.
이전의 투우는 말을 타고 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처음부터 끝까지 말을 타고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 투우를 볼 수 있다. 한편, 말에서 내려 투우사가 일대일로 대결하는 형태는 17세기 말, 스페인 남부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투우사가 쓰는 빨간색의 물레따도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투우는 저녁 6시경에 시작되며 한 마리를 다루는 데 약 15분 정도 걸린다. 투우도 여러 급수가 있어 투우사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가는 게 좋으며, 아마추어들이 마을에서 하는 투우는 ‘까뻬아스’라고 부르고, 어린 송아지를 가지고 하는 투우를 ‘노비오스’라고 한다. 마드리드에서 투우 시작 전 소를 임시 가둬두던 곳으로, 까사 데 깜뽀 공원 옆의 바딴이란 곳이 있는데, 그 인연으로 그런지, 지금도 투우사를 양성하는 학교가 까사 데 깜뽀에 위치하고 있다.

투우를 굳이 예술 행위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과연 투우는 예술가의 감흥과 통하는 것같다. 예술가는 삶을 도려내어 그 토막 토막을 글을 비롯한 예술의 여러 방법으로 표현하고 작품으로 창조해낸다. 투우사는 거대한 몸집의 황소가 거품을 물고 자기 심장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 간담이 하나씩 쓸어 내려질 것이다. 그 순간 투우사의 가슴에도 삶의 예술과 미학이 빠르게 스쳐간다. 이렇게 투우에는 죽음과 삶이 동시에 작용하고, 다른 예술가들에게까지 위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피까소를 비롯한 작가들의 창작적 모티브가 투우였고, 그 역시 스스로 그것을 행함으로써 죽음의 한가운데서 야릇하게 튀어 오르는 삶의 환희를 만끽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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