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과 기고문] 비교관점에서 본 ‘피가로’와 ‘삐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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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관점에서 본 ‘피가로’와 ‘삐까로’
(『불한당의 보고서』,『세빌랴의 이발사』,『피가로의 결혼』를 중심으로)
I. 서론 및 문제제기
II. 삐까로와 피가로의 공통점과 차이점
II-1. 출생신분의 문제 II-2. 주종관계의 문제 II-3. 결혼의 문제
III. 결론
I. 서론 및 문제제기
‘삐까로‘(Pícaro)와 ‘피가로‘(Figaro)1)의 비교는 그 자체가 흥미로운 요소를 내포하고 있 다. 특히 스페인문학을 하는 입장에서는 삐까로라는 인물에 대해 문학사적인 중요성이 이미 인식되어있고, 일상적인 의미에서 피가로 역시 익숙한 인물이기 때문에 양자를 비교해본다 는 사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프랑스문학을 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전자에 대한 정의나 이해의 부족으로 대단히 새로운 접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본 글에서는 우리 에게 잘 알려진 피가로라는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인식의 바탕을 잡고, 거기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삐까로를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여기에 피가로와 삐까로가 이름의 유사 성을 넘어 어원적으로, 그리고 성격적으로 볼 때,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 실에 접근한다면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연구대상으로 잡아봤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음악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피가로와 로시 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의 피가로가 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셰(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32-1799)의 피가로에서 나오고, 다시 보마르셰의 피가로는 스페 인의 삐까로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이를 통해 다양하고 의미있는 결과가 도출될 것 이란 기대에서 양자를 비교하기로 한다.
1) ‘피가로‘는 불어의 ‘Figaro‘를 말하는 것이며, 엑센트를 붙여 ‘Fígaro‘로 쓰이기도 한다. 사전에 따르면 18세기 프 랑스 극작가 ‘보마르셰의 3대극(Le barbier de Séville, Le mariage de Figaro, La mere coupable)에 등장하는 인물‘로 표현되어, ‘희극 속의 인물‘로 설명되는가 하면, ‘면도를 직업으로 하는 이발사‘(Barbero, el que tiene por oficio afeitar)(『Nueva Enciclopedia Larrousse』, tomo 4, Barcelona, Planeta, 1984, 3944쪽)로 정의되기도 한다. 한편 보마르셰의 작품에서 피가로는 여러 일을 전전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발사였기 때문에 사전 상 피가로란 인물의 기원은 보마르셰의 작품과 연관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삐까로‘라는 이름의 어원은 불확 실하다고 적고 있으나, ‘교활한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영리하지만 악의를 갖거나 상황을 이용하는 인물 ‘(Que tiene picardía, o que es astuto, malicioso o aprovechoso)이며,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 출신이면서 얼굴 이 두껍고, 예리하지만 심술궂은 사람의 유형‘(Tipo de persona descarada, astuta, traviesa, de la más humilde condición social)(『Diccionario Didáctico de Español』, Madrid, SM, 1997, 953쪽)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16세기에 본격적으로 작품화된 스페인문학의 삐까로를 통해, 18세기 프랑스문학에서 강하게 파장을 일으킨 ‘피가로 연구‘에 새로운 원형적 접근을 가해, 기존 피 가로에 대한 접근에 새로운 정보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시기, 타문학에 등 장한 유사한 인물을 통해 스페인 삐까로의 특징을 다시 한 번 조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를 갖고 있다. 아울러 프랑스문학에서 피가로의 ‘미학적‘(인물의 극적 역할), ‘사회적‘(신분과 구습타파), ‘정치적‘(사회비판과 혁명성) 제반 의미 등을 밝혀볼 수 있고, 피가로가 시간적, 공간적 차이를 둔 삐까로의 픽션화, 또는 간접화라는 의미로 피가로를 분석해 봄으로써, 현 실적인 인물과 문학화된 인물간의 차이점은 물론, 프랑스적 인물, 피가로의 출현 의도와 의 미 분석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본다.2)
그러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본 연구의 대상을 삐까로와 피가로로 잡을 경우 그 범위 는 대단히 넓어져, 연구의 의미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우리는 두 인물의 대상을 문학 작품화된 인물에서 찾아야 할 것인데, 작품도 작가와 시대에 따라 인물의 유형 도 대단히 다른 양상3)을 보이기 때문에 한 시대, 한 작가의 작품으로 국한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두 인물에 대한 원형적 분석을 한다는 의미에서 아직까지 알려진 범위 내에서 스페 인 ‘피카레스크소설‘4)의 첫 보기로 잡는 『불한당의 보고서』5)와 피가로라는 이름으로 구체
2) 현재까지 ‘피가로‘와 ‘삐까로‘간의 직접적인 연구로 논문을 쓴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 본 논문은 두 인
물간의 비교와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3) 삐까로의 특징으로는 ‘자전적인 화법‘(Relato autobiográfico), ‘명예와는 관련없는 부모‘(Hijo de padres sin
honra), ‘도둑질‘(Ladrón y utiliza tretas ingeniosas para robar), ‘사회 내에서 상승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으나 좌절‘(No logra salir de su estado miserable),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새로운 불행‘(Suerte y desgracia se alternan en su vivir), 그리고 ‘결코 환상적인 표현이 없고, 사실적인 표현‘(Realismo) (Fernando Lázaro y Vicente Tusón, 『Literatura española』, Madrid, Anaya, 1988, 84쪽) 등이라 단순화하지만, 이것도 『불한당의 보고서』나 『구스만 데 알파라체의 참회』(Guzmán de Alfarache) 정도에서 발견된 공통점이고, 작품마다 다 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이를 두고 ‘탈격화‘(Desgradación)(Enrique Tierno Galván, 『Sobre la novela picaresca y otros escritos』, Madrid, Técnos, 1974, 12쪽) 또는 '탈원형화‘(Desvirtualización)이란 표현 을 쓰기도 하는데, 시대와 작가에 따라 주인공의 모습은 달라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권은희의 「La desvirtualización del pícaro en «Aventuras del Bachiller Trapaza» de Alonso de Castillo Solórzano, Símbolo de la decadencia del género picaresco」, 〈서어서문연구〉, 10호, 서울, 한국서어서문학회, 1997, 259-271쪽)에 설명되어있다. 위에서 언급한 Enrique Tierno Galván은 그의 책(15쪽)에서 진정한 피카레스크적 작품으로 『Vida de Lazarillo de Tormes y de sus fortunas y adversidades』, 『Vida del pícaro Guzmán de Alfarach e』, 『La pícara Justina, Vida del Buscón』, 『Vida de Estebanillo González』 등 5개를 선정하기도 한다.
4)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스페인에서는 소위 ‘피카레스크소설‘이 대단히 많이 만들어졌는데, 『Vida de Lazarillo de Tormes y de sus fortunas y adversidades』(작자미상, 1554)를 비롯해서, 『Vida del pícaro Guzmán de Alfarache』(Mateo Alemán, 1599), 『La pícara Justina』(Francisco López de Úbeda, 1605), 『La hija de Celestina』(Salas Barbadillo, 1612), 『Vida del escudero Marcos de Obregón』(Vicente Espinal, 1618), 『Vida del Buscón』(Francisco de Quevedo, 1626), 『Lazarillo de Manzanares』(J. Cortés de Tolosa), 『Segunda parte de Lazarillo de Tormes』(J. de Luna, 1620), 『La Garduña de Sevilla』(Castillo Solórzano, 1642) 등이 이 장르로 분류된다. 이 밖에도 많은 작품에서 삐까로같은 인물이 등장하며,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 었으니 그곳에서는 스페인의 삐까로를 닮은 인물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현대 문학에서도 삐까로는 계속 출현하 고 있다. 김춘진교수는 “넓게 보면 『돈끼호떼』는 물론이고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나 토마스 만 의 『펠릭스 크룰』(Felix Krull)에 이르기까지 피카레스크적 인물이나 내용의 특징을 지니는 수많은 소설들을 피카레스크 소설 장르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피카레스크 소설 전통을 등장시킨 스페인이나 『질 블라스』(Gil Blas, 1715)를 출현시킨 프랑스는 물론이고 영국, 독일 등 유럽 모든 나라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학 장르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김춘진, 『스페인 피카레스크소설』, 서울, 대우종합총서, 1999, 22쪽)라고 말해 각 문학
에는 단순한 유사성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인 영향관계 속에 삐까로같은 인물이 존재함을 지적하고 있다.
5) 스페인어식 발음표기와 프랑스어식이 다르고, 번역자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 지명을 비롯한 고
화된 프랑스 쪽 작품으로 보마르셰의 『세빌랴의 이발사』6)와 『피가로의 결혼』을 비교 대상작품으로 삼게 된다. 결국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 이외에도 장르상의 차이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본 연구는 제한된 작품을 통해 서로 연관된 두 인물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 으로 정리되는 공통점 및 차이점을 중심으로 다루게 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이후 ‘삐까로 와 피가로의 혁명성과 그 한계‘, 그리고 ‘희극성(Lo cómico)으로 본 삐까로와 피가로의 극적 효과‘ 등으로 연구의 폭을 넓혀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II. 삐까로7)와 피가로의 공통점과 차이점
선택한 3개의 작품을 통해 비교해보는 삐까로와 피가로에게는 후자의 배경이 스페인(구 체적으로는 세빌랴)이기는 하지만 역시 스페인과 프랑스라는 공간적 차이가 바탕이 되어 있 는 것이고, 거기에 시간적 거리감 역시 존재하고 있다. 먼저 『불한당의 보고서』 첫 판이 1554년으로 알려지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1525년으로 잡는 경우가 있으니, 16세기초반의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현실 속 삐까로와 같은 인물의 존재는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8) 한편 보마르셰의 피가로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바로 전인
유명사는 표기에 일관성을 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확한 스페인어 발음은 아니지만, 본 논문의 한글 텍스트 로 잡고 있는 작품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따라서 ‘라사리요 데 또르메스‘(Vida de Lazarillo de Tormes y de sus fortunas y adversidades)는 ‘불한당의 보고서‘(최낙원 역, 서울, 한마당, 1996)으로 하고, 기타 보마르셰의 작품 표기는 ‘세빌랴의 이발사‘(홍순경 역, 서울, 정음사, 1980)와 ‘피가로의 결혼‘(홍순경 역, 서울, 정음사, 1980)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아울러 지명으로서의 ‘세비야‘는 ‘세빌랴‘로, 『불한당의 보고서』의 주인공은 ‘라사로‘로, 기타 등장인물의 이름도 번역본의 표기에 따르기로 한다. 본 논문에서의 작품 인용은 모두 위의 번역본에서 취하고 있다.
6) 『세빌랴의 이발사』(Le barbier de Séville)는 1775년에 초연된 보마르셰의 극작품이다.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은 5막의 산문으로 된 희극으로 1784년 초연되었으며, 내용으로 봐서는 『세빌랴의 이발 사』 속편으로 간주된다. 즉 『세빌랴의 이발사』가 백작이 결혼에 이르기는 과정에서 피가로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면, 『피가로의 결혼』은 백작의 ‘공물‘(결혼하기 전의 하녀를 취함)에 대한 탐욕을 물리치고 자유로운 결혼 에 성공하는 피가로를 다루고 있다. 모차르트의 同名 喜歌劇은 1786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상연되었으며, 빠이 시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나 로시니 등도 피가로를 대상으로 작품을 썼다.
7) 제목에서 우리는 ‘삐까로‘(Pícaro)와 ‘피가로‘의 비교를 다룬다고 했지만, 실상 스페인의 대상 작품 『불한당의 보 고서』 속에서는 삐까로가 아니라 ‘라사로‘로 되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삐까로‘는 ‘라사로‘를 칭하는 것으 로 봐야 할텐데, 스페인문학에서 삐까로라는 단어는 문학작품에서보다 그런 유형의 인물을 일반적으로 설명하 기 위해 후에 명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삐까로란 단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그것이 ‘Picar‘라는 동사 와 연관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참고로 ‘쫀다‘, ‘찌른다‘, ‘비판한다‘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물론 이와 유사한 명 사로는 ‘부엌에서 쓰는 꼬챙이‘(Pinche de cocina)가 있었는데, “‘삔체‘(Pinche)의 의미로 삐까로란 이름을 쓴 경 우가 1525년에 있었다.“(Joan Corominas, 『Breve Diccionario Etimológico de la Lengua Castellana』, Madrid, Gredos, 1994, 3aed., 456쪽))고 설명되어 있다. 한편, 투우에서 황소의 등 급소를 창으로 찌르는 사람을 부르는 ‘삐까도르‘(Picador)라는 단어가 있다. 어쨌든 동사가 가지는 뜻에서 유추해볼 때, 삐까로는 ‘비판하는 사람‘, ‘비 난하는 사람‘, ‘들춰내는 사람‘, ‘허를 찌르는 사람‘, ‘등쳐먹는 사람‘ 등과 함께, ‘망나니‘, ‘악당‘, ‘무뢰한‘ 등의 뜻 을 갖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겠다.
8) 삐까로가 스페인이 유럽의 맹주로서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사실적 인물이라는 게 흥미롭다. 즉 외부적으로 스페인은 유럽의 일부와 중남미에 거대한 식민지를 거느린 대제국이었고, 가톨릭세 계의 수호국이라고 자처할 정도로 그 힘이 막강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젊은이들이 정복전쟁에 동원되는가 하면, 중남미지역의 개척에 나섰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식민지지역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은 정복전쟁을 위해
18세기 중엽의 문학에서 나온 인물9)이기 때문에 서로간에는 약 200년 이상의 시차가 있음 을 알아야 할 것이다. 즉 양자간에는 기본적인 공통점이 발견됨과 동시에 그 공통점을 바탕 으로 한 제반 차이점도 발견되고 있으니, 본 장에서는 이점을 다루기로 한다.
II-1. 출생 신분의 문제
스페인 피카레스크소설의 여러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을 말하라면, 첫째가 출생이 천하며 그것은 악한 삶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서전적인 글쓰기이다. 이와 같이 삐까 로라는 인물은 미천하여 신분을 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났고, 그 출생에 대해서도 불 확실한 것이 특징을 이룬다.
『불한당의 보고서』를 말하는 주인공이자 삐까로인 라사로는 바로 이러한 바탕을 깔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또메 곤살레스(Tomé González)라는 아버지와 안또나 뻬레스(Antona Pérez)라는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나, 실상 강에서 태어났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 가 일하는 강 옆 물레방아간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곡물을 빼돌린 혐의로 체포 되어 처벌을 받은 사람이며, 이후 토벌대의 말구종꾼으로 있다가 모시던 주인과 함께 일찍 생을 마감하였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얼굴이 검은 말구종꾼(아랍계사람)을 만나 살았으니, 그 사이에 라사로의 동생이 태어난다. 그 후 의붓아버지도 부정의 혐의로 형벌을 받았고, 어 머니와 헤어진 상황에서 라사로는 맹인에게 맡겨져 떠돌이 삐까로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 렇게 라사로의 어려운 출생 자체가 그의 온 운명을 결정짓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니, 이런 출생 상황이야말로 이런 유형의 작품에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스페인 피카레스크 소 설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의 1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어르신께서는 무엇보다도 제가 누구인가를 먼저 아셔야 될 것 같습니다. [...] 제가 태어 난 곳이 또르메스 강 근처였기 때문에 저에게 또르메스란 성을 붙여준 것이죠.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자면, 저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시여, 그의 영혼을 용서해 주옵소서- 또르메스 강변에 있는 한 물레방앗간의 책임자였는데 그 일을 15년 이상 해오고 있었지요 그런데 저를 배고 있던 어머니가 어느 날 밤 물레방앗간에 있었는데 통증이 엄습해와서 그곳에서 저를 낳았습니다. 사실상 저는 강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불한당의 보고서』, 1장, 13-14쪽)
프랑스 피가로의 경우를 봐도 출생 신분은 낮다. 그는 현재 백작 밑에서 먹는 문제는 해
소비되었고, 나라를 떠나거나 전쟁에 죽어 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짐과 동시에 그 여파로 스페인 내부의 경제상
황은 말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 왕실은 부유했지만, 일반민들의 생활은 그 이전보다 못한 상황이 연
출되었다. 삐까로는 바로 당시의 이런 스페인 내부상황을 반영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9) 작품이 가지는 문학성 외에 이렇게 혁명성을 거론하는 것은, 실제 이 작품이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사실을 봐서도 당연하다 본다. 즉 연극 《세빌랴의 이발사》는 1772년 에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3년 후인 1775년 1월 23일 초연되었고, 그것도 내용에 대한 검열과 작가의 투옥이 있 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피가로의 결혼》도 마찬가지여서 세세한 검열이 있은 후 공연이 가능했으 며, 공연금지 목록에 들어 간 후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즉 두 작품이 혁명성과 닿았다는 사 실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윤학로는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서 “주인(특권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피가로의 결혼》에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오만불손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오만불손한 요소가 루이16세로 하여금 이 작품의 공연을 두려워하게 했으며,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피가로의 결혼》, 그 것은 곧 진행 중인 혁명이다“라는 평가를 유발시켰다.“(윤학로, 『보마르셰 희극의 이중성 연구』, 서울, 한국외 대, 1991, 117쪽)라고, 피가로의 성격이 자아내는 혁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결하고 있지만, 부모도 모르는 불명확한 출생으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거쳐 힘든 삶을 영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피가로의 결혼』 중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르똘로: 원 저런! 버린 자식이었구먼!
피가로: 행방불명이 된 자식이에요. 아니, 그보다도 도둑맞은 자식이란 말이요, 의사선생님.
백작: (다시 돌아와서) 도둑을 맞고 행방불명이라고? 증거가 뭐냐? 마치 그렇지 않다고 우리가 욕지거리라도
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구나. (『피가로의 결혼』, 3막 16장, 279-80쪽)
법정에 함께 선 마르슬린느란 나이 든 여자는 피가로의 이러한 말을 듣고 그가 바로 자 신의 아들임을 확인하는데, 결국 피가로는 신분이 낮은 여인 마르슬린느와 의사(의사 역시 신분이 낮음)로 등장하는 바르똘로 사이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였고, 출생 후 남의 손에 불행하게 키워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혼을 약속한 슈잔느의 음모에 빠진 것으로 착각 한 장면에서 피가로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출생과 삶을 푸념조로 읊는 모습이 보인다.
피가로: [...] 난 미천한 사람들 속에 파묻혀서 오직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만도 백년동안이나 온 에스파이나를 통치할 만한 지혜와 재주를 쏟아 놓았단 말입니다. [...] 내 운명보다 더 기구한 것도 있을까? 자식으로 태어났 지만 부모가 누군 지도 모르고 도둑놈들에게 유괴되어서 놈들의 그악스러움 속에서 자라자 그놈의 생활이 지 긋지긋해져서, 뭐 좀 정직한 일을 해 볼 양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녀 봐도 어딜 가나 거절 아니던가! [...] (『피
가로의 결혼』, 5막 3장, 303쪽)
한편, 출생의 문제뿐만 아니라, 주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스페인의 삐까로인 라사로는 대단히 낮은 신분에 속함을 보여준다. 장님이나 신부들을 제외하더라도 그가 세번째로 섬겼 던 주인은 에스꾸데로로, 이 신분은 일반적으로 기사를 섬기는 시종에 해당되는 아주 낮은 층의 사람이었음이다. 즉 라사로는 시종의 시종이었던 것으로 비교 평가될 수 있을 만큼 낮 아, 프랑스 작품에서 봤던 피가로와는 전혀 비교되기 어렵다.10) 세번째 주인에 대한 라사로 의 언급을 본다.
“주인은 구(舊) 까스띠야 지방 출신으로 자신의 이웃이었던 어느 기사 앞에서 모자를 벗기가 싫다는 단순한 이 유만으로 그곳을 떠났던 에스꾸데로였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3장, 124쪽)
한편 두번째 주인인 신부를 섬기면서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실 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찌나 굶주렸던지 저는 정말이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그는 점심과 저녁으 로 다섯 블랑까의 고기를 먹어 치우는데 그게 보통 그가 먹는 하루 식사 양이었습니다. 그가 제게 국물은 조금 덜어 준 적이 있지만, 보통 고기를 -오, 하느님이시여- 한 조각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받은 것은 겨우 빵
한 쪼가리였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2장, 58쪽)
10) 이 당시 스페인의 계층은 왕을 정점으로 귀족이 있고, 그 밑에 기사(Caballero), 기사 밑에는 하급귀족으로 치 는 이달고(Hidalgo)가 있었다. 그렇다면 에스꾸데로(Escudero)는 그 밑에 있는 시골의 가난한 농부이면서 기사 의 시종에 해당된다. 『돈키호테』에서 주인공 돈끼호떼는 1권에서 하급귀족으로 2권에서는 기사로 칭해지며, 산초는 에스꾸데로였음을 기억할 수 있다.
이런 출신상의 불안정 및 불행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작품 내내 어려운 상황 을 안정 및 확신으로 이끌어내려는 주인공들의 공통된 노력이 보이지만, 그것이 확연한 신 분의 변화까지는 의미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보인다. 『불한당의 보고서』에서 라사로가 교구 수석사제의 보호와 결혼을 통해 안정된 삶을 영위함으로써 먹는 문제는 해결한 듯하지 만, 실상 신분의 수직상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가 수긍하고 있는 현실, 즉 결혼 과 경제적인 안정이라는 현실은 신부님과 아내와의 부정을 묵인한 채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결혼과 더불어 또 다른 불행이 나올 가능성도 미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들 사이 에서 출생할 아이의 미래 역시 라사로가 겪었던 삶의 반복 속에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시종 라사로는 주인 수석사제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신분상승이나 개혁 보다는 자신이 처한 경제적 안정 상황에 순응하고 위안을 삼고자 한다. “‘주인님, 저는 만사 를 좋게만 생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제 친구들이 여러 번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 고 아내가 제 앞에 있음에도 존경하는 주인님께 감히 말씀드리지만, 제 아내가 저하고 맺어 지기 전 이미 세 번이나 애를 난 경험이 있다고 제 친구들이 세 번 이상이나 저에게 이야기 를 해주었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7장, 172쪽)라고 말하고, “저 역시 다시는 그러한 이야기를 제 생전에 입밖에 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밤이고 낮이고, 그녀가 나가든 들어오 든, 정말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진정 그녀의 착한 마음씨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7장, 173쪽)라고 함으로써 주인과 상황에 대항하 려는 자세를 접는다.
피가로의 경우도 자기가 원했던 바대로 성공적인 결혼을 이끌어내지만, 그것이 신분상승 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혼의 전제 조건으로 백작이 내세우는 貢物이라는 제도 역시, 피가로 와 슈잔느 당사자의 결혼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그 후의 결혼에도 계속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시는 없다. 즉 피가로의 성공은 그의 결혼에만 적용될 뿐, 다른 시종의 결혼이나, 피가로 이후의 세대까지도 그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는 않다.
이렇게 출신 신분상에서 양자는 별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엄밀하게 보면 상이한 사회 상황이 이들의 사회적 위치를 다르게 가르고 있기도 하다. 스페인의 인물이 존재하는 현실은 대단히 암울하고 어려운 상황인가 하면, 프랑스의 인물은 상대적으로 절대빈곤이 발 견되지 않는 상황에 있다.
삐까로의 세상살이는 배고픔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가 어머니 의 품을 떠나 장님에게 넘겨진 것도 배고픔 때문이었으며, 고통스런 시종 생활에도 불구하 고 주인을 떠날 수 없었던 것도 먹는 문제 때문이었다. 첫 주인 장님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부분이 더 자세하게 드러나니, 먼저 포도주를 먹기 위해 장님인 주인을 이리저리 속이다가 결국 들통나고 최후의 일격을 당하는 것도 먹는 문제에서 시작된다.
“얼굴을 위로 쳐들고 저 맛좋은 액체를 조금이라도 더 잘 음미하기 위해 눈을 살포시 감고 달콤한 포도주를 몇 모금 즐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호시탐탐 제게 복수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 장님은 이 기 회를 놓칠 새라 두 손으로 약간 씁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액체를 담고 있는 포도주 병을 잡아 들어올리더니 그만 저의 입을 향해 힘껏 내려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1장, 32쪽)
이어 동냥하여 받은 포도를 먹는 과정에서 서로 많이 먹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을 비롯
해, 맛있는 순대를 굽는 장면을 통해서도 배고픈 라사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냄새 는 저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냄새에 자극 받은 저는 오로지 먹고 싶은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 뒤 잴 것 없이 그 욕망을 즉시 실천에 옮겼습니다. 장님이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는 사이 저는 순대를 꺼내고 순대 대신 재빨리 무 를 화로에 집어넣었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1장, 44쪽)
물론 장님을 대상으로 한 라사로의 재주는 모두 들통나고 결국은 주인 곁을 떠나야 하 는 상황에 닿는다. 이어 주인공은 신부의 시종이 되어 미사를 도와주게 되지만, “천둥을 피 했더니 번개를 만난 꼴로 신부에 비하면 앞서 장님은 알렉산더 대왕인 셈이었습니다.“(『불 한당의 보고서』, 2장, 56쪽)라고 스스로 정의하듯 배고픔의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어려움이 신부와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인색하기 짝이 없는 신부의 “집에 보이는 음식이라곤 자물쇠 를 채운 꼭대기 다락방에 보관된 양파 한 꾸러미뿐이었습니다. 저는 나흘 걸러 하나씩 양파 를 배급받았는데, 양파를 꺼내기 위해 열쇠를 달라치면 그는 혹시라도 누가 볼 새라 아주 조심스럽게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끈을 푼 다음 열쇠를 꺼내주는 것이었습니다.“(『불한당 의 보고서』, 2장, 57쪽)라는 표현처럼, 라사로는 “그러나 보니 어찌나 굶주렸던지 저는 정 말이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2장, 58쪽)라고 배고픔 을 말하고 있다. 자기의 배는 불리면서 시종에게는 인색한 신부에 붙어 살아가는 삐까로인 라사로는 결국 장례식조차 반가운 일이었을 정도가 되었으니, “이 날만이라도 실컷 먹을 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누군가가 죽어주기를 하느님께 기도하고 또 기 도했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2장, 62쪽)라고 말할 정도로 배고픔이 그의 화두였다. 결 국 라사로가 두 번째 주인을 떠난 것도 배고픔 때문이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두 명의 주인 을 만났다. 첫 번째 주인이 나에게 餓死를 가져다주었다면 두 번째 주인은 나를 묻는 墓地 를 가져다주고 있는 셈이다. 만일 여기를 떠나 더 못할 경우를 만난다면 죽음 외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불한당의 보고서』, 2장, 64쪽)라는 말로써 이러 지도 저 러 지도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다. 사실 그의 재치라는 것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에서 생긴 결과로 볼 수 있는데, 라사로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인색한 신부 를 속여 빵 조각을 훔쳐먹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렇게 비참한 해결책이라도 찾아야만 하는 것이 다 배고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치 ‘천재성은 포만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이 말은 저에게는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불한당의 보고서』, 2장, 74쪽)라고 철학적이고 체험적인 독백을 하고 있다.
배고픔의 문제에 있어서 『불한당의 보고서』에 보이는 바는 단지 시종 라사로에게 국 한된 문제가 아니고, 그가 섬기는 주인들11)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물론 그들은 라사로보 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긴 하지만 먹는 문제로 시종 라사로와 다투는 상황에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의 피가로와 그의 주인에게는 문제시되지 않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두 작품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공간적 이유로 두 인물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겠다. 상대적으로 출생 신분이 빈약하고 어렵게 살았지만 백작과 함께 있는 피가로에 게는 절대빈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작품의 등장인물 소개에 피가로는 다음과 같이 묘
11) 라사로가 만난 두 번째 주인인 신부와의 관계, 특히 신부와 그 시종간에 벌어지는 배고픔과 먹는 문제로 야기 된 다툼은 그 당시 전통적인 테마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Fernando Lázaro Carreter의 『Lazarillo de Tormes en la picaresca』(Barcelona, Ariel, 2aed., 1983, 124-5쪽)에 설명되어 있다.
사된 다.
“피가로... 세빌랴의 이발사. 스페인 멋쟁이로 차려입음. 머리에는 망을 덮고 그 위에 윗부분의 둘레가 색 리본 으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있다. 목에는 지나치게 느슨히 맨 명주 네커치프, 거기다가 은실로 가장자리를 장식 한 단추와 단춧구멍이 있는 조끼와 짧은 바지, 큰 명주 허리띠, 끝에 도토리 모양의 장식 매듭이 달려 두 다리 위로 길게 늘어진 양말 대님, 조기와 같은 빛깔의 안감을 넓게 단 강렬한 빛깔의 저고리, 흰 양말, 회색 구 두.“(『세빌랴의 이발사』, 148쪽)
그는 장식된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한 스페인의 멋쟁이이니, 그에게서 삐까로인 라사로 의 투박하고 가난한 면모는 찾기 어렵다. 『불한당의 보고서』에서 시종인 라사로는 먹는 문제에 집착해있기 때문에 입는 문제는 거론될 수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양자간 의상 비교 란 있을 수 없다. 한편, 주인조차 명예보다는 배고픔의 문제에 가장 민감했던 상황에 있었던 절대빈곤12) 속에 있었다면, 피가로는 이미 배고픔의 문제를 벗어나, 돈과 명예 및 자유를 찾 는 보다 고차원적인 상황에 있었음도 공통점이면서 차이점으로 드러난다.
II-2. 주종관계의 문제
라사로와 피가로의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이 주인과의 관계 속에 생활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어느 정도의 보호, 또는 경제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근본적으로는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바탕 위에 주인에 대항하는 행위는 자신의 재치와 기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한편 이 두 인물의 주종관계를 살펴볼 때, 우리가 말하고 있는 중세적인 주종관계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의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13)
12) 세번째 만난 주인(Escudero)은 신분은 천하지만, 빈곤함에도 허세부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느님께서 증인이 시지만, 요즘에도 으시대면서 폼재고 걷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도 혹시 제 주인처럼 실제로는 속이 곪아 끙끙대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는, 방금 말씀드린 이유에서, 비록 그가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였지만 다른 어떤 주인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섬겼습니다. 단지 한 가지 그에게 불만 이 있다면, 곤궁하면 곤궁할수록 더욱 큰 소리를 치는 그의 뻔뻔스러운 허장성세였습니다.“(『불한당의 보고 서』, 3장, 115쪽)
13) 중세적 주종관계에서 근대적 주종관계로의 변화에 대해서는 윤준식의 「Sentido y papel de Clarín, personaje calderoniano」(〈서어서문연구〉(2001), 431-448쪽)에서 다루고 있다. 한편, José Antonio Maravall은 근대, 특 히 17세기 주종관계(Relación amo-criado) 변화에 대한 글에서 무조건적 복종관계에서 계약관계로 바뀐 상황은 근대사회의 중요한 변화 양상, 즉 기존 주인이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형성되었던 봉건적 관계에서, 금전적 이해 에 따라 이뤄진 주종관계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먼저 그는 '시종‘(Criado)라는 단어의 기원을 “그래서 기원 을 본다면 시종이란 단어는 음식의 의미를 가진다. 전기 중세에는 시종이란 것이 광의의 의미에서 음식을 의미 하는 Nutritus로 불리었던 것이다.“(José Antonio Maravall, 『La literatura picaresca desde la historia social, siglos XVI y XVII』, Madrid, Taurus, 1986, 197쪽)이라 말하면서 기존 주종관계의 핵심적인 끈이 ‘음식 ‘(Alimentación)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결국 돈을 매개로 하는 계약제도의 체계화 때문에 온 변화로 보고, 이런 변화에 따라, “이런 계산적인 지불형태의 등장은 주인과 시종간의 모든 개인적인 관계를 제거하고 금전적인 면 만을 부각시키게 된다.“(같은 책, 204쪽)라고 말해 주인에 대한 시종의 태도가 대단히 변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이를 ‘개인의 자치‘(Autonomía del individuo)라고 정의하고, 그로 인해 ‘소외감‘(Alienación)이 두드러졌다 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 때부터 소외현상이 가시화 되었는바, 이전에 이런 현상이 심각하게 없 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자치라는 개념이 부족했고, 자기 상황에 대한 인식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같은 책, 204쪽) 본 작품을 비롯해서 이 시기의 많은 작품에 드러나는 '전통적으로 보면 타 락한 시종‘(El deterioro de la figura tradicional)과 함께, ‘지나친 현실주의자적 시종‘(El criado demasiado
즉 중세적인 주종관계를 흔히 주인에 대해 절대적으로 묶여져 주인을 떠날 수 없는 충정과 봉사, 즉 명령과 복종의 관계라고 정의해 볼 때, 스페인의 라사로는 물론 피가로는 이미 주 인에게서 자발적으로 떠나, 독립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상태이다.14)
라사로가 처음 주인인 장님에게 맡겨진 것은 어머니에 의해서였지만, 종속관계의 극한 상황에 닿은 삐까로는 결국 1장 마지막에 주인을 골탕먹이고 스스로 주인 곁을 떠나는 모습 을 보인다. “순간, 저는 이때야말로 그에게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광장에 있는 집 발코니 밑 돌기둥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 ‘어때! 아 직도 순대 냄새가 나? 기둥 냄새가 아니고? 아이고 고소하다. 너 혼자 잘 해 봐라!‘ 저는 무 슨 일인가 하고 몰려든 사람들의 손에 그를 맡겨둔 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달려서 마을 입구를 벗어나 밤이 되기 전에 또리호스라는 마을에 닿았습니다.“(『불한당의 보고 서』, 1장, 52-53쪽) 둘째 주인인 신부님과의 만남은 신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지만, 마지막 에는 역시 신부가 라사로를 쫓아내는 것으로 맺는다. “제가 자리에서 일어난 그 다음날, 주 인은 제 손을 잡고 문밖으로 끌고 가 길가에 세워 놓은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사로, 오늘부터 나는 더 이상 네 주인이 아니다. 이제 네 주인은 너다. 다른 주인을 찾아가거라.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하실 줄 믿는다. 나는 너처럼 지나치게 부지런한 종은 원치 않는 다.‘“(『불한당의 보고서』, 2장, 87쪽)
그러나 다시 구 까스띠야지방의 에스꾸데로와의 헤어짐은 주인이 도망가는 형태를 취한 다. 그는 이런 이변에 대해 매우 의아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 처럼 저의 불쌍한 세 번째 주인은 저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 일반적으로 주인이 몸종을 쫓아내는 법인데 저의 경우는 거꾸로 주인이 저에게서 도망을 치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까지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불한당의 보고서』, 3장, 137쪽) 결국 당시에 는 주종관계의 끈이 느슨해짐과 함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인을 선택하고 떠날 수 있 는 자유가 라사로에게는 확보되는 시점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 네번째 주인과의 헤어짐에 대해서 그는, “이 신발은 제게서 여드레도 견디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제가 신발을 신고 다 녀본 적이 없어서 그 신발을 신고서는 제대로 걸어다닐 수 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말씀드리지 않지만, 이런저런 여러 이유로 저는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불한당의 보고 서』, 4장, 139쪽)
이렇게 삐까로의 독립성도 작품 속에 드러나 있지만, 피가로는 보다 더 독립적인 존재이 기도 하다. 일단 먹는 문제에서 벗어난 기본적인 이유도 있지만, 지식과 재치에 있어서도 라 사로를 능가하는 성숙함이 그의 이런 독립을 뒷받침 해주고있다. 즉 그의 의상에서 풍기는
realista)는 바로 이런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14) 『라 셀레스띠나』는 중세적 주종관계에서 근대적 주종관계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작품에는 기존의 체제에 반항하는 여러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 그들의 언행으로 통해 위에서 언급한 바를 확 인할 수 있는데, 특히 빠르메노의 다음과 같은 표현은 대사 자체에 그러한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 롭다. 그는 주인 깔리스또가 자신의 진정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악한 셀레스띠나와 셈쁘로니오를 두둔 하자 매우 섭섭해하면서, 그렇다면 자신도 변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빠르메노: [...] 오 불행한 나여! 나의 충정이 오히려 날 나쁜 놈으로 만들다니. 사악한 사람들은 그 사악때문에 승리하고, 난 선하기 때문에 패하는구나. 세상이란 이런 것. 나라고 별 수 있나 신중한 사람은 반역자라고 하고, 충성스런 사람을 바보라고 하는 사람들 세상에 맞춰 살 수 밖에 없구나. (ACTO II, 98쪽)
(Fernando de Rojas, 『La celestina』, (ed. de Bruno Mario Damiani), Madrid, Cátedra, 1987)
고급스러움만큼이나 피가로는 지적이며, 그 수준도 주인을 능가할 수 있을 정도다. 『세빌랴 의 이발사』의 시작부분에 피가로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짓고 있다. 노래를 짓는 다는 말 은 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이고, 형식에 따라 시를 짓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쓴다.)
내 마음을 나누어 갖고 있다네
하나는 내 사랑을 차지하고
또 하나는 내 행복을 만들고...
체! 이건 싱거운걸. 그게 아니지... 대조, 댓귀(對句)가 있어야 해.
하나가...... 내 지배자라면 또 하나는......
아 참 됐어. 알았어......
또 하나는 나의 시종이라네. [...] (『세빌랴의 이발사』, 1막 2장, 150쪽)
피가로의 창작에 대한 언급은 계속되는데, “그게 바로 제 불행의 씨지 뭡니까, 나으리. 제가, 『클로리스에게 바치는 노래』같은 시를 제법 멋지게 읊을 줄 안다는 얘기랑, 신문에 퀴즈를 싣고있다는 얘기랑, 또 내가 지은 목가들이 거리에 유행하고 있다는 얘기랑을, 누가 대신께 일러바치자 말씀이에요. 한 마디로 말해서 신문에다 글을 싣고 있다는 걸 대신께서 아시자, 그걸 대단한 골칫거리로 생각하시고는 저를 일자리에서 쫓아내셨지 뭡니까. 글을 좋 아하는 정신은 사업을 꾸려 나가는 정신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구실로다가 말씀이에요.“ (『세빌랴의 이발사』, 1막 2장, 152쪽)라는 말에서처럼, 그는 글을 쓸 줄 알았고, 그것이 시 종으로서 격에 맞지 않을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삐까로는 원래부터 재치있는 모사꾼이라기 보다는 여러 주인을 만나 경험하면서 형성된 존재인 반면에, 피가로는 처음부터 그러한 재주를 갖춘 인물로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특 히 삐끼로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자신이 말하듯 장님인데, “사실, 하느님 다음으로 저 에게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이 사람(장님)이었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1장, 23쪽)라고 말하는 바와 같다.
삐까로는 작품 중에 재치가 형성되는 모습을 보인 반면에 피가로는 등장 처음부터 그 재치를 갖고 시작한 다는 사실에서 보마르셰의 피가로는 『불한당의 보고서』의 삐까로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인물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한편,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주종관계에서 삐까로와 피가로는 종에 해당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보다 치밀한 재치를 소유했으면서 고상한 피가로는 삐까로보다 더 강 한 힘과 독립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작품의 주인공일 뿐 만 아니라, 주종관계에서 주인 을 능가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하니, 자신이 연출자가 되어, 배우가 된 주인을 실험하고 다짐 받는 입장에 서기도 한다. 『세빌랴의 이발사』에서 그는 백작을 도와 백작과 로진느를 연 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백작이 로진느 집에 가서 행할 연극에 대해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만들어진다.
피가로: 한데, 나으리께서 어떻게 이 어려운 역할을 해 주실 수가 있을는지가 문제예요. 기사처럼 행동해야 하
고...... 그것도 술에 취한 기사처럼 말씀이에요......
백작: 자넨 나를 무시하는군! (술에 취한 사람처럼) 이거 보세요, 여기가 틀림없이 바르똘로 선생님의 댁이지
요?
피가로: 아닌게 아니라 꽤 잘 하시는군요. 다만 두 다리가 술에 취한 사람같지가 않아요. (한층 더 술에 취한
사람의 어조로) 이 집이 틀림없이......?
백작: 저런, 체! 그건 천민이 취해 떨어진 꼴이야.
피가로: 그렇게 취해야 옳은 거예요. 진짜 즐겁게 취한 모양이지요.
(『세빌랴의 이발사』, 1막 4장, 159쪽)
『피가로의 결혼』에서도 피가로의 연출가로서의 역할이 돋보인다. 1막의 마지막에 극을 꾸미는 모습이 보인다.
피가로: [...] 해 넘어갈 때까지 우린 자기가 맡은 역을 잘 익혀 두도록 하자구.
바질르: (심술궂게) 내가 맡은 역은 네가 생각하기보다 어려워.
피가로: (바질르에게 보이지 않도록 그를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넌 역시 네게 가져다 줄 훌륭한 성과를 전혀
모른단 말이야. (『피가로의 결혼』, 1막 11장, 235쪽)
계속해 서,
피가로: 고걸 슬쩍 속여넘겨야 된단 말이야. 출발이 어쩌구 중얼댈 필욘 없어. 여행용 망또를 어깨에 걸치곤
이보란 듯이 짐보따리를 챙기고 네 말을 사람들 눈에 띄도록 철책에다 매 둬. [...] 여흥이 끝난 후에 대감님 노
여움을 가라앉히는 건 내가 알아서 할께.
셰류뱅: 그렇지만, 팡솃드는 아직 자기 역을 잘 몰라.
바질르: 육시랄, 한 주일 동안 넌 그 애한테만 달라붙어 있었는데, 도대체 뭘 가르쳤어? 피가로: 넌 오늘 아무 할 일도 없으니까, 그 애 연습 좀 시켜 줘. 제발 부탁이다.
(『피가로의 결혼』, 1막 11장, 235쪽)
결국 주종관계에서도 독립성이 두드러진 피가로가 꾸민 연극의 궁극적인 목적은 백작을 궁지에 몰아, 공물삼아 슈잔느를 취하는 것을 막고, 백작과 백작부인의 승인 속에 처녀 슈잔 느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15)
15) 피가로의 이런 치밀함은 그의 재치에서 발로되며, 어떤 의미에서 라사로가 경험을 통해 습득해나가는 재치있는 존재라며, 피가로는 이미 타고난 재치로 상대를 제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삐까로가 단발적인 재치를 발휘 하여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고, 순간적인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있다면, 피가로는 보다 거시적이고 보다 전체적인 상황의 역전을 노리고 있음은 우연한 평가가 아니다. 피가로가 여러 직종을 전전했지만 그 중에 창작행위를 했 다는 사실 하나로도 삐까로에 대한 피가로의 지적 우위를 설명할 수 있겠다. 『세빌랴의 이발사』에서 바르똘 로와 피가로의 대화를 본다.
피가로: 나으리는요, 면도칼질 밖엔 할 줄 모르는 어느 시골 이발사놈을 상대하고 계시는 줄 아시나본데요. 나으리! 알아 두시라구요! 저는 그래도 마드리드에서 펜대 놀리는 일을 하던 놈이에요. 그리고 만일에 저를 시기하는 놈들 만 없었더라면요...... 바르똘로: 아니 뭐라고? 그럼, 왜 여기 와서 직업을 바꾸지 말고 거기서 살지 그랬어? 피가로: 사람들이란 할 수 없으면, 무슨 일이든 해야쟎아요. 내 입장에 한 번 서 보세요. (『세빌랴의 이발사』, 3막 5장, 195쪽)
피가로: 더욱 좋습니다. 그런 성품의 어른들을 요리하려면, 약간 울화가 치밀도록 해드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점은 부인네들이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상대방을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게 해가지곤 슬쩍 잔재주를 좀 부리면, 상대방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코를 끌어서 과달끼비르강까지도 데리고 가게 됩니다. 전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는 편지 한 통을 바질르를 시켜서 마님께 전하게 하는데, 그 편지로 해서 대감 님께선 어떤 멋쟁이가 오늘 가장무도회 때 마님을 뵙게 된다는 걸 아시게 됩니다. [...]
피가로: [...] 그러는 동안에 결혼식 시간은 자꾸 다가오고, 대감님도 결혼식을 반대하시지 못하게 될 거고, 또 그뿐입니까, 대감님은 마님 앞에선 감히 반대하시지 못할 테니까 말씀입니다. (『피가로의 결혼』, 2막 2장, 238-9쪽)
한편, 『세빌랴의 이발사』에서도 피가로가 백작을 만난 후, 그리고 백작으로부터 로진느 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소리를 들은 후 꾸민 피가로의 모든 연극은 백작의 결혼에 집 중되어 있으며, 그는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 목표를 이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결 국에는 로진느의 후견인이며 로진느를 데리고 살려던 백작의 경쟁자 바르똘도의 손으로 직 접 백작과 로진느 간의 결혼문서에 서명하도록 만든다.
바르똘로: 이봐! 바질르! 나를 좀 내버려 둬! 당신은 그저 돈 생각밖에는 안 하는군. 그래, 나도 돈 생각은 하 지, 해! 다행히도 돈은 갖게 됐군. 하지만 뭐 내가 돈 문제 때문에 서명을 하려고 그런 줄 알아? (그는 사인을 한다.) (『세빌랴의 이발사』, 4막 8장, 213쪽)
삐까로는 변화된 현실에 순응하기 바쁘며, 특히 당장 닥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쏟으면서 결혼에 있어서도 개운치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피가로는 모든 상황 을 자기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연출함으로써 마지막에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을 보인 다. 피가로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얻어진 결혼은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의미까지도 부여 받게 된다. 『피가로의 결혼』 마지막에는 바르똘로의 “네 편드는 착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올 것이다.“란 표현을 비롯해,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다.
피가로: 전 가난했습니다. 모두 절 멸시했지요. 재치를 좀 부려 봤지만 남의 미움만 더 샀습니다. 그런데 귀여
운 아내와 재산이 이렇게......
바르똘로: (웃으면서) 네 편 드는 착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올거다.
피가로: 정말 그럴까요?
바르똘로: 내가 그 사람들을 다 알고 있다.
피가로: (관객들에게 인사하면서) 제 아내와 이 재산은 별도로 하고, 만당하신 여러분, 제게 명예와 기쁨을 주
시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피가로의 결혼』, 5막 19장, 320쪽)
위의 상황을 다시 정리하면, 결국 출생 신분에 있어서 스페인의 삐까로와 프랑스의 피가 로가 같은 신분의 틀 속에 존재하지만, 개념과 실제가 달랐듯이, 주종관계라는 틀은 공통점 이지만, 실제 상호 결합의 정도와 배경은 차이가 있다. 라사로가 주인에게 더 의존적이며, 배고픔이라는 기본에 치중된 주종관계라면, 피가로는 이미 배고픔의 문제는 보이지 않고, 돈 과 계약에 의해 성립된 주종관계 틀에 존재하고, 주인에 대한 자신의 입장 역시 보다 독립 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삐까로가 중세적, 또는 고전적 주종관계에서 변화되는 과정상의 시종 이라면, 피가로는 한 발짝 더 나가 근대적 개념의 관계 속에 존재함으로 알 수 있다.16)
16) 앞의 주 13)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라사로가 주인을 만나고 홀로 주인을 떠날 수 있지만, 홀로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으니, 이내 다른 주인을 만나게 되는 의존적인 존재면서17), 그의 성격 역시 못 된 주 인에 대해 단발적인 분풀이 정도로 끝을 내는 모습을 보인다. 즉 배고픔을 해결하는 과정에 서 주인과 부딪치고, 주인을 속이다가도, 주인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후에는 다시 주인에게 앙갚음을 해나가는 라사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그에게 주인과의 끈은 항상 존재하며, 시종 으로서의 삐까로는 항상 그 끈에 불편해하지만 운명적으로는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피가로는 주인에 대해 독립적인 개체로 묘사된다. 작품 중에 그는 모든 인물 에 비해 가장 뛰어난 재치를 가진 존재면서 주인을 돕거나 주인에 대항할 때, 스스로 주인 과 동등한 입지를 취하고 있다. 한편 작중에 피가로는 주인을 능가하는 힘을 보여주며, 그것 은 연출가로서의 역할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피가로는 작품 내내 일관적인 목적을 위해 작 품의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연출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자 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연극에 맞추고, 대항하는 주인조차 그 극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 게 만들어 결국은 승리에 당도하는 강한 인물이다. 라사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주인과 대 립하고 그 범위에 머물러 있다면, 피가로의 행동과 주인에 대한 대응은 다수, 즉 사회적 차 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이다.
II-3. 결혼의 문제
『불한당의 보고서』와 『세빌랴의 이발사』, 그리고 『피가로의 결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사항으로는 결혼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물론 스페인의 작품에서 결혼은 작품의 마지 막에 약간 나오는 부수적인 테마일지라도 프랑스의 작품에서는 결혼이 피가로의 성격 및 행 동과 관련되어 있으며, 작품과 사회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주제가 된다. 즉 프랑 스 구습과 그것의 타파에 관련된 것이 결혼이고 보면, 프랑스의 작품에서는 이 테마는 피가 로의 혁명성에도 이어질 만큼 중요성이 강조된다.
라사로의 결혼 문제는 작품의 마지막 장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그가 앞 장들에서 고 생하면서 최후의 안정을 찾으려는 과정의 정점에 결혼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결혼 은 그의 유랑적 삐까로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정착한다는 의미를 준다. 물론 앞 장들에서는 결혼에 대한 언급이 있을 수 없다. 정착하고 싶은 그의 욕망에 결혼이 최후의 목적은 아니 었기 때문이다. 그의 정착 욕망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제가 얻은 이 일은 일종의 공무인 데, 이런 일을 하지 않고서는 출세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오늘날까지도 먹고살고 있으며 하느님이나 어른신께 나름대로 본분 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저는 이 도시에서 팔리는 포도주와 경매물건들, 그리고 분실물 들을 알려주고 관헌에 쫓기는 사람들을 추적하여 그들의 죄상을 큰 소리로 고발하는 일을 했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7장, 168쪽)
그리고 수석사제의 하녀와의 결합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해서 저는 그녀와 결혼을 하 게 되었고 지금도 저는 그 결혼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 집사람은 마
17) 라사로는 장님을 만난 것을 비롯해서, 대단히 인색한 신부를 따라다녔고, 다음에는 처량한 하급귀족을, 네번째 로는 메르섿 수도원의 어느 승려를, 다음으로는 면죄부 포교사, 그리고 전속 사제, 포졸 그리고 나중에는 약간 의 독립과 경제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시의 포고담당 공무원이 되어 산 살바도르 교구 수석사제와 인연을 맺어 그의 소개로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음씨 좋고 부지런할 뿐 아니라, 집사람을 통해 제 주인인 수석 사제님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불한당의 보고서』, 7장, 170쪽)
그러나 그녀는 사제와 은밀한 관계에 있었고, 세 번이나 애를 난 경험이 있었으니, 이미 친구들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처의 시인을 얻어냈지만, 결국 자 신의 가정과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덮어두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놈이고, 저의 주인 역시 그에 못지않은지라 그녀를 달래고 달래서 울음을 그치 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 역시 다시는 그러한 이야기를 제 생전 입 밖에 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밤이고 낮 이고, 그녀가 나가든 들어오든, 정말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불한당의 보고서』, 7장, 173쪽)
결국 라사로 자신에 의하면 인생 최고의 해를 누렸고 거기서 만족을 취하게 되니, 자신 의 안정을 위해서 아내의 전력이나 주인과의 부정을 묵인하는 게 라사로의 성격이며, 한계 이기도 하다.
한편, 『피가로의 결혼』에서 결혼은 보다 더 큰 의미, 더 포괄적인 의미로 다뤄지고 있 다. 시종 피가로와 역시 시녀인 슈잔느가 결혼함에 있어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먼 저 백작은 시녀 슈잔느를 결혼시킴으로써 결혼 전날 밤 공물의 형태로 그녀를 취할 수 있다 는 기대 때문에 쉬잔느와 피가로 간의 결혼을 허락한다. 그러나『세빌랴의 이발사』에서 의 사 바르똘로는 백작이 로진느와 결혼을 위한 작전을 펼 때, 이미 그녀를 아내로 삼고자 했 던 후견인으로서 자신이 당했던 전력이 있어, 『피가로의 결혼』에서 결혼 승락을 통해 공 물로 슈잔느를 취하겠다는 백작의 음모를 간파하고 결혼을 방해하게 된다. 여기에 바르똘로 가 피가로와 슈잔느의 결혼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세빌랴의 이발사』에서 볼 수 있 듯이 자기 밑에 있었던 피가로가 오히려 자신의 결혼을 방해하고 백작과 로진느의 결혼을 도왔던 피가로에 대한 앙갚음 때문이다.
이렇게 백작과 피가로는 모두 결혼을 원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피가 로에게 특히 대두되는 바는 주인에 대한 반항이며, 그것이 결혼의 조건과 연결되어 있어 흥 미롭다. 즉 하녀를 마치 자기 소유물인 것처럼 취급하고, 하녀가 결혼하기 전에 먼저 주인이 취하는 구습을 지키려는 백작과의 문제에서 발생된다. 『피가로의 결혼』 1막 1장을 보면 공물(貢物) 이야기가 나온다.
슈잔느: 나리께선 이 방을 남몰래 나하고 단 둘이서 한 십오분 가량 일을 보실 때 쓰실 작정이란 말이야. 대감
님들의 그 켸켸묵은 공물(貢物)이란 걸 알아 둬...... 나리가 추잡스런 사람이란 건 너두 알지 않아!
피가로: 알기만 해, 만일 백작 나리께서 결혼하실 적에 그 더러운 공물을 폐지하지 않았던들, 난 그분의 영지
(領地)에서 너하고 결혼할 생각조차 안 했을 거야.
슈잔느: 그런데 말이야, 나리께선 공물을 폐지하셨지만, 지금을 그걸 후회하고 계셔. 그래서 바로 오늘 네 약혼 녀한테서 그걸 다시 받아 내려고 한단 말이야. (『피가로의 결혼』, 1막 1장, 218쪽)
여기서 공물이란 것은 결혼하기 전에 여자를 상납받는 것으로, 이는 평소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자기가 거느린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경우에 먼저 영주가 소유하고 보내는 것 을 의미한다. 1막 4장의 다음 대목은 공물에 대해 말해준다.
마르슬린느: 그 좋은 예가 오늘도 슈잔느를 저 피가로하고 결혼시켜서 각별한 호의를 한껏 보이시곤......
바르똘로: 그 결혼을 대감님이 강요하셨겠지?
마르슬린느: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예요. 그렇지만 이 결혼을 빙자해서, 대감님은 新婦하고 남몰래 재미를
보려고...... (『피가로의 결혼』, 1막 4장, 221쪽)
피가로의 결혼을 통해 백작이 원하는 것은 공물이며, 공물이란 신부 슈잔느의 처녀성이 기도 하다. 자신의 부인이 슈잔느의 복장을 하고 나온 것을 모르는 백작은 슈잔느(실상은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작: [...] 귀여운 슈잔느야, 카스틸라의 대장부는 두 말을 하지 않는다. 이 금화는 네가 내게 베풀어 준 매혹 적인 기회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공물을 되사기 위한 거다. 그런데 네가 한없이 마음에 들게 구니까 이
다이아몬드도 얹어줄테니,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다오. (『피가로의 결혼』, 5막 7장, 310쪽)
당연 백작의 공물문제는 백작이 시녀 슈잔느를 부인으로 삼자는 의미가 아니다. 남자로 서의 욕망에서 비롯된 욕정일 뿐이다. 『피가로의 결혼』 3막 4장에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대단히 갈등한다. “[...] 그건 그렇다고 하고, 지금 난 어떻게 된 거지? 저 심술궂은 슈잔느가 내 비밀을 누설했을까?...... 피가로는 아직 제 남편이 아니니까...... 도대체 왜 이놈의 바람기 를 버리지 못할까? 벌써 수백번 그만두려고 했는데...... 우유부단이란 참 야릇한 거야! 만일 아무 말썽없이 그 애가 내 마음대로 된다면, 나도 이렇게 탐을 내지는 않을 텐데. [...] (『피 가로의 결혼』, 3막 4장, 265쪽)
슈잔느와 백작의 다음 대화도 결혼과 공물과의 관계를 말해준다. 즉 피후견인을 결혼시 키면서 후견인을 그에게서 공물을 받는 형식으로 결혼 전날 밤에 취하는 것이었다.
백작: (웃으면서) 저런! 고것 참 예쁘구나! 그럼 이따가 정원에 오겠다고 약속하는 거지? 만약 네가 약속을 안
지킨다면 알지, 날 만나러 오지 않는다면 말이야. 시집갈 때 줄 지참금도 결혼식도 다 없는 거다.
슈잔느: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하면서) 허지만 결혼식을 못 올린다면, 대감님께서도 첫날밤 공물이 없게 되겠지
요, 대감님.
백작: 어디서 저런 말솜씨를 배웠을까? 기어코 내 품에 안고 말테다! 그런데 마님께서 에테르 병을 기다리시지 않느냐...... (『피가로의 결혼』, 3막 9장, 271쪽)
공물의 문제는 당시 대단한 구습이었던 게 확실하며, 전 작품에서 피가로의 행위를 볼 때, 공물제도에 대한 항거가 돋보이고 있어, 공물제도에 대한 비중이 큼을 알 수 있다. 『피 가로의 결혼』에서 백작와 슈잔느의 대화를 본다.
슈잔느: 그럼 말씀드리겠어요. 대감님께서 의사선생님댁에서 마님을 데려오셔서 사랑이 넘치는 결혼을 하셨을
때, 마님을 위해서 대감님께서는 그 흉측한 첫날밤 공물이란 것을 폐지하셔서......
백작: 처녀들이 몹시 괴로워하던 공물이었어! 아니야! 슈젯드! 공물이란 매력있는 거야! 이따가 해질 무렵에 그
의논하러 정원에 와주면, 네 그 녹록쟎은 호의에 내 후히 行下를 내려주겠다. (『피가로의 결혼』, 1막 8장,
227쪽)
내용을 보건대, 공물제도가 있었으며, 백작은 자신이 결혼할 당시 부인 로진느의 후견인 이었던 바르똘로가 로진느로부터 공물을 강요하려 했을 때, 그 제도를 폐지해놓고는 정작 자신이 후견인의 입장에 있는 슈잔느한테서는 상납받기를 원하는 모순에 있음을 알 수 있
다. 이 문제는 계속 언급되는데, 피가로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지 공물제도를 피하고, 자신 의 여인 슈잔느를 무사히 빼내 결혼할 수 있을까에 달려있다. 피가로와 백작의 대화를 본다.
피가로: 대감님, 가신들은 마님에 대한 대감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흉측한 貢物이란 것을 대감님께서 폐지
하신 데 대해서 깊이 감동되어서......
백작: 아니, 그 공물이란 건 벌써 폐지했어. 그런데 무슨 말을 하자는 건가?
피가로: (심술궂게) 그러니까, 지금이야말로 이렇게 착하신 대감님의 덕을 높이 앙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
히 오늘은 대감님의 덕이 제게 더 없는 효능을 나타내셔서, 제 결혼식 때 전 대감님의 덕을 찬양할 최초의 사
람이 되고자합니다. (『피가로의 결혼』, 1막 10장, 231쪽)
공물문제와 관련해서 주인의 음모를 생각한다면, 피가로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피가로의 결혼』은 주인의 횡포에 대항하는 과정으로 풀이되고, 이것 역시 작품의 혁명성, 즉 기존 체제와 풍습에 반대해 투쟁하는 피가로의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피가로의 구습과 정치에 대한 혁명성을 가장 집약시켜 놓은 곳이 『피가로의 결혼』 5 막 중 3장 부분이다.
피가로: 오오, 여자! 여자! 약하고 믿지 못할 물건이로구나! ...... [...] 귀족, 재산, 신분, 지위 등 이런 것 저런 것 모조리 다 뽐낼 만하시죠! 그 많은 보배를 손에 넣으면서 당신은 도대체 뭘 했지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수고 말고는 아무 것도 한 것이라고는 없지 않습니까. 그 뿐인가요, 인간으로서도 보잘 것 없지요. 그 반면에, 빌어먹을! 난 미천한 사람들 속에 파묻혀서 오직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만도 백 년 동안이나 온 에스파니아를 통치할 만한 지혜와 재주를 쏟아 놓았단 말입니다. [...]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는 따위를 식은 죽 먹듯 해치우는 세도가 놈들을 혼쭐 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놈들이 며칠밖에 세도를 못 부리고 쫓겨나서 콧대가 꺾였을 때 말이야! 그러면 난 이렇게 말해 줘야지..... 무지막지한 인쇄물을 발행 금지하는 나라가 아니면 권위가 없고, 비 난하는 자유가 없으면 아첨하는 찬사도 없으며, 또한 사소한 기사를 두려워하는 건 오직 소인들뿐이라고 말이 야. [...] (『피가로의 결혼』, 5막 3장, 302-306쪽)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도 있지만, 목숨까지 끊으려 했던 절박한 삶을 요구하는 사회 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 그의 독백에 잘 나타나 있다.
작품에서는 결혼과 관련된 공물의 문제를 통해 귀족의 하층민에 대한 권리침해 뿐 만 아니라 거기에는 남자들의 여자들에 대한 비하나 억압 문제도 결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피가로가 자신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지만, 마르슬린느는 알고 보면 바르똘로라는 남성 과 부당한 관계에서 피가로를 보게 된 것이고, 자신의 아들임에도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바르똘로를 보면서 그 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살아나게 된다. 마르슬린느의 다음 말은 공물 문제 외에도 남성들로부터 억압받는 여성문제를 함께 언급하고 있다.
마르슬린느: (격해서) 여자를 업신여기며 자기 정욕의 노리개로 삼고 제물로 삼는 남자들! 당신네들이야말로 젊은 여자들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한 벌을 받아야만 해요. 당신네들 이나 판관들은 우쭐대며 멋대로 우리들 여 자를 비판 판단하고는, 죄 받아 마땅한 태만 때문에 여자들의 정당한 생계의 방도까지도 빼앗아 버리는 거예
요. [...] (『피가로의 결혼』, 3막 16장, 281쪽)
그녀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마르슬린느: (흥분해서) 양반네들 조차도 남자들은 여자들 대접이 말이 아니에요. 겉으로는 존대하는 체 미끼
를 던져 놓고는 실제로는 노예지요. 우리들 여자는 재산에 대해선 어린애 취급을 받고, 잘못에 대해선 어른 취 급을 당하지 않나요! 참 기가 막혀서! 어느 모로 보나 여자를 대하는 당신네 남자들의 꼬락서니는 지긋지긋하 기로 하고 한심스럽지도 해요!
(『피가로의 결혼』, 3막 16장, 281쪽)
구습인 공물제도에 대한 피가로의 거부반응은 비하되고 억압받는 여인들의 문제로까지 확대되면서 피가로의 결혼문제는 정치적인 해석까지 요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라사로에게 결혼이란 배고픔을 덜고 경제적으로 안정됨을 의미하지만, 피가 로에게 결혼이란 자신의 의지를 편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라사로는 자신의 결혼 이 가져올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설사 사람들이 자기 부인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다 닌다는 사실을 알고도 못 들은 척, 사실이 아닌 척 무시하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즉 이를 현실순응적 자세라고도 말하고 있는데, 앞서 설명한 주종관계와 주인에 대한 라사로의 행위 에서 볼 수 있었던 라사로의 단발적 행위, 그리고 의존적 자세에서도 미리 예견될 수 있는 사항이었다.
한편, 피가로에게 결혼은 작품의 전체적인 테마이면서, 현실 개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 고 있다. 즉 그가 주인과 대결하면서 주인이 행사하려고 하는 구습에 대해 항거하고 결국에 는 그것을 타파했다는 의미에서 라사로의 것과는 대단히 다른 해석이 따를 수 있다.18) 즉 작중 라사로의 행위가 작품의 사실주의성에도 불구하고, 그 비판기능이 사회라는 또 다른 틀로 확대될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하다고 본다면, 피가로의 행위는 작품을 뛰어넘어 사회와 연결되면서 그 당시 이 작품 해석에 부여된 혁명성에도 연결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라사로 가 개인적인 비판의 한계에 존재하고 있다면, 피가로는 개인적인 이해에서 시작하지만 보다 사회적이고 거시적이며 보다 전면적인 단계로 확장됨을 알 수 있다.19)
III. 결론
18) 결혼의 문제를 따진다면 라사로에게서나 피가로에게서나 동일한 문제는 아내가 될 여자를 주인이 먼저 취하는 공물의 문제가 공통점이다. 이에 대해 라사로는 현실문제를 들어 수용하는 반면에 피가로는 절대 항거하여 결 국 승리를 이끌어낸다는 대단한 차이점을 보인다.
19) 결국, 삐까로는 대상에 대한 개인적이고 제한적인 비판에 그친 반면, 프랑스의 피가로는 ‘프랑스 혁명‘, 즉 그 당시 극의 주 관객이었으며 소비자였던 부르조아층이 주도되는 혁명성까지도 이어지는 포괄적 성격을 갖고 있 다고 본다. 한편, 『불한당의 보고서』도 나름대로 대 사회적인 비판이 강하게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품이 당시 스페인에서 출판이 시작되었던 도시에서 나와서 사람들 사이에 대단한 성공을 거뒀으나(이 작품은 출판된 지 금새 그 당시 출판 붐과 더불어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여러 나라말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17세기에 프랑스어 를 비롯해, 영어, 네덜란드어로 번역되었고, 이후 독일어, 이태리어, 포루투갈어 등으로 번역된다.) 5년 후 출판 이 금지되었다. 그렇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히 읽혔던 것으로 알려지며, 1573년에야 출판이 재허가 되었고, 거기에는 4장과 5장을 제외됨과 함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삭제된 상태에서였다. 그리고 1834년에야 전 내용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이 작품이 당시 사회에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거기에 무명씨의 작가 는 유태인이었을 것이란 가정이 우세한 것도 이러한 반사회적인 특징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겠다. 추가로, 작 품 서문의 다음 표현을 본다. “나아가서 복 많은 운명을 타고 귀하게 태어나신 분들께서 자기들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단지 운명의 여신이 잘 봐 주었을 따름이란 것과, 반면에 가혹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과 자신의 기민함으로 역경을 헤치면서 자신의 인생을 예정된 항구로 끌고 온 이들도 얼마든지 훌륭 한 일들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불한당의 보고서』, 서문, 11-12쪽) 한편, 삐까로와 피가로의 對 사회적 자세의 차이, 그리고 정치적인 의미 등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에서 다루기로 한다.
본 연구는 ‘삐까로‘와 ‘피가로‘라는 이름 하에, 스페인 문학상의 ‘라사로‘와 프랑스 문학상 의 ‘피가로‘를 비교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그것은 차후 이들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의 기본으로 삼고자하는 의도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작품도 스페인의 『불한당 의 보고서』, 프랑스의 『셰비야의 이발사』, 그리고 『피가로의 결혼』으로 국한했을 뿐 아 니라, 기본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내는데 주안점을 두었지만, 삐까로는 물론 피가로에 대한 개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첫째, 우리는 신분상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18세기 프랑스의 작품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시종을 발견하게 되며, 그것이 배고픔의 문제를 넘어 계약과 돈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둘째, 주종관계를 통해 살펴본 두 인물의 모습에서 역시 라사로의 의존적 주종관계, 또는 전근대적 주종관계에 비해 피가로에게서는 보다 자치적이며 계약적인 면이 두드러진 근대적 주종관계가 성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배고픔에서 계약으 로의 전환을 말하며, 의존에서 독립을, 그리고 주인을 바꿀 수 없는 한계에서 주인의 의지를 꺾고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시종의 모습으로 변함을 의미한다.
셋째, 결혼문제에서도 라사로가 현실 순응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피가로는 재치 와 치밀성을 앞세워 불합리한 현실을 깨고 승리하는 적극적이고 혁명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두 작품에서는 강한 사회성이 두드러지고, 특히 1인칭 자전적 글쓰기로 되어 직접적인 사회비판이 가능하고, 사실주의적 기법에 있어서도 스페인의 작품이 더 치밀 하지만, 작품의 사회적 변용, 또는 영향의 문제에 있어 프랑스의 피가로는 스페인의 라사로 (또는 삐까로)가 갖는 개인적, 단발적, 미온적 태도와는 달리 집단적, 거시적, 혁명적 자세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결국, 스페인의 인물이 200년 후 다시 픽션화되었다는 가정 하에 양자는 여러가지 공통 점을 보이고 있지만, 피가로로 형상화되는 2차적 픽션화의 결과는 프랑스적 현실문제를 간 접화하면서도 강한 암시를 통해 혁명성까지를 담보해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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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 연구」, (서울: 서울대, 1992).
■ Resumen
FÍGARO, A TRAVÉS DE PÍCARO
Este estudio comparativo pretende acercar dos personajes de distintas nacionalidades, por lo que creemos que no sólo puede ayudar al mundo del hispanismo sino también a los que estén interesados en la literatura francesa, sobre todo el teatro francés del siglo XVIII. Empezaremos por reconocer que en Corea el personaje francés es mucho más popular, especialmente gracias a los trabajos realizados por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y Gioacchino Rossini (1792-1868), y menos por su autor,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1732-1799), dramaturgo de excelentes cualidades y origen de aquellas dos grandes obras. Sin embargo, hay que matizar que este pícaro francés del siglo XVIII debe su vida y su originalidad al pícaro español del siglo XVI, asunto del que va a tartar este trabajo. Analizaremos al personaje en el contexto de una sociedad francesa y nos dirigiremos al español desde una perspectiva diferente, con distanciamiento, para que pueda servir de ayuda a la hora de explicar el orígen de Fígaro, sus características y los sentidos de su aparición en la sociedad francesa de entonces, y, al mismo tiempo, para constatar la herencia de la tradición picaresca española en Francia y contribuir a enriquecer la literatura picaresca en general.
El proceso será comparativo, de manera que tendremos que abordar aspectos como, estéticos (el papel del personaje picaresco dentro de la obra), sociales (la clase social y la postura del personaje frente a las tradiciones y la sociedad) y políticos (la crítica política y su relación con la revolución). A parte de estos factores, Fígaro, como ya hicimos mención en unas líneas más arriba, es el resultado de la ficcionalización, directa o indirecta, del pícaro español y por tanto podremos necesariamente establecer puntos comunes y también diferencias, sobre la base de que son personajes que, al fín y al cabo, aparecieron en espacios y tiempos ajenos. Sin embargo, y teniendo en cuenta que el tema del trabajo, Estudio comparativo del pícaro y del fígaro, puede resultar demasiado amplio, nos limitaremos al análisis en sólo tres obras: 『Lazarillo de Torme s』, obra anónima pero considerada por muchos como germen de la novela picaresca, 『El barbero de Sevilla』 y 『Las bodas de Fígaro』, ambas del francés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con las consiguientes diferencias de época siglo XVI y XVIII- y de género, novela, la primera y teatro, las dos últimas de cuna innoble, pobres y de dudoso origen son estos dos pícaros pero si para Lázaro es la comida su motor de arranque, para Fígaro es el dinero y su persona, más cerca del concepto de contrato. La relación, por tanto, de estos servidores con su amo también difiere. Lazarillo, del siglo XVI, adopta posturas aún medievales o de transición entre la Edad Media y la Moderna, mientras que Fígaro, ya del siglo XVIII, tiene una relación con el amo mucho más fluida e individualizada. Estos cambios en la relación hablan de cambios socials, de intereses y, desde el punto de vista de la creación, hasta del tema: del hambre al honor y de la ración al dinero o al contrato. Así, el pícaro de autor francés, se libera de las limitaciones propias de criado ver a Lázaro- y se independiza emocionalmente
de su amo para poder cumplir con sus propias metas.
Esta actitud la hemos vuelto a ver al estudiar las bodas. Lázaro, ruin y conformista,
contrasta con Fígaro, tenaz y constante ante cualquier problema, y con matices de la Revolución. Veamos el carácter social y crítico de las tres obras escogidas y veremos cómo la obra española, de narración autobiográfica y de descripciones realistas, se caracteriza por apreciaciones personales, breves y conformistas, en tanto que Fígaro, de mucha más aplicación social, ondea valores más masivos, constantes y revolucionarios. Fígaro, personaje de ficción extraído de la picaresca española tras 200 años, es, pues, una forma indirecta pero fiel de apuntar a los valores revolucionarios de la Francia de ento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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