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황새 둥지에 눌린 콜라주, 그리고 백남준(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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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수도이자 중앙에 위치한 마드리드에서 서부 엑스뜨레마두라(Extremadura)로 가는 길은 과거의 긴 터널로 들어가는 기분을 준다.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이어지는 왕복 4차선 좁지 않은 그 길을 따라 끊임없이 펼쳐지는 들판은 말 그대로 황금색이다.

황금! 그것은 바로 스페인이 중남미로 향했던 그 시절, 이곳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꿈꾸었던 이상이었다. 강렬한 태양을 받은 광활한 풍경이 이어지는가 하면, 중간중간 올리브 나무들이 한데 모여 산과 밭을 이루고 있는 모습, 그것야말로 전통과 신비를 품은 세계, 엑스뜨레마두라이다.
이 길로 접어들면 마드리드에서 가까이에 도자기로 유명한 딸라베라(Talavera de la Reina)가 있고, 거기를 넘으면 중남미 성모 마리아의 원조가 된 도시 과달루뻬(Guadalupe), 그리고 중남미 정복자들의 땅 뜨루히요(Trujillo)를 지나게 된다. 우리의 여정은 이어 바다호스(Badajoz), 메리다(Merida)를 거쳐 엑스뜨레마두라 자치주의 대표적인 도시 까세레스(Caceres)에 닿게 되고, 거기서 가까이 말빠르띠다(Malpartida)라는 마을의 작은 미술관에 머문다. 주변 마을들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갖가지 형상을 띤 바위들을 볼 수 있으며, 그 형태로 인해 약간의 신비감마저 느끼게 된다.
보스텔 미술관(Museo de Vostell)! 이렇게 작고 볼 것 없는 마을에 미술관이라니, 게다가 버려진 듯 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창고에 무슨 미술관? 그러나 ‘잘못 분리된 마을’로 해석되는 마을 이름과, 주변에 널린 이상한 형상의 바위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독일인의 이름을 갖고 있는 미술관까지 생각한다면 이곳이 평범한 시골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이렇게 말빠르띠다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볼프 보스텔(Wolf Vostell, 1932~1998)은 현대 설치예술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데콜라주, 해프닝 그리고 플락서스 등을 말할 때, 그는 이 분야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최신 예술을 만들어 가던 예술가가 스페인의 외진 곳 엑스뜨레마두라를 찾은 것에는 마치 어떤 전생의 끈이 작용했던 것 같다. 스페인이 아직 원시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1958년, 그가 당시로는 먼 나라 독일에서부터 과달루뻬라는 도시를 방문하게 된 것은 성당에 있는 프란시스꼬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 1598 Badajoz-1664 Madrid, Diego Velazquez와 동시대의 화가)의 성화들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신비의 도시에 들어온 독일인 보스텔은 예술 행위 때 얻었던 영감처럼 시골 여인 메르세데스(Mercedez)에게 빠진다. 그녀에게서 과달루뻬 성모를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그녀를 통해 수르바란의 영혼에 닿은 것일까?
보스텔과 메르세데스는 무엇으로 엮인 것일까? 동일한 점에서 만난 것인가, 아니면 한 바퀴 돌아서 만난 것인가? 당시 가장 '전위적인 인물'과 가장 '원시적인 인물'의 결합, 정확하고 분석적인 독일과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스페인의 만남, 훤칠한 키에 하얀 얼굴, 그리고 금발의 예술가와 스페인에서도 가장 구석 자리로 알려진 엑스뜨레마두라, 그것도 말빠르띠다란 온통 시골풍인 마을의 초등학교 여교사, 열정의 유산을 가슴 속에 묻어 둔 채, 까만 머리 까르멘(우리는 흔히 스페인 여인의 상징으로 이 이름을 기억한다)으로 살아가던 여인과의 혼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의 현실적 구현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아니면 자신이 갖지 못했던, 그래서 예술로 실현해 보고자 했던 부족한 무엇을 메르세데스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을 품은 채, 그의 예술은 ‘전위’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전위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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