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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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돈키호테] 6. 12, 또는 13

 12, 또는 13


기독교에 바탕을 둔 세계에서 '12'라는 숫자의 이면에는 '13'이라는 숫자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예수의 제자 12명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그 명단에서 예수를 배반하여 제외된 '가룟유다'를 대신하여 선발된 '맛디아'가 있었으니, 어찌보면 예수의 제자는 12이기도 하고, 13이기도 하다. 즉 제자의 인연을 맺은 사람은 13명이지만, 역시 제자의 정원은 12명이었던 것인데, 이 숫자는 '12지파', '12개월', '구원'의 의미 등 수 많은 상징이라는 점은 익히 논의되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이 숫자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즉 [돈키호테]에서도 숫자 '3'과 '12'는 아주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다른 작품 [모범소설](Novelas Ejemplares)에서도 형식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12와 13이 섞여있다.


[모범소설]의 단편작품 리스트

그가 주장하듯, 소설의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단편 작품 12개를 엮어, 크게보면 하나의 [모범소설]을 만들어 냈는데, 12개는 각각이면서, 동시에 하나임을 의도적으로 썼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론, 12개 이면서 동시에 13개(La Tia Fingida를 포함할 경우)의 모습을 갖고 있음으로 확인하게 된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이런 의도를 살바도르 달리는 알고 있었을까?


 '돈키호테' 테마 1957년 판화 작품은 12개이면서, 동시에 13개를 보이고 있으니, 그 문제의 작품이 [독자로서의 돈키호테](Don Quijote, el Lector)이다. 12개의 시리즈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가 판화로 만들 때 동시에 만든 작품이니, 결국 제13의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마치, '가룟유다'의 상징처럼 말이다.


                                    (Don Quijote en Lecteur, Don Quijote, el Lector)

    (제13의 작품, '책읽는 돈키호테')


'기사이야기'(Libro de Caballería)에 빠진 돈키호테의 모습에 대해서 작품에서는, 그가 어찌 이야기에 빠졌던 지, 농사일도 등한시하면서, 땅을 팔아서 책을 구입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이런 작품들 속의 표현이나 이야기는 돈키호테의 이성을 빼앗고, 결국 판단력을 잃게 하였다고 기술하는데, 이런 내용을 세르반테스는 '이성'(Razón)과 '비이성'(Sinrazón)이라는 단어를 이용한 멋들어지게  표현한다. 이는 마치 소설을 '시적'(Lo Poético) 형태로 표현하는 것으로, 사실 당시 '극'이나 '소설' 등, 대부분의 글들이 아직 '시'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그래서 작가들은 글을 쓰면서 '운문'(Verso)의 형식들에 대해 매우 능숙한 면이 있음도 드러나고 있다.


                                (Reverie de Don Quijote, En los Suenos de Don Quijote)

      (독서로 발현된, '돈키호테의 꿈 속 세상')


                                       *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사이야기에 몰두한 돈키호테를 다루는 장면

그는 책을 읽으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되고, 잠재되어 있던 열정의 불씨가 살아나게 된다. 작품에서 밝힌 바, 이 때 돈키호테의 나이는 실제 세르반테스와 다르지 않았으니, 당시로는 많은 나이에 이렇게 상상과 환상을 갖게 되고, 얼어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 자체가, 돈키호테에게 생명력을 주는 것이며, 수 많은 고생과 상처로 닫혔던 마음을 열어주는 에너지가 되었으니, 책에 깊이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즉, 그에게 '책'은 '생명'이었고, 존재하기 위해 더욱 더 읽어야 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생명의 기운은 더욱 채워지고, 결국 집을 나와 모험을 할 수 있도록, 즉 실행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렇게 살기위해 책을 읽고, 그 기운으로 세상을 위해 다시 나아가는 돈키호테를 누가 어떤 명분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물론, 모두 그를 비웃지만 말이다!


책 속에서 그는 상상하고, 상상은 꿈(Sueño)이 되며, 꿈은 그의 머리를 깨우고, 그의 심장을 뛰게 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일어나 집 밖으로 나아가고, 걷고 달리고 뛰며 모험을 행한다!


돈키호테에게 '책읽기'(Lectura)는 그래서 중요하다! 보통의 '독자'(Lector)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독자가 또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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