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다'(Obrar)라는 말은 '생존한다'(Vivir)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은 만드는 역사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일이며, 자신을 보호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키려는 행위다. 영원히!
나무, 풀, 동물,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향하며, 그래서 '만든다'. 소나무가, 유칼립투스가, 장미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과 대응 하듯이, '인위'는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대응하는 '생존 방식'이다.
인류의 문명과 문학, 철학, 문화, 예술, 과학 등은 그간 쌓은 생존 방식을 체계화한 것이며, '인문학' 역시, 인류 생존의 흔적이며, 기록이며, 미래 생존을 위한 자료다.
인쇄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인터넷 상의 글, 사진, 동영상 등이 그것을 빠르게 대체한다. 도서관의 책 중에, 살아남을 책이 얼마나 될까?
'만든다', 즉 '생존한다'는 것에서 그동안 나에게서 나왔고, 앞으로도 나오는 생각과 상상의 흔적을 여기에 저장해놓는다!
행운을......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I) (Camino de Santiago, su historia) 711년 이후부터 스페인은 아랍인들의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722년 북부 산악지대인 아스뚜리아스(Asturias)의 꼬바동가(Covadonga) 전투에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였듯이, 1492년 그라나다에서 아랍 세력이 축출될 때까지 스페인은 끊임없이 싸워 나갔다. 국토회복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군으로는 엘 시드(El Cid), 즉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ir)가 있어 스페인인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지만, 사실 정신적으로 스페인을 아랍 세력과 대항하게 하였던 힘은 바로 기독교였다. 이슬람 세력의 북진을 막게 된 꼬바동가 전투(Batalla de Covadonga) 스페인의 기독교는 598년 비시고도(Visigodo)의 왕 레까레도(Recaredo)에 의해 국교로 정해진 뒤 정치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스페인의 전통 신앙이 되었으며, 이후 스페인 통일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현대 스페인에도 그 전통이 이어지는 기독교는 레꽁끼스따 기간 중에 대단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스페인 왕가의 기원이 된 돈 뻬라요(Don Pelayo)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떠난 사도 야고보(Jacobeo, James)의 묘가 9세기에 스페인 땅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과장되어 퍼진 적이 있다. 그러나 갈리시아 지역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같은 이름의 인물이 세월이 흐르면서 성경에 나오는 야고보로 혼동되고 전이되면서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갖고 당시 서쪽 땅끝으로 여겨지던 스페인 땅에 사도 야고보가 들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이후 예루살렘에서 처형당했다. 사도 중 첫 번째 희생자였다. 엘 시드(Rodrigo Díaz de Vivar) 어쨌든 성경 속의 야고보로 둔갑한 야고보의 전설이 유럽 전역에 ...
나혜석의 스페인 여행 나혜석에 대한 관심은 [자화상]에서 출발했지만, 사실 작품보다는 그녀의 삶이 더욱 흥미롭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성으로서 교육을 받고, 서양미술로 일본 유학을 갔었다는 점도 특이할 수 있으나, 당시 보통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실제로 감행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 하다. [스페인 항구] 1927년에 부산을 떠나, 프랑스의 파리를 비롯, 이탈리아의 밀라노,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독일의 베를린, 영국의 런던 및 알프스산을 비롯, 스위스와 벨기에 등에 가고, 그곳의 유적과 박물관, 미술관들을 방문한 바 있다. 물론 잠시 스페인도 간 적이 있다. 귀국 길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시카고, 그랜드 캐년, 로스앤젤레스, 마리포사 대삼림 등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배편으로 들어오면서, 하와이, 요코하마, 도쿄를 거쳐 1929년 3월에 귀국한다. 이렇게 보고, 경험한 것을 [삼천리]와 [중앙]이라는 월간잡지에 게재하였으니, [열정의 서반아행]도 그 중의 하나다. 나혜석이 유럽에 있으면서 그린 작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스페인 항구], [스페인 국경], [스페인 해수욕장]는 내 관심을 끈다. 작품이 갖는 예술성에 대해서보다는, 어쩌면 그곳이 정확히 어딘 지에 대한 호기심일 것 같다. [스페인 국경] [스페인 해수욕장]에 보이는 산과 건물들 모습이 분석의 단서를 제공하는데, 현재 구글에 나오는 사진들을 검토해본 결과, 스페인 서북부 산 세바스띠안(San Sebastian)에서도 유명한 쁠라야 데 라 꼰차(Playa de la Concha, 조개해변)임을 알 수 있다. 이국의 아름다운 호텔 빨라시오 데 미라마르(Palacio de Miramar)에 머물면서 방에서 보이는 해변을 그림으로 옮겼던 것이다. 당시 독일에 있던 남편 대신, 조선의 다른 남자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으며, 그 때 그녀는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있었다. [스페인 해수욕장] 조선의 땅에서 태어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