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을 읽는가? [돈키호테]를 왜 공부하는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란 말이 있다. 동양의 고전,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하는 의미로, 이것의 상대적인 표현은 '위인지학'[爲人之學]이다. 후자의 '인'은 '사람'이라는 뜻이니, '사람을 위한 공부'라고 해석해야 할 것인데, 이 때의 '사람'이란, '나'가 아닌 '타인'을 말한다. '타인을 위한 공부'란다.
(좀 벗어나볼까?)
흔히,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한다'는 말을 잘 안한다. 이것이 좀 더 부정적인 의미로 규정된 단어가 '이기주의자'다. 이러니,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나'를 강조하는 말은 거의 '금기된 표현'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저를 위해 정치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또는 '국민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정치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와 '가족'이라는 말을 넣는다면 '표'를 받을 수 없다는 확신과 자신을 겸손하게 보이려는 '예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경향은 기업인들도,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이며,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타인', 즉 '나'가 빠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사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게 없다. (세상에 절대성이란 있을 수 없으니, 아주 특별한 경우에 벌어지는 '타인을 위한 행동'은 이 주장의 예외가 될 수 있다.)
공항버스 운전사가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코멘트와 함께,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라는 표현을 하지만, 사실 그 버스에 탄 우리는 운전사의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내재된 의식'에 나의 안전을 맡기고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의 '자기 보호 본능'에 우리 생명을 맡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위인지학'이라는 말은 위선적인 표현일 수 있다.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보다는, 먼저 '저를 위해서'라는 직접적이고 기초적인 표현과 함께, 그것이 "국민과 나라를 위해' 확장되도록 성심을 다하겠다"는 표현이 더 설득력을 얻을 것 같다. 즉, 사람들을 위하겠다는 주택정책과 자기 자신이 집을 몇 채 갖고 있는 자가당착의 상황은 일어날 지라도, 궁색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가 우선이었으니까!
'타인'을 위해서 한다고 할 때, 거기에는 '감사'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노력에 응하지 않는 '타인'을 보면서, '화'가 나고, 스스로도 '불만'에 빠진다. 반면, 처음부터 '나를 위해서'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디면, 늘 '감사'할 수 밖에 없다. '타인'이 응하지 않아도, '나'를 위한 것이었으니, 그리 화낼 이유가 없다.
(이야기가 너무 벗어났군! 그럼 다시 돌아와서...)
'책을 읽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다'. 대학교수였던 해롤드 블룸이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수 많은 고민 끝에, 결국 "독서는 나의 수행이다"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은, '위기지학'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편, 책을 읽고,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작품 속 '영감'을 통해, 나의 '영감'을 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영감이란, 나의 '상상력'이고, '창의력'이다. 이렇게 인문학적 소양은 나를 깨우는 수행이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때, '아이디어'라는 단어는 '실용성',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책을 읽는 것이니, '경제활동', 즉, '돈이 된다'로 확대해 볼 수 있겠다.
'책 읽기'를 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상상'을 한다는 뜻이며, 그것은 삶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이 작업이 중단되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육체적인 죽음 뿐 아니라, 정신적인 죽음을 의미할 수 있겠다.
따라서, 보르헤스가 만들어낸 인물인 삐에르 메나르도 [돈키호테]를 수 없이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교정하는 작업을 계속해왔지만, 죽음과 함께 남지 않도록 했다. 책을 읽는 것은, 즉 상상한다는 것은, 자기 만의 '유희'였기 때문이다. 간혹 작가들이나, 고승들이 자신이 죽은 후 책을 없애라는 말을 한 것도, 이런 의미가 담겨있다는 생각이다.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즐거운 '책 읽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전 명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작품들은 깊이 읽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있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말하자면, 그 안에는 수 많은 주제들이 들어있다. 읽는 사람의 지식에 따라, 깊고 넓은 생각을 제공해줄 수 있는 작품으로 검증되었다는 뜻이다.
해롤드 블룸이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처럼 모든 독자를 즐겁게 하지만, 또한 셰익스피어처럼, 독자의 능력에 비례하여 더욱 적극적인 독자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