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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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과 기고문] 깔데론 데 라 바르까 작품에 나오는 끌라린의 역할과 의미(III)

 Sentido y papel de Clarín, personaje calderoniano


                                                                                                                                              윤 준 식

                                         


1. INTRODUCCIÓN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 개인의 창작행위에서 비롯되지만, 작품 자체를 비롯해서,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사회라는 환경의 산물이다. 이 말은 작가라는 개인의 창작이 사회를 떠날 수 없다는 말과 통하며, 거기서 영감과 영양분을 받아쓰고 있음을 지적하는 바이다. 


문학연구에 있어, 작품 자체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있는 반면, 앞에서 제시한 이런 이유로 인해, 작품을 통해 사회를 짐작해보는 시도들도 흔히 적용되는 방법이다. 특히 작품 속에 나타난 여러 현상이나 인물들을 연구하여 그 당시 사회를 정의하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이미 알고 있는 그 당시 사회에 대한 정보를 더욱 강화하려 하거나, 한 단면을 이용해 전체를 설명하려 할 때는 문제점을 낳기도 한다. 작품에 나오는 한 인물과 그의 행동은 작가 개인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따라서 거기에는 한 작가가 처한 시대적 개별성, 또는 개인적 상황이 있는 것이고, 같은 인물이라도, 성격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깔데론의 연극에 나오는 끌라린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그가 사회적 범위 내에서 갖고 있는 의미와 극작품에서의 기능에 대해 분석해보기로 한다. 『인생은 꿈』이란 작품에는 세히스문도나 바실리오, 그리고 로사우라 등 주요 인물들이 있지만, 끌라린은 작품 전체 3막 14장 중 1막 1장 첫 대화부터 3막 13장에까지, 거의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등장하며,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지켜보고, 또한 알고 있는 존재이다. 한편 끌라린은 하층인물이며, 주종관계에서 종에 해당된다. 작가가 이런 인물을 작품 속에 넣으면서 의도적이던, 비의도적이던 그의 언행은 당시 하층민들 생활과 사고 및 주종관계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할 것이라 확신한다. 이 과정에서 문학비평의 범위를 넘지 않기 위해 사회학적인 설명을 피하고 작품 자체에 충실하여 분석해보기로 한다.


본 연구의 목적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러한 인물의 분석을 통해, 첫째 스페인 문학사에 나오는 유사한 인물의 전형과 그 변천을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으며, 둘째, 이 인물이 극작품 속에, 특히 극과 관객간의 관계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이해함으로써 깔데론 연극이 의도하고 발하는 효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II. ASPECTOS SOCIALES DE CLARÍN


허구화된 인물들, 즉 작품 속의 인물들을 통해 사회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 관점에서 끌라린이란 특정한 인물에 접근하고자 한다. 첫째, 자신을 비롯해 주변의 인물들이 정의해주는 끌라린이란 인물의 정의(Clarín definido por sí mismo y otros), 둘째, 주종관계의 틀로 본 끌라린의 모습(Clarín como criado de la relación amo-criado), 셋째, 끌라린의 세계관 또는 인생관(el mundo y la idea de Clarín) 등을 분석해 봄으로써 사회 안에서의 끌라린이란 인물을 정의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끌라린이란 인물은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 그의 성격과 사회적 위치 등을 알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자신을 포함한 타인들이 직접 그를 정의한 내용을 찾아내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선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끌라린이란 존재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시종과 동일하게 보면 될 것인데, 그 시종은 어떤 누구보다도 세상의 소문을 많이 듣고 있는 인물이다. 세상 이곳 저곳의 작고 큰 이야기를 속속히 들어 알고 있으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알려주는 존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중 끌라린은 단어의 의미인 옛 전쟁에 쓰던 악기 ‘끌라린‘(clarín)의 이미지와 서로 혼합되고 있다.


CLARÍN: (...) Y hay que, viniendo con ella,/ estoy yo muriendo de hambre,/ y nadie de mí se acuerda,/ sin mirar que soy Clarín,/ y que si el tal Clarín suena,/ podrá decir cuanto pasa/ al Rey, a Astolfo y a Estrella;/ porque Clarín y criado/ son dos cosas que se llevan/ con el secreto muy mal;/ y podrá ser, si me deja/ el silencio de su mano,/ se cante por mí esta letra:/ Clarín que rompe el albor/ no suena mejor. (pp.174-5, vv. 1205-1219)(II.esc.2)


말하자면 나팔수, 즉 소문을 수집해서,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그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바로 끌라린이다. 이것은 끌로딸도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그는 2막 17장에서 세히스문도를 다시 감옥탑에 묶어 놓는 과정에서 동행한 끌라린을 가두도록 명하고 그 이유를 말한다. <<Porque ha de estar/ guardado en prisión tan grave/ Clarín que secretos sabe,/ donde no pueda sonar.>>(vv.2034-2037)(II,esc.17) 


그는 비밀을 알고 있으니, 그것이 사람들에게 소문나지 않도록 가둬야 한다는 말이다. 감옥에 갇힌 끌라린도 자신의 본질이 비밀을 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소문내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CLARÍN: En una encantada torre,

        por lo que sé, vivo preso.

        ¿Qué me harán por lo que ignoro,

        si por lo que sé me han muerto?(vv.2188-2191)

        (...중략...)

        pues para mí este silencio

        no conforma con el nombre

        Clarín, y callar no puedo.(vv.2197-2199)(III,esc.1)


한편, 2막 3장의 마지막에 하인들과 세히스문도의 대화 도중에 끼여든 끌라린은 자신을 ‘참견쟁이‘(entremetido, mequetrefe)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끌라린이란 존재는 장소의 제약이 없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며, 신분적으로도 매우 자유로웠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SEGISMUNDO: ¿Quién eres tú?, di.

CLARÍN: Entremetido,

          y deste oficio soy jefe,

          porque soy el mequetrefe

          mayor que se ha conocido.

SEGISMUNDO: Tú solo en tan nuevos mundos

                 me has agradado.

CLARÍN: Señor, 

          soy un grande agradador

          de todos los Segismundos. (vv.1332-1335)(II, esc.4, p.181)


실제로 극에서 끌라린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여기저기 찾아들어 작품 속 사건들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동시에 그 사실을 타인에게 말한다. 그를 통해 작중 극적 설명부분(explicación)의 역할이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작품이 처음 들어가는 부분의 로사우라와 끌라린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끌라린은 모스꼬비아에서부터 폴란드까지 로사우라를 따라 온 남자 시종이다. 즉 로사우라와 끌라린의 관계는 주종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한편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끌라린의 시종으로서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종관계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충성으로 맺어진 둘 간의 관계가 아니라, 충성도(lealtad, fidelidad)는 없어지고 계약(contrato)에 따른 형식적인 관계만이 발견될 뿐이다. 즉 기존의 주종관계의 틀이 깨어지고, 새로운 변화의 양상을 보이면서, 시종의 자유가 보장되는 상황 속에 끌라린이란 시종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을 시종의 자치(autonomía del criado)와 독립(independencia), 개인 권리 강화로 정의될 수 있겠으며, 이러한 모습은 작품 중 시종의 언행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만, 그의 주인격인 로사우라의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도 풍겨난다. 그녀는, (No quise darte parte/ en mis quejas, Clarín, por no quitarte,/   llorando tu desvelo,/ el derecho que tienes al consuelo;/ que tanto gusto había/ en quejarse, un filósofo decía,/ que, a trueco de quejarse,/ habían las desdichas de buscarse.)(vv.33-40)(I,esc.1)라고 말해 시종의 권리를 지적하고 있다.


결국 끌라린을 통해 볼 수 있는 주종관계에서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기존 붙어사는 존재로서 의식주(alimentación)문제를 이유로 강한 충성이 돋보였던 1차 관계에서 돈과 관련된 계약으로 성립된 2차관계로 전환됨으로써 시종의 개인적 독립(autonomía personal)이 강조되어 시종의 독립(independencia)과 자기 판단(decisión personal o no obligada)이 가능해졌고, 그것은 시종들의 권리로까지 이어진다. 시종의 입장에서 주인의 보호를 받아야 했지만, 그의 봉사에는 항상 한계가 지어지며, 여기에 자기 독립이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주종관계가 계약제로 바뀌고, 시종의 독립이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시종의 세계관, 또는 인생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주인의 목숨과 명예를 지키려던 기존의 시종 모습은 사라지고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언제든지 주인을 떠날 수 있으며, 돈 때문에 주인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수도 있는 매우 현실주의자, 또는 기회주의적 시종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여기서 안위라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는 주인과는 별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며, 어떠한 거짓말도 할 수 있는 극단적 태도를 말한다. 로사우라와 끌라린 일행이 산중 탑감옥에서 세히스문도를 만나게 되고, 세히스문도가 비밀을 알게 된 이들에게 죽음으로 경고하는 순간의 대화에서는 끌라린의 자기 안위적 태도가 희극적으로 드러난다.


SEGISMUNDO: Pues la muerte te daré,

                 porque no sepas que sé que sabes flaqueza mías.

                 Sólo porque me has oído,

                 entre mis membrudos brazos

                 te tengo de hacer pedazos.

CLARÍN: Yo soy sordo, y no he podido

          escucharte.(vv.180-186)(I,esc.2)


한편, 세히스문도가 민중들의 도움으로 반란을 일으켜 궁중으로 다가와 양측간의 전투가 치러질 상황이 되자, 끌라린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무 편도 들지 않고, 숨어 관전만 할 것을 결정하면서 네로황제를 비유하고 있다.


CLARÍN: (...중략...)

          que yo, apartado este día

          en tan grande confusión,

          haga el papel de Nerón

          que de nada se dolía.

          Si bien me quiero doler

          de algo, y ha de ser de mí;

          escondido, desde aquí

          toda la fiesta he de ver.

          El sitio es oculto y fuerte

          entre estas peñas. Pues ya

          la muerte no me hallará,

          dos higas para la muerte.(vv.3048-3059)(III,esc.12)


이렇게 아무 쪽에도 속하지 않는 끌라린이며, 깊은 곳에 숨어 목숨을 구하고자하지만, 결국 13장에서는 전투 중 우연히 날아 온 총에 맞아 최후를 맞이한다.


III. FUNCIONES TEATRALES DE CLARÍN


앞에서 우리는 작품 내적인 존재인 끌라린이 작품 밖의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지 제한적이지만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끌라린이란 인물이 작품 속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여 어떤 작용을 하며, 극과 극 밖의 현실과는 어떤 역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지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는 끌라린이란 인물에게서 여러가지를 발견하지만, 첫째, 희극성(la comicidad)을 발견하게 되며, 둘째, 형이상학성(la metafísica), 그리고 셋째로 극과 현실의 매개체적 기능(la función del medio entre el teatro y la realidad)을 알게 된다.


첫째, 희극성은 끌라린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지닌 중요한 특징이다. 작품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무겁다는 전제 하에 끌라린의 행동과 언어 표현은 중간중간 관객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끌라린의 희극성은 그가 세히스문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안다는 이유로 탑감옥에 갇힌 후 , 다음과 같은 독백에서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그 당시 다른 시종과 다르지 않게, 돈과 가난의 테마가 따라다니고 있는데, 그는 배고픔을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CLARÍN: (...중략...) 

          Mas yo, la verdad diciendo,

          de no comer me desmayo;

          que en esta prisión me veo,

          donde ya todos los días

          en el filósofo leo

          Nicomedes, y las noches

          en el concilio Niceno.(vv.2213-2219)(III,esc.1)


여기서 ‘Nicomedes‘나 ‘Niceno‘는 ‘No comer‘와 ‘No cenar‘에서 연상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을 비롯해서 끌라린의 표현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기에 충분할 만큼 희극성이 뛰어난데, 로사우라와 끌라린이 끌로딸도를 비롯한 경비병들에게 잡힌 후 무장을 해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ROSAURA: Mi espada es ésta, que a ti

             solamente ha de entregarse,

             porque, al fin, de todos eres

             el principal, y no sabe

             rendirse a menos valor.

CLARÍN: La mía es tal, que puede darse

          al más ruin; tomalda vos.(vv.359-365)(I,esc.4)


작품 중에 끌로딸도는 로사우라가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되고, 그녀가 처한 위험에서 구해줄 방법을 찾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왕의 위임을 받아 딸 일행을 방면해줄 수 있게 된다. 이 순간 끌라린의 표현이 웃음을 자아낸다.


ROSAURA: Tus pies beso

             mil veces.

CLARÍN: Y yo los viso,

          que una letra más o menos

          no reparan dos amigos.(vv.894-897)(I,esc.8)


끌라린이 자아내는 웃음의 대목 중에 그가 감옥탑에 갇힌 후 군인들을 비롯한 무리가 감옥 밖에서 안쪽에 있을 세히스문도왕자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즉 무리가 왕자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눈 사람은 세히스문도가 아니라 끌라린이었다. 끌라린은 엉뚱하게 벌어진 이 상황에 스스로를 왕자인 체하면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이끌어낸다.


TODOS: Señor...

CLARÍN: ¿Si vienen borrachos éstos?

(...)

TODOS: ¡Viva el gran príncipe nuestro!

CLARÍN: (Aparte.) ¡Vive Dios, que va de veras!

          ¿Si es costumbre en este reino

          prender uno cada día

          y hacerle príncipe, y luego

          volverle a la torre? Sí,

          pues cada día lo veo;

          fuerza es hacer mi papel.

SOLDADOS: Danos tus plantas.

CLARÍN: No puedo,

          porque las he menester

          para mí, y fuera defeto

          ser príncipe desplantado.

SOLDADO2: Todos a tu padre mesmo

              le dijimos que a ti solo

              por príncipe conocemos,

              no al de Moscovia.

CLARÍN: ¿A mi padre

          le perdistisel respeto?

          Sois unos tales por cuales.

(...)

SEGISMUNDO: ¿Quién nombra aquí a Segismundo?

CLARÍN: (Aparte.) !Mas que soy príncipe huero!

SOLDADO2: ¿Quién es Segismundo?

SEGISMUNDO: Yo.

(...)

CLARÍN: ¿Yo Segismundo? Eso niego.

          Que vosotros fuistis quien

          me segismundasteis; luego

          vuestra ha sido solamente

          necedad y atrevimiento.(vv.2235-2275)(III,esc.2-III,esc.3)


둘째, 분명 끌라린이란 인물은 희극적이지만, 작품 중 죽음이 묘사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즉 그의 작품에서의 역할은 희극적이지만, 우연한 죽음으로 인해 가장 비극적인 면을 보여주는 인간형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인물에게서는 희극적인 면과 비극적인 면이 공히 비춰지고 있으며, 다시 이런 요소는 형이상학적 수준에까지 발전하게 된다. 즉 가장 가볍고 하찮은 존재지만, 또한 가장 형이상학적 의미를 던져줄 수 있는 인물이 끌라린이다.


끌라린의 형이상학성은 반란을 일으킨 세히스문도 쪽과 바실리오 왕을 옹위하는 군대와의 전투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무 쪽에도 속하지 않고, 숨어 있다 총상을 입고 쓰러진 후 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극에 달한다. 쓰러진 그는 아스똘포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CLARÍN: Soy un hombre desdichado,

          que por quererme guardar

          de la muerte, la busqué.

          Huyendo della, topé

          con ella, pues no hay lugar

          para la muerte secreto.

          De donde claro se arguye

          que quien más su efeto huye

          es quien se llega a su efeto.

          Por eso tornad, tornad

          a la lid sangrienta luego;

          que entre las armas y el fuego

          hay mayor seguridad

          que en el monte más guardado;

          que no hay seguro camino

          a la fuerza del destino

          y a la inclemencia del hado.

          Y así, aunque a libraros vais

          de la muerte con hüir,

          mirad que vais a morir,

          si está de Dios que muráis.(vv.3075-3095)(III,esc.13)


위의 내용에서는 “por quererme guardar de la muerte, la busqué. Huyendo della, topé con ella“라는 표현과 “que quien más su efeto huye es quien se llega a su efeto“, 그리고 “entre las armas y el fuego hay mayor seguridad que en el monte más guardado“이 두드러지는 내용이며, 끌라린이 죽음에 닿으면서 얻어낸 인생에 대한 형이상학적 결론이 되었다. 미천한 끌라린의 마지막 말이었지만, 그의 말을 드고 있던 왕 바실리오에게는 대단히 인상 깊은 의미로 남게 되니, 바실리오 왕은 그의 말에 감동되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BASILIO: Mirad que vais a morir,

          si está de Dios que muráis.

          !Qué bien, ay cielos, persuade

          nuestro error, nuestra ignorancia,

          a mayor conocimiento

          este cadáver que habla

          por la boca de una herida,

          siendo el humor que desta

          sangrienta lengua que enseña

          que son diligencias vanas

          del hombre cuantas dispone

          contra mayor fuerza y causa!

          Pues yo, por librar de muertes

          y sediciones mi patria,

          vine a entregarla a los mismos

          de quien pretendí librarla.(vv.3096-3111)(III,esc.13)


바실리오왕 일행이 땅에 떨어진 끌라린을 발견하게 된 것과 그의 말을 듣게 된 것은 세히스문도을 옹위한 사람들이 궁궐에 들어와 싸우는 상황에서 몸을 피하려는 과정에 일어난 일이다. 즉 죽음의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바실리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 계기가 되는 것이고, 결국 최후에 바실리오가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히스문도 앞에 나갈 수 있었던 바실리오의 결심에 기인된다. 바실리오왕은 끌라린의 말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이 죽음에 정면 부딪쳐나갈 것을 결심한다.


BASILIO: Si está de Dios que yo muera,

           o si la muerte me aguarda,

           aquí, hoy la quiero buscar,

           esperando cara a cara.(vv.3132-3135)(III,esc.13)


여기서 새삼 아이러니칼한 사항은 끌라린이 죽으면서 얻은 교훈은, 위에서 강조한대로 죽음을 피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자신이 직접 격은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란 사실이다.


사실상 이 작품이 운명과 자유의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때, 끌라린의 인생에 대한 교훈과 바실리오왕의 행동과 결과는 작품의 가장 핵심되는 사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작품 시작부분에 나온대로 바실리오왕이 세히스문도를 감옥탑에 가둔 이유는 결국 ‘운명화된 자신의 죽음‘과 ‘국가의 분열‘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것은 운명에 피하려는 행위였던 것이고, 오히려 그러한 행위는 정해진 운명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 뿐이며, 진정한 삶의 방법은 운명을 인정하고 두려움없이 대처해나가는, 또는 정면 대결해나가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죽음을 피하려는 자에게는 죽음이 빨리 다가오는 것이며,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 안에서 열심히 싸워나가는 자에게는 죽음은 멀리 있음을 인식케하는 상황이다. 즉 바실리오왕에게 형이상학적 깨달음과 그에 이어서 생명을 준 사람은 끌라린과 그의 죽음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


셋째, 끌라린의 극과 현실의 매개체적 기능에 대해서는 작중에 구체적인 사례가 아주 많이 보이고 있다. 그 하나 예로, 그는 작중에서 바실리오 왕의 편도, 그렇다고 세히스문도의 편도 아닌, 로사우라라는 중간적 인물의 시종이다. 즉 그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바실리오왕과 세히스문도왕자 사이의 중재적 역할을 하고 있는 로사우라의 극에 존재하여, 대립 상황을 승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둘째의 예로, 위의 끌라린의 사회적 의미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이 인물은 다른 사람들의 소문들을 듣고,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전해주는 말하자면 끌라린이란 악기(y que si el tal Clarín suena, podrá decir cuanto pasa al Rey, a Astolfo y a Estrella)(II,esc.2, vv.1209-1211)와도 같이 시끄러운 참견쟁이(Entremetido, y deste oficio soy jefe, porque soy el mequetrefe mayor que se ha conocido)(II,esc.4, vv.1333-1335)이다. 말하자면 끌라린의 본질은 이미 그가 내긴 자신에 대한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entremetido'이다. 셋째 예로, 그의 이러한 성격을 볼 때 끌라린이란 인물은 고전극에서 합창(coros)이 담당했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우리의 인물은 처음 그가 속한 로사우라의 극에서조차 자유로워진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거기에 이 소문, 저 소문을 취합하여 모든 이야기(historia)를 알고 있는 참견쟁이로서 무대에 보이는 상황은 물론 그렇지 못한 이야기까지 그를 통해 표현된다. 따라서 현대극에서 보이는 설명부분(explicación)을 그가 담당하며, 등장인물의 출현이나 숨은 이야기까지 그의 목소리를 통해 그려진다. 특히 이러한 예는 많은데, 2막 3장이 시작되면서 세히스문도가 궁궐에 등장하는 모습이 전개되는데, 이미 2막 2장의 마지막에 끌라린은 끌로딸도와의 대화를 멈추고 그 상황을 전해준다. “이제, 세히스문도가 도착합니다요.(Pues ya Segismundo llega)“(v.1223)(II,esc.2)


2막 5장에서 에스뜨레야가 등장하고, 이에 세히스문도가 그녀의 미모에 감탄하는 순간에, 끌라린은 “전한, 그분은 전하의 사촌 에스뜨레야이십니다.(Es, señor, tu prima Estrella)“(v.1390)(II,esc.5)라고 정보를 제공해준다.


세히스문도의 만행을 지켜보러 온 바실리오왕과 세히스문도 사이에 아무 상황에서나 끼여드는 끌라린이 존재하며, 그는 왕자에게 앞에 있는 상대가 왕임을 알려준다. (Que es el Rey está advertido.)(v.1443)(II,esc.6)


2막 17장은 세히스문도가 궁궐에서의 테스트에서 실패하여 다시 탑감옥으로 옮겨져 처음처럼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사슬로 묶이는 신세가 된다(Descúbrese Segismundo como al principio, con pieles y cadenas, durmiendo en el suelo). 이 상황에서 등장한 끌라린은 마치 합창이 극에서 그렇게 하듯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한다. <<No acabes de despertar,/ Segismundo, para verte/ perder, trocada la suerte,/ siendo tu gloria fingida/ una sombra de la vida/ y una llama de la muerte.>>(vv.2022-2027)(II,esc.17)


사실 끌라린이 합창단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그의 이름이 갖고 있는 이중성(dualidad)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었으니, 고전극에서의 ‘악기‘와 ‘합창단‘은 동시에 실현되는 상황이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2막 17장에서 끌로딸도가 자신을 감옥에 가두도록 조치하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Pues ya digo que seré/ corneta, y que callaré;/ que es instrumento ruín.>>(vv.2045-2047)(II,esc.17) 끌라린은 이미 꼬르네따(corneta)가 될 수 있으며, 루인(ruín)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3막의 11장에서 끌라린은 왕궁에서 나와 로사우라의 편에 있으며, 로사우라와의 대화도중 나는 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장면을 설명해준다.


ROSAURA: ¿Qué puede ser?

CLARÍN: Que del palacio sitiado

          sale un escuadrón armado

          a resistir y vencer

          el del fiero Segismundo.(vv.3032-3036)(III,esc.11)


우리가 알아야 할 사항은 끌라린의 극 설명이 등장인물에 주는 정보 외에도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까지 극 상황이 설명된다는 것이다.


넷째, 앞의 내용을 종합적을 볼 때, 언급한 끌라린은 픽션공간이 현실공간과 상호 소통하는데 중요한 매개체로서 평가받을 만하다. 즉 그는 픽션이 현실의 관객에서 전달되고, 관객의 반응을 유도해내는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끌라린을 시종으로 볼 때 그에 대한 유형이 대단히 많지만, 허구라는 작품에서, 구체적인 현실성을 드러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존재에 대해 이미 현실적이라는 말은 했지만, 그는 허구와 사실 사이에서 사실 쪽의 존재며, 이것은 결국 자신을 둘러 싼 허구의 상황을 벗겨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정의해 볼 수 있겠다. José María Ruano de la Haza는 그의 La puesta en escena en los teatros comerciales del Siglo de Oro란 책에서 익살꾼의 희극적이고 이질적인 의상이 자아내는 효과를 «Claramente, el vestido «gracioso» identificaba de una manera u otra a este indispensable personaje; es el bufón del mundo teatral que, gracias en parte a su indumentaria, poseía el privilegio de desdoblarse y salir del mundo de la ficción para acercarse a público.»(익살꾼의 우스꽝스런 의상은 어쨌든 인물의 특징과 맞물려지는 바, 연극에서 이를 광대라고 말하며, 자신을 벗겨 실체를 드러내주고, 결국은 허구의 세계에서 나와 관객에게로 다가서게 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José María Ruano de la Haza, La puesta en escena en los teatros comerciales del Siglo de Oro, Madrid, Editorial Castalia, 2000, p.86)라고 말한다. 익살꾼이 주는 이중성과 탈이중성, 또는 벗기기 효과를 지적하는 것이다. 연극의 주류를 이루는 분위기에서 벗어난 존재의 출현으로 기존 극 상징과 충돌을 하게 되며, 이를 통한 양극단 상황의 존재와 반복은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실체를 인식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쯤해서 우리는 끌라린을 통한 거리감 효과(distanciamiento)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끌라린과 거리감 효과를 연결해볼 때, 위에서 설명한 여러가지가 이에 속하게 되지만, 특히 그가 가지고 있는 희극성과 매개체적 기능을 지적할 수 있는데, 거기에 끌라린이란 인물이 가지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의 차별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는 극 중 다른 주요인물들과는 달리 신분이 다르며, 그가 쓰는 언어나 행동 역시 현격히 구분된다. 즉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질성 그 자체가 작품 속 특이성을 자아내면서 관객, 즉 수용자들에게 작품과 현실간의 거리감을 자아내게 된다. 여기서 거리감이란 잘 알다시피, ‘극을 극으로‘, ‘픽션을 픽션으로‘볼 수 있는 눈을 말하며, 극을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할 수 있는 효과를 말한다.


결국 작품 속 희극성과 형이상학적 요소를 제공하고 있는 끌라린은 극과 현실의 벽을 허물어, 그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동시에 그 관계에 거리감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IV. CONCLUSIÓN


우리는 위에서 살펴봤듯이, 극중의 인물 끌라린은 사회적으로 정의될 때, 중세적 주종관계의 틀을 벗어나 계약적이고 자유로운 입지를 얻은 존재였으며, 따라서 시종이 기존 주인과의 관계에서 보였던 주인에 대한 복종이나 충성은 보이지 않고, 개인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돈에 의한 계약적 관계만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이런 근대로의 변화에 발맞춰 끌라린은 자기 안위적 인생관, 또는 현실주의적 인생관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편 극 내부에서 끌라린은 희극성을 자아내는 원인이었으며, 그것은 작품이 갖고 있는 비극성과 결부되어 작품은 총체적으로 형이상학성을 담보해내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극과 현실, 즉 무대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끌라린은 결국 극을 현실 속으로, 다시 현실을 극 속으로 전달해주는 매개체적 역할을 하면서, 결국에는 무대와 관객간의 밀접한 상호 소통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BIBLIOGRAFÍA


-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참조

- Fernando de Rojas, La celestina, (edición de Bruno Mario Damiani), Madrid, Cátedra, 

  1987.

- R. O. Jones, “Brecht y el drama del Siglo de Oro en España“, Segismundo, 3, 1965, 

  pp.41-54. (Distanciamiento관련된 연구서)(내 박사 논문에도 있는 듯하다.)

- José María Ruano de la Haza, La puesta en escena en los teatros comerciales del 

  Siglo de Oro, Madrid, Editorial Castalia, 2000.

-  ----- La influencia del teatro italiano en el nacimiento del teatro español....

- Calderón de la Basrca, La hija del aire,...

- René Andioc(1987), Teatro y Sociedad en el Madrid del siglo XVIII, Madrid, 

  Editorial Castalia.

- Jenaro Taléns(1975), Novela picaresca y práctica de la transgresión, Gijón, Ediones 

  Júcar.

- José I. Moraza(1996), “Fabia y Clarín: Símbolos de lo teatral en El caballero de 

  Olmedo y La vida es sueño“, Hispanofina, Nº.116.

- José Antonio Maravall(1986), La literatura picaresca desde la historia social, siglos 

  XVI y XVII, Madrid, Taurus.

- Ignacio Arellano(1999), Convención y recepción (Estudios sobre el teatro del Siglo de 

  Oro), Madrid, Gre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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