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를 만난 조선인) / 42.복주머니(Reliquia)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그리고, 이것은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물건입니다.”
안또니오의 손에 뭔가가 들려있었다. 그것을 본 종국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복주머니였다. 분명 여러 색으로 꾸며진 복주머니는 작았고, 오랫동안 매만졌는지 손때가 깊이 배어있었다.
“이 물건은 집안의 여러 문건들과 함께 수백 년 동안 보관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가지 상황을 파악해보니, 이것은 조선의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아니 송석희 님이 남긴 물건 말입니다.” 상기된 얼굴의 안또니오는 송석희의 이름을 아주 또박또박 발음하고 있었다.
“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꼬레아라는 성은 없고, 하뽄이라는 성으로 내려오는 것에는 어떤 연유가 일까요?” 일기와 자료를 함께 읽은 종국이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훌리아에게 물었다.
“사실, 꼬레아라는 성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묻혀버린 것이죠. 즉, 스페인에는 전통적으로 꼬레아라는 성이 있습니다.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태리에도 그 성이 있는데, 아마도 스페인어로 꼬레아가 ‘가죽띠’, 또는 ‘혁대’라는 뜻이기 때문에, 스페인이나 이태리에서 꼬레아는 원래가 가죽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한 집안을 말하는 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서양에서의 성은 그 직업에서 따온 게 많은 것을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주로 일이라는 게, 가내에서 계승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성으로 전환된 것이겠죠. 따라서 여기서의 꼬레아는 ‘R’이 두 개로 된, Correa로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근 제가 책을 쓰면서 발견한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라는 분은 자신의 이름에 성을 달면서, 맨 뒤에 Corea를 넣고 싶었고, 그래서 넣었을 것입니다. 그의 사촌이라고 말하고 있는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이 일본임을 나타내주기 위해 국가 이름을 넣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스페인에는 Correa라는 성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성이기 때문에, 그게 더 편리했을 겁니다. 어차피 R이 두 개인지 아닌 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거고요. 그냥 고려이고, 조선인이면 되는 것이니까요.
사촌 간에 한 분은 꼬레아를 또 한 분은 하뽄을 성으로 달게 된 것이고, 하뽄에 비해, 꼬레아에는 R이 두 개가 되면서,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스페인의 꼬레아 성에 묻히면서, 고려, 또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이 흐려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 꼬리아 델 리오의 자료에서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의 사촌이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이라는 사실을 보면서 좀 멈칫했습니다만, 사촌 간에 성이 다를 수 있고, 하뽄은 스페인에서 낯설지만, 꼬레아는 전혀 낯설지 않으니, 그냥 넘어갔습니다. 꼬레아가 고려이고, 조선이며, 지금의 한국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편, 프란시스까가 결혼하면서도 R이 두 개인 꼬레아로 퍼졌을 것이니, 아마 꼬레아란 성씨를 가진 현재의 스페인 사람들 중엔, 스페인 땅에 처음으로 씨를 뿌린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스페인이나 중남미에 R이 하나로 된 꼬레아란 성도 존재합니다만 말입니다. 모르죠, 그것은 해외로 나간 프란시스꼬가 퍼뜨린 자손일 수도 있고요.
하뽄이라는 저희 집안에서 이렇게 꼬레아 할아버지 집안의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것을 봐서는, 그의 딸 프란시스까 자손이 이후 하뽄의 성을 갖고 있는 사람과 결혼했거나, 아니면 프란시스까가 다른 곳으로 결혼을 하면서,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 즉 저희 하뽄의 선조께서 이 자료를 집안의 귀중한 자료로 보관해오는 것으로도 추측됩니다.
송석희, 즉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의 유언장을 보면, 하뽄을 증인으로 세웠고, 그를 사촌이자 가족으로 삼았으니, 꼬리아 델 리오에 남은 그에게 이런 자료를 주고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훌리아의 설명이 매우 논리적이어서 종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이곳에 오는 일본인들과 많은 친분도 있었고, 제가 직접 일본을 방문한 적은 있습니다만, 꼬레아라는 성을 가진 이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한 적도, 고민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안또니오가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동생 훌리아가 연구하면서 최근에 하뽄이라는 성의 첫 번째 인물이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이라고 확인하고, 그분보다 더 나이가 많은, 말하자면 그분의 후견인이자 사촌이 같은 이름에 성은 꼬레아라는 것은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훌리아가 말한대로 꼬레아라는 성이 이미 스페인에 존재하고 있기에 어색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서로 가족이라고 하는데, 한 분은 성이 꼬레아이고, 한 분은 하뽄이라는 것은 호기심을 일으킬 만 한데, 저희들은 거기까지 생각은 못 했습니다.
지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 물건과 자료의 주인공은 하뽄이 아니라, 꼬레아인 것이 분명합니다. 혹시 마을 이름조차도 그 분이 지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안또니오는 복주머니를 종국의 손에 직접 쥐어주면서 말을 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것은 고려, 아니 조선, 아니 한국으로 가야할 물건인 것 같습니다.
이 물건이 한국으로 감으로써 그분이 꿈꾸던 소망을 풀어주고, 그분의 영혼을 더욱 기쁘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도 400년 전 이 먼 스페인 땅에 조선인이 살았고, 고향을 애타게 그리다, 여기에 새로이 고향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하자면, 꼬리아 델 리오는 또 다른 꼬레아인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분명 그분의 영혼은 이 복주머니와 함께 한국에 갈 것입니다.”
“일기의 내용이 그렇고, 이 색동 복주머니가 이 모든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들은 쓰네나가를 기리는 행사를 해왔습니다. 일본에서는 매년 이곳에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저희들은 저희들의 선조이기도 한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조선인 송석희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쓰네나가는 여기를 거쳐 간 사람이지만, 꼬레아 할아버지는 여기 이 마을을 만들고, 여기서 살았으며, 자손을 퍼뜨렸고, 여기에 묻히셨습니다.
저희들은 스페인 사람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의 후손이면서, 동시에 조선인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 꼬리아 델 리오는 바로 조선의 영혼이 깊이 깃든 곳입니다.
세상의 일이라는 게, 결국은 바른 길로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분들의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꼬리아 델 리오에 모이는 우리들은 한국과 일본을 모두 같은 형제로 삼겠습니다.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이 땅에 왔을 때, 그리고 여기에 자리잡았을 때, 그들은 하나로 뭉쳤습니다. 그래야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모두 한 형제임을 깊이 체험했던 것입니다.”
열심히 말하는 안또니오를, 종국은 어쩌면 그의 얼굴에 조선인의 모습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