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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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태양은 빛이 되고 그늘이 되어, 마드리드(Madrid)

태양은 빛이 되고 그늘이 되어, 마드리드(Madrid)

바라하스 공항(Aeropuerto Barajas)은 마드리드의 문이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바라하스의 얼굴은 온화하고 따스하다. 적어도 삼엄한 경계 같은 건 없다. 여권을 보여 달라는 사람에게 ‘올라!’ 하는 한 마디만 하면 미소와 함께 쉽게 통과 사인을 받을 수 있다. 괜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여러 생각으로 가슴 조일 필요는 없다. 

공항의 자동문이 열리고 훅 끼쳐오는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어느새 스페인 중심에 와 있음을 느낀다. 매번, 달라지지 않는 이 자리의 풍경과 익숙한 공기... 마드리드는 십 년 전이나 십 년 후나 비슷한 모습이고, 오십 년 후에 찾아와도 별로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들은 기존의 틀 속에 자신을 맞추고, 거기서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바라하스 공항 (Aeropuerto Barajas)

스페인의 심장에 위치한 수도 마드리드는 ‘산복숭아와 곰의 마을’ 이라고도 불린다. 마을의 산등성이에 마드로뇨 나무를 잡고 열심히 열매를 따먹는 곰을 사람들이 보고는 그것을 문장(門帳)으로 삼았고, 지금은 그것이 시의 상징이 되었다.

마드리드의 기원을 알려면 서기8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의 마드리드는 아랍 세계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 이후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물이 고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마드리드는 바로 아랍어 ‘마헬리트’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태양의 문 (솔 광장)에 세워진 마드로뇨 (산복숭아) 나무와 곰 (마드리드 시의 상징) 동상

1083년, 까스띠야 왕국의 알폰소 6세는 아랍인들로부터 마드리드를 회복한다. 그리고 1492년 스페인이 통일되고, 1561년에는 펠리뻬 2세가 오랫동안 이 나라의 수도였던 똘레도에서 이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귀족 파벌간의 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똘레도가 이민족과 이종교의 수도였고 지형적으로도 더 이상 확장하기 어려웠으므로 마냥 고집할 수는 없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최종적으로 마드리드가 수도가 되기까지는 똘레도에서 마드리드로, 마드리드에서 바야돌릳으로, 다시 바야돌릳에서 마드리드로 옮기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황금 세기에는 엘 그레꼬, 미겔 데 세르반테스 같은 작가와 화가들이 마드리드와 똘레도를 배경으로 활동했고, 특히 황금세기의 3대 극작가였던 로뻬 데 베가, 띠르소 데 몰리나, 깔데론 데 라 바르까 등에게 바로 마드리드가 출생지이자 활동 무대였다.

1830년대까지 이어진 나폴레옹군과의 전투로 인해 마드리드는 황폐화되었지만,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도시 정비를 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18세기부터다. 이 시기에 학문과 문화의 모양이 잡혀지고  쁘라도 미술관, 냅튠 분수, 시벨레스 분수, 식물원, 똘레도의 문, 뿌에르따 데 이에로, 알깔라 문 등이 들어섬으로써 현재 마드리드의 골격이 세워진 셈이다. 가장 예술적으로 치장된 시기도 바로 18세기로, 이 시기에 멩그스, 가스빠리니, 고야가 활동했다. 19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스페인 은행, 레띠로 공원이 시내 중앙에 들어서고 도시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도시 구조를 보면, 태양의 문이 있는 솔 광장을 중심으로 마치 태양이 주변으로 빛을 내뿜듯 아홉 개의 도로가 방사선형으로 퍼져 있고 모든 거리는 솔 광장 쪽에서부터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지게 된다. 마드리드에서 길을 찾는다면, 태양의 문과 마요르 광장, 그리고 시내 중심을 찾는다면, 먼저 길의 번호를 볼 것이며, 숫자가 낮은 쪽을 보면서 감을 잡을 수 있다.

스페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뿌에르따 델 솔(Puerta del Sol, 태양의 문, 솔 광장)은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는 초라하고 작게 느껴진다. 스페인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곳이고, 스페인의 중앙 마드리드, 그리고 그 마드리드의 심장지역으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에 상상과 함께 우리의 기대치는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흔히 솔 광장이라고도 불리우는 태양의 문은 마드리드 어디서나 사람들의 접근이 가장 쉬운 곳이며 상업적 기능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울에서 종각 주변이 만남의 장소이듯, 솔 광장은 마드리드 사람들의 약속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솔 광장의 종탑 건물 정문과 차길 사이의 인도에는 이곳이 스페인 모든 지역의 중심지라는 의미에서 ‘0KM’ 표시가 바닥에 그려져 있다.                         

뿌에르따 델 솔 (Puerta del Sol, 태양의 문, 솔 광장)

솔 광장에서는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분수대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얼굴은 색색이 다르다. 중남미인들과 아프리카인 그리고 동양인들이 함께 몰려 있고, 여기저기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의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 여기서도 소매치기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곳의 소매치기들은 전문적이지는 않다. 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 정도의 기술이 없다는 것이다. 눈치챈 여행자가 큰 소리라도 친다면 금방 도망갈 자세여서, 측은한 이들에게 어떤 때는 그냥 몇 푼 주고 싶은 경우도 있다.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거리마다 거품 스프레이가 판을 치는데, 소매치기들은 일부러 사람들의 겉옷에 거품을 뿌린 다음 그것을 지적해주고, 여행자가 옷을 벗으면 가방을 들어주는 친절을 베풀며 접근하기도 한다.

만일 소매치기와 접하게 된다면 강인한 태권도 동작을 보여주는 것도 운 좋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동양인은 뭔가 호신술, 태권도나 가라떼 정도는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둑을 맞는다면 일단 꼬미사리오(Comisario, 경찰서)에 가서 여러 가지 신원에 대해 서류를 작성하며 잃어버린 물건과 위치, 그리고 그 경위에 대해서 쓴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관광의 중심지답게 솔 광장 주변에는 호텔과 오스딸(일종의 여관)이 즐비하며, 음식점들도 많다. 한편, 극장이 밀집되어 있기도 하다. 쁘린시뻬 거리(Calle Príncipe)에 자리잡은 떼아뜨로 에스빠뇰 극장(Teatro español) 및 떼아뜨로 끌라시꼬(Teatro clásico)를 비롯하여 오래된 연극장이 많은 편이다.

마드리드의 구시가지는 솔 광장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다. 솔 광장에서 그란 비아 거리와 왕궁을 서로 잇는 삼각형 지대가 마드리드의 전통적 중심지이며 이 곳은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관광객의 증가는 시의 예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오래된 지역은 손댈 수 없도록 규제함으로써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건물의 외부는 단지, 닦고 원형대로 보수만 할 수 있으며, 내부만을 최신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스페인에는 건물보수 기술이 짓는 기술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건설 연대 표시를 보며 들어선 건물 내에는 최신식 엘리베이터에, 대리석이 번쩍거리고 있어서 금방 지은 건물과 다름없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 건축과 문화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외형을 버리지 않으면서 내적인 것들은 현대의 기호에 맞게 개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의 외곽으로 새로이 건물이 생기는 것은 그래도 마드리드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위에서 본 쁠라사 마요르 (Plaza mayor, 마요르 광장)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광장은 바로 쁠라사 마요르(Plaza mayor, 마요르 광장)이다. 마드리드는 쁠라사 마요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므로 이 광장은 마드리드의 중심이요, 넓게는 스페인의 중심이라고 정의해도 될 것 같다.                                  

쁠라사 마요르 (Plaza mayor) (내부)

스페인의 광장이 갖고 있는 특징은 사람들이 방사선 형태의 모든 길에서 찾아들기 쉽고,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모든 정보가 집결되며, 상대적으로는 사람들이 흩어지고 정보가 출발하는 장소가 된다는 점이다. 스페인의 문화는 이렇게 광장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 같다. 마요르 광장의 한 쪽에는 교회가 자리잡으며 가까이에 학교 건물이 광장의 한 면을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주택과 상점으로 채워진다. 즉 이 광장을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일어나 몇 걸음이며 시장에 다녀올 수 있고, 학교도 쉽게 갈 수 있다. 물론 교회도 오가며 매일 찾을 수 있다. 통제도 쉬우며,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자체가 성의 역할을 수행한다. 밖이야 어떻든 그 안에서는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광장이다.

물론 광장은 확장의 여지, 즉 발전 가능성에 있어서는 제한을 받는다. 이미 도시가 생겨날 때 광장을 중심으로 주거지와 학교 등의 건물이 자리잡았으므로 광장은 스스로의 몸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광장의 외형을 처음 만들어 준 사방의 건물들은 이제 광장의 확장을 가로막고 있는 꼴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광장의 규모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최대한 그 규모에 맞춰 살아간다. 광장 문화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완전한 형태의 광장이 새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기존의 광장에 자신을 맞추게 되고, 이런 점은 개방된 문화에 비해 발전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교류 규모가 작았던 과거에는 광장이 중요했지만 외부와의 밀접한 소통을 중시하게 된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그 역할이 약화되는 분위기다. 

 마요르 광장을 에워싼 건물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표 건축물이며, 19세기말까지는 투우 경기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1970년까지는 전차가 이 곳을 통과했었다. 광장 중앙에는 이 광장을 만든 펠리뻬 3세가 말을 탄 모습으로 서 있다. 또한 이 곳은 왕궁에 근접하고 있어, 왕실 행사에 주로 사용되었는데, 전쟁에 파견될 기사들도 여기서 모였다가 흩어졌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생겨나는 마요르 광장의 그늘에는 여지없이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지나는 사람들을 한가하게 보면서 커피나 스페인 특산 음료를 마시는 것도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식당이나 바에서는 스페인 전통 요리나 춤을 즐길 수 있으며, 그 중에서 헤밍웨이가 작품을 쓰며 이곳에 머물렀을 때 자주 찾았다는 보띤 식당이 유명하다. 경제적인 식사를 원한다면 광장의 4면 중에 주차장 입구 쪽으로 가다 만나는 골목의 작은 바에서 바게트 속에 일정 간격으로 잘게 썰어(원형으로) 튀긴 오징어를 넣은 보까디요 꼰 깔라마레스로 가볍게 식사할 수 있다.

 세계를 지배했던 스페인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건축물을 꼽으라면 단연 빨라시오 레알(Palacio real, 왕궁)을 들 수 있다. 펠리뻬 5세(Felipe V) 때 지어진 이 왕궁 앞에는, 선왕 펠리뻬 4세(Felipe IV)의 동상이 서 있다. 왕궁은 유럽을 비롯하여,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곳을 상징적인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여러 곳에서 수집된 재료로 건물과 방들을 장식하고 있다. 건물이 지어졌을 때는 이미 하강곡선에 있었던 스페인이지만, 세계의 여러 곳을 주름잡았던 제국, 스페인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건물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로꼬꼬와 신고전주의적 방법으로 지어져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왕궁 (Palacio real) (전면)

스페인의 왕궁은 여러 곳이 있었지만 왕들은 주로 마드리드의 중앙에 있는 이곳에서 생활했고, 다른 곳은 계절에 따라 이동하면서 잠시 동안 머물던 왕궁들이다. 현재의 스페인 왕은 사르수엘라라는 교외에 위치한 왕궁에 살고 있으며, 빨라시오 레알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돼 중요한 관광 코스가 되었다                               .

왕궁 (Palacio real) (후면)

왕궁 주변에, 왕궁을 바라보며, 화려했던 시절의 스페인을 맛볼 수 있는 장소로 까페 데 오리엔떼가 있다. 오래된 이 까페떼리아는 비싼 게 흠이기 하지만, 왕궁과 벨라스께스가 살았던 집 옆에 있어, 오래 전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마드리드 사람들이 봤던 그런 광경과 분위기를 공유하는 느낌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주변은 문화, 예술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까페 데 오리엔떼에 있노라면, 신문이나 텔레비젼에서 낯익은 연예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광장의 다른 편에는 대형 연극장인 떼아뜨로 레알(Teatro real, 왕립극장, 궁정극장)이 있다.                                 

왕립극장 (외부)
왕립극장 (Teatro real) (내부)

다시 태양의 문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내려온 길 저만치에서는 사자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오만하게 앉아 있는 여인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바로 대지의 여신인 시벨레스이고, 자기 이름을 딴 시벨레스 분수(Cibeles)의 여주인이다. 레띠로 공원과 알깔라 문에서 내려와 솔 광장 쪽으로 이어지는 거리와 빠세오 데 까스떼야나가 만나는 중앙에 위치한 시벨레스 광장은 마드리드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고향으로 여겨진다.

시벨레스 (Cibeles) 분수

사실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많지만, 많은 여행자들은 마드리드 하면 시벨레스 분수를 떠올린다. 마침 당신이 여행한 날 마드리드의 축구팀이 승리하거나 스페인 대표팀이 이겼다면, 사람들이 시벨레스의 물에 빠져 흥분을 달래는 진풍경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벨레스 분수와 광장에 모인 사람들

 마드리드를 이루는 것은 그곳에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이미 선대의 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남겨놓은 생활공간들이 유적처럼 버티고 서있으며, 거리 곳곳에는 많은 동상과 기념물들이 즐비하여 도시는 전체가 예술작품이라고 감히 명명할 수 있겠다. 한 작가가 1개월을 머물던 곳이라도, 그 건물 외벽의 적당한 높이에 설명서를 붙여 놓는다면, 그 차제가 기념물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악명 높은 사람의 것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유명한 사람이면 족하다. 이런 식으로 마드리드에는 기념물이 즐비하며, 공동묘지조차 관광 코스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사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을 없애는 게 편하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현재조차 과거가 될 것이며, 미래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마드리드의 발전이 더딘 이유가 지나치게 과거의 것을 유지하려는 성향에서 나왔다면, 다시 그 과거 때문에 현재의 마드리드가 존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유산화된 마드리드에는 아직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도시를 살찌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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