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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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Q]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 번에는 꼭 끝까지 읽어봐야지!)



내가 작가로 알려진 [돈키호테]에 대해서는 일반 독자들보다도 비평가나 작가들이 더 많은 평가를 내리는 것 같군. “매년 시작하는 시점에 한 번씩 일독하고 글쓰기에 들어간다”는 소설가도 있고, 이 작품으로 “근대가 열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돈키호테] 이후의 작품들은 나의 ‘변주’에 불과하다고도 하니, 나로서는 몸들 바를 모르겠군. 물론, 이런 평가들을 통해 내가 힘을 받지만, 사실 일반 사람들 중에는 작품 [돈키호테]에 대해 전혀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사실도 너무 잘 알지. 어떤 때는 비평가의 연구 대상이고 어떤 때는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그런 책에 불과한 것일까?

[돈키호테]를 접하는 일반 독자들은 왜 이 작품이 수 많은 대학과 기관의 추천도서 목록의 상위에 있을까하고 의문하는 경우가 많다.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달려든 돈키호테의 모습 외의, 다른 장면들은 마땅히 기억도 안난다. 괴상하고 미친 기사라고 하니, 그렇게 알고 있을 뿐,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일단 듣던 바, 기대했던 만큼 재미있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 거의 반복되는 듯한 여정에 긴박함도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두꺼운 책에 질려, 앞의 몇 장을 억지로 읽은 후, 다음에 읽겠다는 위안과 함께 그냥 덮어둔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일상의 대화에서, 그리고 신문과 방송에서 ‘돈키호테’라는 언급을 보고, 듣게 되며, 다시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읽기는 권하는 마음으로 몇몇 작가와 비평가들의 말을 인용해보기로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을 쓴 체코 출신의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 )는 [돈키호테]를 신봉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의 글쓰기는 철저하게 이 작품의 호흡을 이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다. [돈키호테]의 기법을 가져왔고, 세르반테스가 의도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형이상학적 세계관까지도 가져온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소설에서 뭔가 답이 나오기를 바라지만, 소설은 뭔가 확실한 것을 말해주지 않으며, 단지 질문 만을 던질 뿐이다. 돈키호테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의 눈에는 모든 게 신비였다. 이런 경이로운 호기심이 바로 유럽 소설의 첫번째 유산이 되었고, 그 뒤 ‘소설의 역사’를 쓰게 만들었다. 소설가는 독자에게 세상은 하나의 ‘의문투성이’(Question)임을 가르칠 뿐이다.”

[돈키호테]가 갖고 있는 애매모호성과 뭔가에 대해 규정하거나 정의하지 않는 특징을 오히려 소설의 특징으로 본 것이다. 답을 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한다는 것, 그것은 세상이 어떤 특정한 하나의 정의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과 오직 질문을 통해 스스로 깨닫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의 모범을 [돈키호테]에서 발견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세르반테스를 근대의 창시자’(Cervantes is the founder of the Modern Era)로 추앙하였다.

한편, 셰익스피어(1564-1616, 세르반테스는 1547-1616) 연구로 명성이 높았던 미국의 해롤드 블룸이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서구의 중심이 되는 두 작가다. 적어도 단테 이후에는 말이다. 톨스토이도, 괴테나, 디킨스, 프로스트, 조이스도 이 두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Cervantes y Shakespeare son autores centrales en Occidente, por lo menos desde Dante, y ningún escritor los ha alcanzado, ni Tolstoi, ni tampoco Goethe, Dickens, Proust o Joyce)고 말했는데, 그의 이 말에서 오히려 셰익스피어보다 세르반테스가 더 돋보인다.

사실 그렇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세르반테스, 즉 [돈키호테]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과 이 책의 일부 내용을 따와 희곡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돈키호테] 1권 23장에 나오는 까르데니오의 사랑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연극으로 올려진 사실)에 놀라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내가 보기에 세르반테스는 지난 4백년간 생산된 문학에서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경쟁자이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셰익스피어가 [돈키호테]를 읽었다는 증거가 있지만, 세르반테스가 셰익스피어를 읽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세르반테스의 작품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1612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세르반테스에 대한 그의 높은 평가는 셰익스피어와 비교했기에 더욱 더 흥미로운데, 그가 스페인에서 나온 작품에서 발견한 사실은 돈키호테와 산초와의 관계였다. 그는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건이 [돈키호테]에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산초와 돈키호테 사이에 오고가는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들의 본성은 결코 융합되지 않지만, 서로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라고 했으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두 명의 인물이 똑같은 정도의 상상력의 최고 자리라는 명예를 지니는 법이 없다”고 했다. 아울러,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처럼 모든 독자를 즐겁게 하지만, 또한 셰익스피어처럼, 독자의 능력에 비례하여 더욱 적극적인 독자를 만들어 낸다”라고 했으니, 셰익스피어 전문가가 내린 세르반테스의 판정승이다.

한편,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돈키호테의 광기에 찬 열정을 부러워했다. 삶에 열정을 지피기 위해, 즉 스스로를 뭔가에 불태우기 위해, 일부러 돈키호테를 염두에 뒀다. 그는 말한다. “나는 뭔가를 열정적으로 하기 위해서 돈키호테처럼 하려고 노력했다.”(Yo, como Don Quijote, me invento pasiones para ejercitarme.)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는 그 이후의 스페인 사람들에게 엄청난 자랑이자, 큰 부담으로도 작용했다. 스페인이 잘 나갔던 ‘황금세기’(Siglo de oro)의 문학과 그 중심에 있는 [돈키호테]는 자국을 넘어 세계를 품었던 옛 스페인을 회상케 했으며, 동시에 쇠락한 현재에 대한 반성의 거울이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스페인이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시기(특히 1898년에 스페인은 필리핀, 쿠바, 푸에르토리코 등을 잃었다)에 호세 오르떼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 1883-1955)는 “돈키호테는 우리 자신의 현재에 대한 수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존재”(La gran figura de Don Quijote se encarna como un signo de interrogación, y es como un guardián del espíritu español, del equívoco de la cultura española)라고 했다. 이런 생각은 그 시대 많은 지식인들에게 퍼져, ‘98세대’(Generación del 98)의 자각운동이 되었고, 그 중심 뿌리 중 하나가 [돈키호테]였다.


아르헨티나의 세계적인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에게 [돈키호테] 읽기는 떨칠 수 없는 습관이었으니, “나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라디오를 듣지도 않으며, 마약을 하지도 않는다. 먹는 것도 적게 먹는다. 단지 나의 유일한 악행은 돈키호테와 신곡을 읽는 것이다”(Yo no bebo, no fumo, no escucho la radio, no me drogo, como poco. Yo diría que mis únicos vicios son El Quijote, La Divina Comedia (…)) 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쓴 주옥같은 작품들의 기저에는 [돈키호테]가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멕시코의 까를로스 푸엔떼스(Carlos Fuentes, 1928-2012)는 새해가 되면 늘 [돈키호테]를 읽는다고 했다. “오늘날 돈키호테나 햄릿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이 없었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들이 일으킨 상상은 오늘날 우리의 현재를 구성하고 있다. 상상이라는 것은 결국 지워지지 않는 현실의 일부로 남게 된다. 현실은 작가가 상상한 것을 통해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가 이 작품을 읽는 것은 바로 이 상상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그에게 [돈키호테]는 마르지않는 상상의 우물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는 세계명작 목록에 결코 빠지지 않는 [돈키호테]에 대한 수 많은 언급 중,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이렇게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면, 그동안 앞부분 만 읽다가 ‘나중에……’라고 하면서 책꽂이에 잠재웠던 [돈키호테]를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이 날까?

이번에는 ‘진짜로’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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