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귀형(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39.로뻬 데 베가(Lope de V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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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 로뻬 데 베가의 책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또 다른 자료를 읽던 훌라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로뻬 데 베가라면, 세르반테스와 같은 시대의 유명한 극작가 아닙니까? 문학사 수업에서 가장 많이 다룬 작가 중의 하나로 기억됩니다만. 세르반테스와 경쟁자였으며, 세르반테스는 그를 [돈키호테] 위작의 작가라고 추측했다는 교수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네, 맞습니다. 그는 당시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선교에 대한 여러 자료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글쓰기는 대단해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쓴 작가로, 아직도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그의 인기에 대해 아마 자존심이 대단했던 세르반테스가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를 ‘자연의 괴물’이라고 할 만큼, 그의 글쓰기 재주에 대해 비난과 감탄을 함께 했으니까요. 그럼, 이것도 함께 읽어볼까요?”
훌리아와 종국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내가 꼬리아 델 리오에 머물면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동양에서 와서 이곳을 통해 세비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외교관들도 있었고, 대부분은 선교사들이지만, 상업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으며, 그 중에는 단순한 여행가와 모험가도 있었다.
내가 이곳에 정착한 이후, 일본인들의 발길은 완전히 끊겼다. 간혹 아시아로부터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는 일부러 집으로 불러 극진히 대접했다. 반갑기도 하고, 일본과 조선의 상황을 듣고자 했다.
그러던 중, 올해 즉 1618년 로뻬 데 베가가 지은 [일본에서의 첫 번째 순교자들]이란 3막의 시극과, [신앙의 승리]라는 역사 서사시 작품이 출판되었다.
그는 각 교파 선교사들이 보내주는 자료와 마드리드로 직접 찾아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을 썼던 것이다.
그에게 매우 인상적인 것은, 신앙적으로 오래된 유럽에서 신교의 등장과 대결에서도 목숨까지 바치지는 않는데, 어찌하여 이제 새롭게 기독교를 접한 동양에서 순교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지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동양에서의 순교를 작품으로 만들면서, 서양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자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마드리드의 왕실 행사와 세르반테스의 장례식이었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일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었다. 특히 일본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나에게 물어본 기억이 난다.
그는 내가 일본을 떠난 이후의 정세까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고, 그 전쟁 중에 일본으로 끌려간 많은 조선인들이 세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 같다. 이야기 중에, 내가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밝혔던 기억이 난다. 나의 조선은 꼬레아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말도 했었다. 그는 내가 말하는 조선에 대한 관심도 표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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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뻬 데 베가(Lope de Vega, 1562-1635) |
로뻬 데 베가는 나의 이야기를 일일이 적는 아주 꼼꼼한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아름다운 앙헬리까]란 서사시는 까따이에서 온 앙헬리까의 아름다움과 그녀에게 빠진 오를란도의 사랑을 주제로 다뤘으며, [까따이에서의 앙헬리까]란 희곡도 썼다고 했다. 대단히 재주도 많고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로뻬 데 베가는 세르반테스가 그렇게 경계하고 시기했던 인물이다. 그는 왕실은 물론 예수회의 보호를 받으면서, 동시에 그의 작품은 사람들로부터도 크게 인기를 얻고 있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라는 사람이 받았다는 그런 명성을 스페인에서는 로뻬 데 베가가 받고 있었다.
이런 그가 일본을 소재로 작품을 쓴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일본에서 오는 선교사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히데요시가 1598년에 죽은 후, 6살의 어린 아들인 히데요리가 권력을 물려받아 오사카 성에 머물며 통치했다고 한다.
한편, 히데요시 이후 세력을 잡은 이에야스가 1614년 오사카 성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히데요리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1615년에 자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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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성 |
그러나 로뻬 데 베가는 히데요시, 즉 타이꼬 사마가 죽은 후, 권력을 잡은 이에야스, 즉 히소넨은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 타이꼬, 즉 히데요리를 15년 동안 탑 속에 가뒀는데, 이후 탑에서 나온 타이꼬의 복수로 히소넨이 자살한다는 내용과 도미니꼬회 소속으로 1617년 순교한 나바레떼 신부의 순교이야기를 섞어, 작품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역사는 히데요리가 죽었는데, 작품은 이에야스가 죽게 만들었으니,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아들이 복수를 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단히 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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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의 첫번째 순교자들](로뻬 데 베가) |
| PERSONAJES | |
| TAYCO SOMA. | |
| EMPERADOR. | |
| REY DE BOMURA. | |
| ALCAIDE. | |
| REY DE AMANQUI. | |
| REY DE SIGUÉN. | |
| UN INDIO. | |
| UN SOLDADO. | |
| MANGAZIL. | |
| TOMÁS, niño. | |
| QUILDORA. | |
| GUALE. | |
| NEREA. | |
| REY DE SINGO. | |
| UN FRAILE AGUSTINO. | |
| UN FRAILE DOMINICO. | |
| UN FRAILE FRANCISCANO. (작품 중 등장인물들) |
한편, 우리 일행이 일본을 출발한 다음 해인 1614년에 이에야스는 기독교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가 1616년 사망한 후 그 뒤를 이은 아들 히데타다는 그 강도를 더욱 높였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기독교를 완전 금지하고, 외국인 선교사를 추방하는 조치를 내렸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대부분이 기독교 세례를 받았으니, 이국에서 서러움을 갖고 있는 조선인들이 세력화할 것을 두려워한 것도 그런 정책의 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으며, 로뻬 데 베가의 글에는 미겔 꼬레아와 뻬드로 꼬레아, 즉 조선의 두 젊은 기독교 신자가 온갖 강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기독교도임을 내세우다, 화염에 불타 죽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인에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의 표출이라고 나는 로뻬 데 베가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내가 말했던 꼬레아를 기억하고 순교자들의 이름 뒤에 나라의 붙여줘, 조선인임을 밝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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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의 신앙의 승리](로뻬 데 베가, 1618) |
[신앙의 승리]라는 작품에서 그는 우리 일행과의 만남에 대해 언급해줬고, 내가 말한 일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었다. “옛날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 바다 사이로 보이는 많은 섬들 사이에 놓인 나라, 일본이 있다. 원시적인 나라다. 이 섬나라는 로마에 보내진 사절단들을 통해서나, 프란시스꼬회 신부들의 주선으로 신앙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1615년 스페인의 왕을 알현하기 위해 찾아온 사절단을 통해서, 그리고 확실하게는 선교와 봉사를 하면서 증인이 된 예수회 신부들의 편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다. 지구 상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며, 지리적으로나 풍습에 있어서도 참으로 우리와 거리가 멀다”라고 썼다.
세르반테스나 로뻬 데 베가 말고도, 내가 마드리드에 있으면서 만났던 시인들도 나를 통해 들은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시를 썼다고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일본이 아닌, 조선의 이야기였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1618년 12월 12일, 조선인 宋錫喜 Bartolomé Rodríguez Cor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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