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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돈키호테](소장작품 기획전) 12. 원자폭탄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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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상상인가, 달리의 상상인가? 폭발과 함께 만들어진 엄청난 힘이 돈키호테, 아니 살바도르 달리에게 닥쳐온다. '괴물', '악마', '거인', 또는 모든 것을 삼킬 듯한 '쓰나미' 같은 위협!
20세기의 이 화가는 이 강력한 에너지에 대항하여 자신의 창과 방패를 들고 홀로 나서는데, 과거 돈키호테에게 다가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강력한, 그런 것으로 그려진다. 바로, '원자탄'(Bomba Atomica)!
그 힘이 절대적이어서 어떤 것도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위협에, 살바도르 달리는 마치 그것이 '환상'(Fantasia)일 뿐이라고, '헛개비'라고 말하고 싶은 듯, 세기적 도전 앞에 온몸으로 대들고 있다. 과히, 돈키호테를 능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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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Edad Atómica, L'ere Atomique, 원자폭탄의 시대) |
돌판에다 던져 잉크가 만들어낸 자연스런 형체에서 새의 머리와 몸통을 확인했는지, 화가는 새의 다리를 넣어 완전한 새를 만든다. 전설 속 '새'(Quimera)의 부리에 돈키호테의 방패가 닿고 있으니, 이 역시 돈키호테에게 또 다른 도전이다. 어쩌면 새가 아니라, 마법사가 '새'로 변신한 '요괴'인 것이고, 기사는 이런 요사스런 존재를 물리쳐야 한다. 잘 만 된다면, 무찌르고 달래서 그 위에 타고 하늘을 날고 싶은 게 돈키호테의 마음일 것이다.
붉은 잉크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분명 '전투'면서 '상처'다. 그리고 그 위에는 작품 제작 시에 소라를 통해 만들어낸 자국은 오래된 신화 속 거대한 거북과도 같은 형체를 갖고 있다. 돈키호테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의 대결'이 '인생', '인간의 삶'이라고 본다면,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가 신봉하고 있는 여인, 둘씨네아를 구하기 위해 싸워야할 존재다.
- 스페인 마드리드대학교 문학박사
(Doctor en Literatura Hispánica de la 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 Spain)
- 주한멕시코명예영사 (Cónsul Honorario de México)
- 스페인문화원 원장
- 달리상상공간(DALI Imagination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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