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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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Q] '0'과 '1' 사이 ('0'의 의미)

“나리께서는 한번도 둘씨네아 아씨를 본 적이 없던데요. 이 귀부인이라고 하는 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이며, 나리께서 스스로의 지혜로 잉태라고 태어나게 한 환상의 여인이더군요. 나리가 바라는대로 온갖 매력과 완벽성을 겸비하도록 그려낸 여인상 말이에요.”(II, 32)

스페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숫자판에 손을 대려는 순간 ‘0’(건물에 따라서는 ‘B’를 쓴다. 이것은 ’Planta baja’, 즉 ‘아래’라는 ‘Baja’에서 온 것으로, ‘밑층’을 의미하며, 1층의 아래이기도 하다. 한편, 같은 ‘B’로 쓰지만 통상 ‘Basement floor’에서 온 영어의 ‘B1’, ‘B2’ 등과는 다르다)를 발견하게 된다. 12층에 타고 1층으로 가기 위해서 ‘1’이란 숫자를 눌렀다면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못한다. 2층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0’(또는 ‘B’)을 눌러야 했다.



그렇다, 땅에서 다음 층의 바닥, 즉 1층이 시작되는 데까지는 모두 0층이다. 0층? 그런 게 있는가?


0은 음의 정수도 아니고, 양의 정수도 아니지만, +와 -의 출발점이기에, 1이나 -1에만 관계될 뿐 아니라, 모든 수의 근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본 숫자를 ‘빈 것’, ‘없는 것’,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온 것 같기도 하다. 1원, 1달러에 집착하고 있었으니, 계산의 첫 숫자는 언제나 1로 삼게 되고, 0은 아예 안중에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사회, 문화, 심리적인 접근이 있을 수 있겠으나, 어느새 우리는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즉, 물질과 실체 만을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다시 [돈키호테]로 돌아가서, 돈키호테의 둘씨네아에 대한 사랑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우리는 결혼을 두 사람 간 사랑의 중요한 의식으로 본다. 그러나, 결혼식이라는 구체적인 행사에 오기까지, 입을 맞추고, 손을 잡고, 헤어졌다, 만났다 등등의 사전 과정들이 있음을 안다. 거기서 좀 더 가면, 두 사람의 사랑이란 처음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라는 사실에 접근한다.

물론, 상대를 마음에 품은 시점은 각각 다를 수 있다. 한 사람이 몇 년 전부터 마음에 품은 경우도 있고, 서로 동시에 마음이 움직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마음의 움직임, 또는 설레는 감정까지 사랑의 뿌리를 찾아가면, 결혼이라는 구체적인 행위의 출발점이자 뿌리가 ‘0’에까지 뻗어 있음을 발견한다. 0은 ‘비어있다’라거나 ‘허상’이라는 말로 쓸 수 없다.

현재 우리가 쓰는 연대표는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쓰고 있다. 서기(AD) 1년은 예수가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즉 태어난 즉시 1년이 적용되며, 그 이전의 해는 기원전(BC) 1년이 된다. 연대를 이렇게 쓰다 보니, 예수의 탄생이 있는 연도 전체를 서기 1년으로 보고, 바로 전 해를 기원 1년으로 본다. 결국 '0'이라는 개념이 빠진다. 이렇다 보니 과학적 계산이 필요할 때는 기원전 1년은 0년으로 해야하고, 결국 기원전 2년이 기원전 1년으로 계산할 수 밖에 없다. 0년이 필요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라는 점이다. 임신기간을 산입해도 서기 1년의 앞 약 3개월 만 문제지, 전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결국, 서기 1년에는 예수가 잉태된 기간, 즉 0이 들어가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한국에서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1살로 치는데, 1이 되기까지의 기간, 즉 임신의 기간인, 0이 계산되어 있다. 0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보낸 시간을 말한다면, 그 기간이야 말로 모든 인생의 출발점이자 기본이 되겠다.)


위에서 돈키호테의 둘씨네아에 대한 사랑을 말했고, 거기에는 그녀를 마음에 둔 순간부터 계산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따라서, 이 기본이 되는 기간은 더욱 확장될 수 있다.

한편, 사랑을 형태, 즉 눈으로 보고 만지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겠다고 한다면, 돈키호테의 둘씨네아에 대한 사랑은 없을 수 있다. 사랑이 없을 뿐 아니라, 그가 사랑한다는 둘씨네아조차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돈키호테] 1권을 다 읽었다는 공작부인은 작품의 내막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말하자면, 돈키호테가 둘씨네아를 보거나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책을 통해 알고 있다. 그녀에게 사랑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잡을 수 밖에 없다. 둘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공작부인이 말했다. “(…) 그 책 내용으로 추정해보면, 그리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나리께서는 한번도 둘씨네아 아씨를 본 적이 없던데요. 이 귀부인이라고 하는 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이며, 나리께서 스스로의 지혜로 잉태라고 태어나게 한 환상의 여인이더군요. (…).”

돈키호테가 말했다. “그건 많이 논의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세상에 둘씨네아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환상의 여인인지 아닌지는 하느님이 아시지요. 이에 대한 연구는 끝까지 태어나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갖춰야 할 요소를 모두 구비한 그런 여인 말입니다. 즉, 티없이 아름다워야 하고, 오만하지 않으면서 신중하고, 정숙하면서 다정하고, 예의 바르며 감사할 줄 알며, 교양있어 예절 바르고, 끝으로 혈종이 높은 그런 여자 말입니다. 좋은 혈통이어야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고 친한 신분으로 태어난 아름다운 여자보다 더 완성도 높은 광휘를 발휘하거든요.”(II, 32)

공작부인에게 0의 개념이 없지만, 돈키호테에게는 0이 살아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시작’이라는 한자의 ‘시’(始)는 ‘잉태’나 ‘태반’ 등 여인이 아이를 갖는 것과 관련돼있다. 여기에 ‘시초’나 ‘태초’의 ‘초’(初)는 옷을 칼, 즉 가위로 자르는 형태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시작과 처음에 담겨있는 뜻은 뭔가가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되고 잉태되어 있는 것이니, 앞에서 말한 0과 통한다. ‘0순위’라는 말은, 모든 것 중에서 으뜸이 된다는 의미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 역시, 뭔가 행위로 나타나기 전에 이미 그것은 진행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마음 속으로, 생각으로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돈키호테]에서 다른 사람들이 돈키호테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의 출발점, 즉 0을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키호테가 자신의 마음으로 느꼈던 사랑을 구체적인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세상에 둘씨네아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환상의 여인인지 아닌지는 하느님이 아시지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듯 하지만,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0’, 단지 사랑 만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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