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이야기]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Velázquez, o el caballete fantástico)(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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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IV-2)
“가장 친한 친구시라니, 하나 여쭤 보겠습니다.”
얼굴에는 온통 털이 수북하고, 실내에서도 벗지 않는 모자를 무겁게 쓰고 있는 연출가가 담배를 길게 들이 마시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예, 말씀하시죠.”
“가장 최근에 함께 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뭐 특이한 행동이라도 없었습니까? (갑자기 생각난 듯, 잽싸게.) 벨라스께스? 그래요, 그가 잠자는 동안 여러 번 이런 이름을 헛소리로 흘리곤 했습니다.”
“쁘라도 미술관에서 ‘라스 메니나스’를 봤습니다. 제가 미술관을 다 둘러보는 동안 그 그림 앞에 계속 앉아 있더군요. 아무 말도 없이...”
Es triste no saberse pasar sin enseñar lo que uno pinta.
No es vanidad: es que siempre se pinta para alquien...
A quien no se encuentra.
Es mi pintura la que se siente sola.
나는 마드리드 중앙에 자리잡은 마요르광장에서 빠져 나와 국립극장 옆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좁은 건물 사이로 그늘이 있어, 여느 때 같으면 시원한 바람을 제공할 텐데, 지독하게도 바람 한 점 스쳐지지 않고 있었다. 정원이 바로 앞에 다가서고, 그 앞으로 거대한 석조건물이 서있다.
“제기랄, 뭘 쓰지?”
아침에 일어나 의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눈감을 때부터 괴롭혀왔던, ‘뭘 쓸까’, ‘어떻게 쓸까’에 대한 물음은 더 부지런을 떨며 천장에서 날 내려보고 있었고,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을 가지고 다시 나의 목을 조여오는 것이었다. 써질 것 같은 확신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상상과 공상을 해대지만, 막상 타자기 앞에 앉으면 그것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그 금속성 소리 때문일까? 글자화하려면 아름답고 기찬 발상들이 산정의 구름처럼 빠르게 날아가 버리고 만다. 구름을 잡아 둘 수는 없다. 잡으면 구름이 아니다. 단지 남겨 둔 허전한 물방울조차 미미한 흔적을 남길 뿐이다. 구름의 실체는 있었음을 기억하라는 듯이 말이다. 기발한 생각은 글로 잡아둘 수는 없다. 온통 바닥에 던져진 종이와 수척한 얼굴만이 답답한 잠을 맞게 해준다.
“더 이상 쓸 수 없다!”
이쯤에서 창작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니 뭘 만든다는 것, 머리 속의 잡히지 않는 상상을 글로 정리한다는 작업은 포기해야 할 판이다.
“벨라스께스!”오리엔트광장에 닿자 뭔가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듯 신이나 외친 소리다.
그렇다 벨라스께스를 찾기로 한 것이다. 그는 뭘 만든다는 것에 그런대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친구다.
그는 괴짜다. 하루종일 레띠로 공원에 누워 공상을 하다, 늦은 점심시간조차 건너 뛴 경우가 밥먹은 것보다 더 많았고, 한동안 그림을 손에서 뗀 이유로, 눈을 끈으로 칭칭 매고 다니는 통에 그가 혹시 눈이라도 먼 게 아닌가하는 소문이 난무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대로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았으며, 기인으로 취급받기까지 했다.
오리엔떼 광장을 사이에 두고 왕궁과 마주한 건물에 산다. 그의 화실이 자리한 곳은 바로 왕궁이다. 절친하게 지내고 있는 펠리뻬4세의 아들 발따사르 까를로스왕자가 어린 나이에 죽은 뒤로 그의 방은 화가의 작업실로 개조되었다. 자식을 잃은 아픔을 달랠 길 없었던 왕은 아들의 혼령이나마 그림을 통해 살아나기를 바라는 속뜻이 있었다. 정문에서 왼쪽으로 중간쯤에 위치한 이 방은 대체적으로 어두운데다 벨라스께스는 문을 열어두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항상 음침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여름의 더운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워낙 내성적인 성격에다 점점 폐쇄적인 것까지 더해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들어갔을 때,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어둠 속에 눈 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밖은 똘도로 대낮의 태양을 막고, 그 안으로도 이미 뻬르시아나가 굳건하게 내려져, 모든 바깥 세상 것들을 차단하고 있었다.
“사실은 말야. 난 뭔가를 써야겠는데... 쓴다는 생각 뿐 시간이 갈수록 더욱 허무해져. 그 동안 버린 종이가 얼마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 몰라. 그러나 써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 마음이 더욱 간절해질수록 괴로워지는 거야. 이 강박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도 살아남을 놈이고, 무덤까지 따라 올 만큼 끈덕진 놈이지. 피할 수도 없고...”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벨라스께스는 아무 말 없이 머리를 한 손에 힘들게 괴고 있었다. 보드라운 그의 손은 역시 화가다운 섬세함을 보여주며, 네 번째 손가락에 끼여있는 반지가 유난히 밝게 보이고 있었다. 한참의 정막을 깨고 그가 말한다.
“나 역시 지금 죽을 지경이야. 내 그림에는 생명이 없어. 모두 어둠 속에 싸여있을 뿐이지. 숨조차 쉬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있다네. 가슴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어. 오히려 건장한 말을 보면서 그 생기 넘치는 모습을 담았던 이태리 사람들의 그림이 부러워. 그들에겐 추상이란 없는 것이며, 단지 보는 그대로 화폭에 담을 뿐이었지.”
“그럼 자네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나?”
“아니! 그렇게 해서는 내가 생각하는 순간적인 영감을 담을 순 없어.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내가 이태리에 있을 때, 난 단지 모방만을 했을 뿐이라네.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린 것을 한 번 습작했을 뿐이고, 그럴수록 난 내 방식을 찾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지. ‘네 것을 만들어라’, ‘네 눈으로 봐라’ 우리 선생님이자 장인인 빠체꼬 어른이 항상 말씀하셨지.”
“그래 나도 자네와 같은 생각일세. 사물은 순간순간 변하지. 진리의 적은 시간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지. 일 분 후의 내가 일 분 전과 지금의 나와 다르듯이 말일세. 소설도 그림도 일회성에 불과하단 생각 뿐이야. 한 순간도 담을 수 없으며, 쓰고나면 또 써야 할 것이, 그리고 썼어야 할 것이 또 살아나고 말아. 그래서 포기할 수 밖에... 정녕 시간과 의식을 담을 수 있는 요술 그릇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대화를 계속하였다. 벨라스께스의 말은 이제 신화적인 주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르네상스인들이 쓰던 신화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신들은 우리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며, 이 시대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일반 사람, 우리들이란 말이었다. 신과 결탁하고 싸우는 신적 인간이 아니라, 서로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인간이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 둘,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끼리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언해주도록 하세. 나는 자네를 찾아 긴 여행을 하였네. 자네가 여기에 아직도, 아니 영원히 머물러 있어 무척 다행이야. 자네를 만질 수는 없지만 대화라도 나눔을 다행으로 생각하네. 언어가 아니고 생각으로 나누는 방법은 더욱 더 좋을 것이네. 난 지금 20세기말의 공기를 마시지만 자네는 16세기부터 마셔왔지. 그리고 지금은 함께 숨을 쉬고 있는 거고. 난 지금부터 자네와 함께 영원의 숨을 쉬기 위해,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 여기까지 왔지. 자네가 고민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 고민이 오히려 생명력을 주고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난 고민하고 싶네. 자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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