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당장 집 밖으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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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키호테』는 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인간과 사회를 비추는 살아 있는 고전이다. 이 작품은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말고, 결과보다 행동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자는 돈키호테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돌아보며 깊은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인간 내면의 두 자아가 공존함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메타픽션, 자기반영성, 상호텍스트성 등 현대 문학이론의 핵심 개념을 이미 담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질문하며 오늘날 SNS와 AI 시대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의미는 작가만이 아니라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현대적 독서관을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수없이 실패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과 용기를 상징한다. 결국 『돈키호테』는 행동, 자기창조, 성찰, 도전, 용기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 작품이다.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고전읽기 #행동하는용기 #자기성찰 #자기창조 #현실과이상 #실패를두려워말라 #메타픽션 #오늘의고전

윤준식(YOON)의 놀이터(Parque infantil)(I)

[블로그를 시작하며]

세상은 '해석'이다.

물론, 이 말은 '사람의'라는 제한을 둬야할 것 같다.

'우주'가 있고, '자연'이 있을 뿐이다.

그 안에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생명은 숨쉬고 움직이는 게 다가 아니다.

빛, 공기, 물, 흙 등은 무생물이라고 말하지만, 생명체는 거기에 뿌리를 두고 산다.

그래서 생명체와 무생명체는 구분할 수 없이 '하나'다.

세상을 이렇게 인식하고, 세상 이야기를 할 때는, 분명 제한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사람의'라는 조건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세상은 '해석'이다"라는 말에서, 결국 "세상은 '나의 해석'일 뿐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의 해석은 매일 매일 달라진다.

아니, 매 순간 달라지기도 한다.

오늘 내가 깨달은 것이, 내 인생 끝날 때까지 절대적인 것 같지만, 내일이면 달라진다.

이 순간 깨달음이 금방 달라진다는 점에서는 불행하지만, 그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역시 '나의 해석'에 달려있을 뿐이니......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데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의미에 대한 질문 자체가 중요할 뿐, 그 답 역시 '나의 해석'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놀이터'라고 지어봤다.

어제 만들고, 오늘 다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다.

말하자면, 오늘의 해석이 절대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포기했다.

오늘 이렇게 해석하고, 내일 다르게 해석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놀이터'이고, 놀이터에서 놀았던 자취, 즉 나의 하루짜리 유효기간의 해석들을 (의미없지만) 보관해놓기로 했다.

그냥 기념사진 찍어 앨범에 넣어 두는......

생각날 때, 다시 볼 수도, 아니면 다시는 안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관할 공간을 찾았다.

여기에서는 맘대로 '서랍'(나는 이것을 '빼닫이'라고 부른다)을 만들 수 있다. 

언제든지 열어서 볼 수 있고, 다시 닫아 놓을 수도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사이버 공간에 만들어진 이 공간과 그 속의 빼닫이는, 한 번의 '클릭'으로 모든 게 사라진다.

어쩌면, 그것이 삶을 가장 솔직하게 반영해주는 것이 아닐까?

놀이터는 내 놀이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거기서 놀 때 만, 나의 놀이터일 뿐이다.

삶은 내 놀이터에서 내 방식대로 놀이하는 것이다.

그 놀이에는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해석하고, 만든다.

의미?

그 역시 나의 해석에 달려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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