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돈키호테] 7. 풍차? 아니, 거인! 아니, 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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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아니 '거인', 아니 '풍차'와의 대결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이라고 덤비는 장면에 먼저 관심이 가는 바는, 그의 '착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거대한 존재, 즉 '거인'이라고 알고도 허약한 자신의 몸으로 덤비는 것 자체는, 그것이 풍차든, 거인이든 실체에 상관없이 무모한, 그러나 대담한 기사로서의 '도전정신'이 발휘된 것은 사실이다.
[돈키호테]의 전체를 두고, 가장 흥미롭게 읽는 부분이 이 장면인데, '스페인'과 '라 만차', 그리고 돈키호테의 기발한 상상력과 환상, 그리고 기괴한 행동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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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차들의 공격] (살바도르 다리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 마법으로 풍차가 된 거인이 돈키호테를 공격하는 것을 봤다.) |
1권의 8장에서 길을 걷던 돈키호테는 30여개의 풍차를 보고, 아주 근사한 모험이 곧바로 다가온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거인들과의 결투를 통해, 기필코 거인들의 생명을 끊어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공언한다. 당연히, 그의 시종 산초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지만,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그렇게 겁이나면 비켜서서 기도나 올리라고 나무라고, 즉시 로씨난떼에 박차를 가하며 달려든다. 그림을 보면, 거대한 풍차에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돈키호테를 보면서 지르는 산초의 안타까운 탄성이 들리는 듯하다.
기사도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생기를 얻은 돈키호테의 입장에서는 '기사가 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스스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을 것이니, 마치 우리가 말하는 '신들림', 또는 '신내림'을 받은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즉, 그의 행위는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겠으나, 그에게 떠오른 환상과 상상은, 그에게는 현실이고 그 누구의 말도 수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머리 속에 이미 떠오른 '거인'의 이미지와 거인의 손아귀에서 구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공주'가 있다면, 기사로서 달려가야 한다. 산초가 말하는 바, 그것이 '거인'이 아니고, '풍차'라고 하는 것도, 거꾸로 생각하면, '거인이 잠시 풍차로 변신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더 무기를 들고 결투를 해, 무찔러야 할 '요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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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개의 판화 외에, '돈키호테와 풍차'라는 제목의 또 다른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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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abeza que Estallo de Don Quijote)
(Don Quijote a la Tete qui Eclat, 터져나가는 머리통) (살바도르 달리는 잉크를 암벽에 던져 생긴 얼룩의 모양을 갖고 돈키호테 속 장면을 그렸다.) |
진정한 사냥꾼은, 어제도, 오늘도 새를 못 잡아도, 내일은 포기가 아니라, 다시 새를 잡기 위해 무기를 들고 나가는 것처럼, 기사에게 패배는 자신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을 안겨주면서, 동시에 더 큰 '동기부여'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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