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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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Q] 당신은 현실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나는 현실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이에 대한 답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그 개념의 혼동에 빠지게 될 것인데, 어느 '선'까지를 그 구분의 기준으로 잡을까가 문제로 떠오른다. 그러다보면 나오는 결론은 '나는 현실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다'라는 말이다. 사실, 지나친 현실주의자에게 비교적 덜한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다. 물론, 지나친 이상주의자 옆에, 보통의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로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이고, '산초는 현실주의자'라는 표현도 단편적인 비교에서 나온 규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풍차를 보고,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본 것 만 갖고, 그것을 풍차로 본 산초를 현실주의자,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말하기 보다는, 비현실주의자, 또는 미친자로 봐야 할 것이다. 만일 산초가, 시골 농부이고, 아무런 집안 배경도 없으며, 교육도 받지 않은 산초가, 어느 섬의 총독이 되겠다고 집을 나선다면, 우리는 과연 그를 현실주의자로 볼 수 있을까?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속박된 사람을 풀어주고, 자신이 주장하면 가능했을 섬통치를 산초에게 물려주는 사람이라면, 그는 현실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돈키호테]에는 두 인물이 나름의 '표면적 전형'을 갖고 모험길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이 표면적 인물형은 일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관계 속에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산초화', '산초의 돈키호테화'리는 용어를 붙여댄다. 그러나, 한 인간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어느 순간에는 돈키호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산초가 된다. '나'는 어떤 사람에 비해서는 '돈키호테'이고, 어떤 사람과 비교해서는 '산초'다. 다시 산초에게로 돌아가서, 그는 처음부터 '돈'과 '음식'을 위해 집을 나선 것 같지만, 그 속을 눈여겨 보면, '총독'자리를 원했다. 여기서 총독이란, 큰 영지를 통치하는 자리를 말한다. 윗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자리를 원했다고 산초는 말한다. 돈과 음식을 탐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를 당장의 현실적 문제에 집착하는 현실주의자로 말했지만, 그야말로 막연한 총독자리를 원해서 집을 나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는 분명 이상주의자다. [돈키호테] 2권에서 맹활약하는 산초는 만일 100% 현실주의자였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모험도 있을 수 없으니, 작품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바로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분명 [돈키호테]의 2분의 1을 차지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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