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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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식(YOON)의 놀이터(Parque infantil)(I)

[블로그를 시작하며]

세상은 '해석'이다.

물론, 이 말은 '사람의'라는 제한을 둬야할 것 같다.

'우주'가 있고, '자연'이 있을 뿐이다.

그 안에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생명은 숨쉬고 움직이는 게 다가 아니다.

빛, 공기, 물, 흙 등은 무생물이라고 말하지만, 생명체는 거기에 뿌리를 두고 산다.

그래서 생명체와 무생명체는 구분할 수 없이 '하나'다.

세상을 이렇게 인식하고, 세상 이야기를 할 때는, 분명 제한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사람의'라는 조건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세상은 '해석'이다"라는 말에서, 결국 "세상은 '나의 해석'일 뿐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의 해석은 매일 매일 달라진다.

아니, 매 순간 달라지기도 한다.

오늘 내가 깨달은 것이, 내 인생 끝날 때까지 절대적인 것 같지만, 내일이면 달라진다.

이 순간 깨달음이 금방 달라진다는 점에서는 불행하지만, 그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역시 '나의 해석'에 달려있을 뿐이니......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데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의미에 대한 질문 자체가 중요할 뿐, 그 답 역시 '나의 해석'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놀이터'라고 지어봤다.

어제 만들고, 오늘 다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다.

말하자면, 오늘의 해석이 절대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포기했다.

오늘 이렇게 해석하고, 내일 다르게 해석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놀이터'이고, 놀이터에서 놀았던 자취, 즉 나의 하루짜리 유효기간의 해석들을 (의미없지만) 보관해놓기로 했다.

그냥 기념사진 찍어 앨범에 넣어 두는......

생각날 때, 다시 볼 수도, 아니면 다시는 안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관할 공간을 찾았다.

여기에서는 맘대로 '서랍'(나는 이것을 '빼닫이'라고 부른다)을 만들 수 있다. 

언제든지 열어서 볼 수 있고, 다시 닫아 놓을 수도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사이버 공간에 만들어진 이 공간과 그 속의 빼닫이는, 한 번의 '클릭'으로 모든 게 사라진다.

어쩌면, 그것이 삶을 가장 솔직하게 반영해주는 것이 아닐까?

놀이터는 내 놀이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거기서 놀 때 만, 나의 놀이터일 뿐이다.

삶은 내 놀이터에서 내 방식대로 놀이하는 것이다.

그 놀이에는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해석하고, 만든다.

의미?

그 역시 나의 해석에 달려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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