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아스뚜리아스(Asturias), 스페인의 자존심(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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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투박하고 끈질긴 사람들을 찾으라고 하면 북부의 아스뚜리아스인들을 지칭해야 할 것 같다. 독립한 지 오래되었으며, 빠이스 바스꼬(Pais Vasco)만큼이나 순수성을 지키고 살았다. 아스뚜리아스 지역은 로마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서쪽의 갈리시아(Galicia)와 더불어 켈트족들의 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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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뚜리아스 |
아스뚜리아스의 지형을 살펴보면 내륙 쪽으로는 산악이 버티고 있다. 삐꼬스 데 에우로빠(Picos de Europa)는 깐따브리아(Cantabria) 쪽보다는 아스뚜리아스 쪽에 더 많이 걸쳐 있으며, 그 줄기인 2,648미터의 또레 세레도(Torrecerredo, Torre de Cerredo) 산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다.
| 또레 세라다(Torre Cerrada) |
산이 많으니 깊은 계곡이 많으며 물도 풍족하다. 풍부한 물을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전국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송어와 연어잡이도 흥행하고 있다. 아스뚜리아스는 험준한 지형으로 말미암아 남부에서 올라오는 끊임없는 외부 세력의 침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고, 로마인들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기원전 29년부터 19년까지 약 10년을 고생해야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스페인 전역에서 가장 로마화가 덜 된 곳이 되었다. 아스뚜리아스의 말은 강인하고 빠르기로 유명하여 로마의 네로 황제가 아스뚜리아스에서 보내온 말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때문에 아스뚜리아스는 아랍인들에게 대항해 국토 회복에 나섰던 전쟁의 본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전의 국토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이 전쟁을 ‘국토회복전쟁’ 또는 ‘레꽁끼스따’(Reconquista)라고 부른다. 이들은 아랍의 지배하에 들어가지 않은 순수 스페인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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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바동가 전투(Batalla de Covadonga) |
역사적인 진실이야 어떻든 간에 722년 아스뚜리아스 왕국의 첫 번째 왕 뻴라요(Pelayo)는 ‘꼬바동가 전투’(Batalla de Covadonga)에서 아랍인들을 이겼다고 전해지며, 이 승리는 피레네를 지나 프랑스까지 진격했던 아랍의 기세를 꺾는 계기가 되었다. 뻴라요 왕으로 시작된 아스뚜리아스 왕국은 그 후 910년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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