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38.유언장(Testamento)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나도 나이가 들어 이제는 고향으로 가는 꿈을 완전히 접어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긴 여행을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오늘 아내 아나 마르띤과 딸 프란시스까를 불렀다. 사촌 바르똘로메도 불러, 서기가 쓴 유언장을 확인하라고 했다.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의 나이는 벌써 33살이 되었다. 늦게나마 후아나 베니떼스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뤄 나로부터 독립했지만, 바로 나의 옆집에 살았다.
바르똘로메는 완전한 스페인 사람이니, 그는 내가 뿌린 조선의 씨가 이 스페인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 프란시스꼬는 몇 년 전 아메리카로 떠났다. 나는 아들에게 아메리카로 건너가 더 넓은 세상을 개척하고, 언젠가는 태평양을 넘어 조선에 가서 꼭 나대신 조선을 위해 일하라는 당부했다.
나의 꿈을 아들이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동시에 세르반테스가 아메리카로 가서 하고 싶었던 모험을 내 아들이 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내가 일본에 돌아가는 것보다, 그리고 조선에 가지 못하고 일본에서 세상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아예 여기서 세상을 뜨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내가 이룬 이 꼬리아, 즉 고려에서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수많은 서양의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천주와 함께 하면 세상의 어디에 있든 중요하지 않았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살아있는 것이니, 묻히는 장소는 의미가 없다.
나는 여기서 자유를 찾았다. 한 개인에게 가장 우선 시 되는 가치다.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자기의지,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운명이라면, 그 운명 안에는 분명, 나의 자유의지가 있었다.
내가 여기 이 마을을 내 마지막 머물 자리로 선택한 것도 내 의지였다. 그 모든 것들이 실현되었기에, 나는 후회가 없다. 그리고 시간은 내가 어디를 가든 예외없이 나를 따라왔고, 이제 나의 길을 막고 나섰다.
나는 마지막 숨을 쉬던 세르반테스와의 대화를 생각했다. 늘 호기심과 열정에 불타던 그도 어쩔 수 없이 모험을 접어야 했다. 말보다 행동이라고 말했던 그도, 결국 더 이상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을 맞이했다. 시간 앞에서 이길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렇다. 인생은 예기치 못 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나 대신에 내 아들 프란시스꼬가 아메리카로 가고, 거기서 다시 일본과 조선으로 찾아갈 것이라 굳게 믿는다. 내 고향에 가서, 나대신 고향을 볼 것이다. 그리고, 여기 스페인 땅 한 곳에 꼬레아란 성을 갖고 살았던 나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1642년 9월 19일 유언장을 남긴 날 저녁, 조선인 宋錫喜 Bartolomé Rodríguez Correa
![]() |
| 꼬리아 뗄 리오의 솔레닫(Soledad) 예배당 |
l 조선인 송석희,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 경산남도 웅천(진해) 출신
- 1617년 결혼
- 1633년 10월 25일 자료에는 Soledad이라는 암자 근처에 거주.
- 쓰네나가의 일행 중 스페인에 정착한 조선인
- 원명은 송석희
- 세례명은 바르똘로메
- 예수회 학교에서 라틴어와 스페인어 공부
- 일본 예수회로부터 전도사로 임명
- 서명란에 한글로 ‘조선인’이라 기입하여, 자신의 국적을 표시
- 성을 ‘Correa’로 하여 출신 표시(스페인에는 ‘Correa’라는 성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에 정착하면서, Corea, 또는 Coria대신에, 기존에 있는 성을 그대로 썼을 가능성)
- Coria del Río에 현재 남아있는 기록 내용:
‘Casa de Bartolomé Correa, viven el dicho y Ana Martín, su mujer; Francisca de nueue años, Francisco de catorce, ambos sus hixos; Bartolomé Rodríguez, huérfano, primo del dicho, de venticuatro años.’(Archivo General de Simancas, Mercedes y Privilegios, 281, expediente 56, Fol.4 vto. del Padron de 25 de octubre de 1633)
- 9년 후인 1642년에 작성된 유언장 내용:
‘Para pagar y cumplir este mi testamento y las mandas y cláusulas en él. contenidas, de mis bienes dejo e nombro por mis albaseas testamentarios a Bartolomé Rodríguez Japón y a la dicha Ana Martín mi mujer a los quales y a cada uno in solidum doy poder cumplido bastante….’(Archivo histórico Provincial de Sevilla, 2193 PB fol 274 vto 276 vto)
l 아나 마르띤:
- 조선인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의 아내
- 스페인 세비야 사람
l 프란시스꼬 꼬레아:
- 조선인 바르똘로메와 아나 사이의 아들
- 1618년생, 조선인과 스페인 사람의 혼혈
- 아메리카로 이동
- 아메리카의 꼬레아 성씨와의 연결 가능성
l 프란시스까 꼬레아:
- 조선인 바르똘로메와 아나 사이 딸
- 1624년생
- 조선인 및 스페인 사람의 혼혈
- 스페인에서 결혼
- 스페인에 꼬레아(Corea, 또는 Correa) 성(소수 존재)씨와의 연결 가능성
l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
- 조선인 바르똘로메의 사촌(스페인 자료에 기록된 내용)
- 1609년생
- 1616년 7살(바르똘로메가 꼬리아 델 리오에 정착할 때의 나이)
- 스페인 사람, 고아 (부모를 잃음)
- 1633년 10월 25일 자료에 24살
(이 때는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와 함께 거주한 것으로 파악)
- 1642년 조선인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의 유언장에서 유언집행자로 지정(당시 33세)
- 1647년 4월 27일의 꼬리아 델 리오 지역 병적서류에 Calle Nueva에 사는 거주자로 등록(기록을 기준으로 볼 때, 하뽄 성씨의 첫 번째 사람으로 추측)
- 3명의 자녀를 두었고, 이후 17세기 말까지 18명, 18세기에는 80여 명의 하뽄 성을 가진 후손들이 등장
l 안또니오 로드리게스 하뽄:
-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과 후안나 베니떼스 사이의 아들
- 스페인 사람
- 1668년의 자료에,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의 아들로 명시한 내용:
‘Antonio Rodríguez Japón, hijo de Bartolomé Rodríguez Japón y de Juana Benítez, quiere contraer matrimonio con Ana de Oxeda, hija de Antonio de Campos y de Francisca de Oxeda….’ (APC, Libro de Amonestaciones 1663-1724, fol.15 recto.)
- 안또니오 로드리게스 하뽄은 아버지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이 59세일 때 결혼
l 아나 데 오헤다:
- 안또니오 로드리게스 하뽄의 아내
-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의 며느리
- 스페인 사람
** 하뽄이란 성은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이어짐
** 하뽄의 장손들을 통해 송석희의 문서 보관 중
** 바르똘로메 꼬레아가 사망하기 전,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을 후견인으로 지정(바르똘로메 꼬레아의 자료가 하뽄이라는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이유)
** Corea, Correa, Coría, 고려, 조선
*** Coría del Río, 원래부터의 마을이름? 꼬리아? 꼬레아?
'
![]() |
| 세비야 고문서 보관소 |
“아, 이제 궁금했던 조각이 거의 맞춰진 것 같습니다.” 훌리아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크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종국이 대답했다.
“꼬리아 델 리오에 살게 된 것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이야기가 함께 작용하고 있네요. 특히, 조선인이 세비야를 벗어나, 고향과 비슷한 이곳을 선택한 것이고요.
아울러, 하뽄이란 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과 관계는 있으나, 일본인의 피는 섞이진 않았군요. 오히려 프란시스까를 통해 조선의 피가 이 꼬리아 델 리오와 스페인에 퍼졌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메리카로 간 프란시스꼬를 통해, 그곳 어딘가에 조선인의 피가 흐를 수도 있고요. 거기서 다시 일본이나 조선, 다시 말해 한국에 돌아갔을 가능성도 있네요.”
종국이 자료들을 읽고 노트북에 입력하는 내용을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훌리아가 그동안 연구해온 학자답게 사실과 추측을 섞어서 나름 꼬레아와 하뽄을 정리해서 말했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