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아빌라(Avila), 수도원과 수녀원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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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기도 속에 이루는 신과의 합일!
해발 1,100미터로, 스페인 도시 중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아빌라’(Avila)는 거주지라기보다는 성이나 수도원으로 잘 어울리는 지역이며, 성자들의 도시이다.
(아빌라,Ávila)
높게 위치한 까닭에 전쟁에서 좋은 교두보가 되었으며, 88개의 탑이 성을 이루니 완전 무장한 성곽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성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이 길을 따라간다면 주요 시설에 닿게 되므로 도시 중앙을 지나지 않아도 어디든 접근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Avila)
이렇게 아빌라는 자연적인 요인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적인 성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호젓한 수도원이 설 만한 알맞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빌라 성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으므로,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Santa Teresa de Jesus)
아빌라 하면 산따 떼레사 데 헤수스(Santa Teresa de Jesus, 1515~1585, 우리나라에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로 알려져 있음)란 수녀가 생각난다. 그녀는 종교적으로 믿음이 깊은 아빌라 출신답게 16세기 스페인 종교인들의 사상을 대변하는 금욕주의적인 신앙을 실천하였고, 운문의 산 후안 데 라 끄루스(Juan de la Cruz, 1541~1591, ‘십자가의 성 요한’)와 더불어 뛰어난 산문 작품을 남겼다.
16세기에는 르네상스의 기운으로 고전적 틀의 시를 쓰는 경향이 자리 잡은 가운데, 한편으로는 보다 더 종교적으로 보수화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었다.
전자가 인간 중심의 인문주의(Humanismo) 경향이었고 그 연결선상에서 일어난 종교개혁(Reforma)으로 종교계에 강한 파장을 일으켰다면, 후자의 경향은 더 어두운 곳,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신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시도했다.
이는 당시 스페인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즉 세속적으로도 발전했지만, 종교적으로도 가장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 시대였던 것이다. 금욕과 절제주의, 그리고 신비주의로 표현되는 이 시기의 창작은 거의 산문(Prosa)으로 이루어진다. 신과의 합일(Union)을 시도하는 중에, 기도문이 문학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본다.
보수적이고 혹독하기로 유명한 까르멜리따(Carmelita, 가르멜) 수도회에 속해 있던 산따 떼레사 데 헤수스 수녀는 자신이 속한 교파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면서 열일곱 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세속에서 벗어나 명상과 절제를 통해 신과의 합일을 시도했는데, 거기에는 기도가 동반되었다. 기도는 시보다는 산문에 더 가까운 것이며, 그녀가 펴낸 작품은 신비체험을 정리한 것이다.
(San Juan de la Cruz)
자서전을 남겼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내성』(內城)과 『창립서』 등이 있다. 그녀는 운문을 쓰기도 했으나 대체적인 작품의 특징은 산문적이며 구어체 까스떼야노(Castellano coloquial)를 사용했다. 문체는 잘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일반인들이 쓰는 시골말이나 세속적인 표현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 오히려 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산따 떼레사가 산문에서 뛰어난 감각을 보였다면, 산 후안 데 라 끄루스는 운문(Verso)에서 그보다 더 심오한 문학성을 보이고 있다. 그 역시 아빌라 근교 출신이며 가르멜회 수도사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산따 떼레사를 알고 있었고, 그녀가 주도하는 종교개혁에도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산 후안의 작품은 산따 떼레사의 작품보다 더 기교적이며 바로크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패러디와 상징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밤’이 가지는 상징은 신과의 신비적 합일을 의미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영혼의 어두운 밤』과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 등이 꼽힌다.
한편 세상이 한창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문제로 시끄러울 때, 이를 말로 표현하지 않고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직접 신과 닿으려는 시도를 최고의 임무로 삼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신비주의자들이다. 어찌 보면 세상을 피하고 자신만의 완성을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불교의 스님들처럼 이들 역시 가장 바른길은 나 자신의 변화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자신의 변화는 어두운 골방에서 기도를 통해 신과의 영혼의 일체감을 맛보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일반 영혼과 다른 초월적 영혼이 달성되는 순간을 신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합일을 위해 노력한다는 자세는 교회의 개혁과 반개혁에서 멀어지려는 시도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둘 모두를 부인하는 또 하나의 개혁 운동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신과의 합일에 들어가기까지는 다음의 세 단계를 밟게 된다. 첫째가 ‘정화의 단계’(Via purgativa)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인연에서 떨어져 나와 단지 신의 출현을 바라는 마음으로 속죄하고 고행하는 자세이다. 둘째는 ‘깨침의 단계’(Via iluminativa)이다. 깨침은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고 바치면서 이루어지며, 속세의 깨침이나 지식과는 다른 특별한 인식 또는 깨달음이다. 셋째는 ‘합일의 단계’(Via unitiva)인데, 우리말로 하면 ‘무아지경’에 닿는 순간이다. 이 황홀한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며 인간적인 감각을 느낄 수 없다.
(Pablo el ermitano, Jose de Ribera)
금욕주의(Ascetismo)는 신비주의(Misticismo)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신비주의의 모든 단계를 지나 신과의 합일에 들어가기까지는 각자 자신을 버리고 절제하는 것이 제1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비주의의 첫 단계는 바로 고행을 통한 자기 정화이다. 신과의 합일을 시도하는 사람 모두가 그것을 성취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욕주의자가 모두 신비주의적인 경험을 하기는 어렵다. 금욕주의는 다만 절제를 통해 종교적, 도덕적 완성, 또는 최고 상태에 이른다는 목적을 두고 있다.
금욕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프라이 루이스 데 레온(Fray Luis de Leon)이 있다. 그는 『죄인들을 위한 지침서』와 『신앙의 상징에로의 인도』라는 책을 써서 금욕과 자기완성의 도를 설명하고 있다.
(Fray Luis de Leon, Salamanca)
기독교는 국교화가 되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로마 시대에 전파되어 598년 비시고도(Visigodo)의 왕 레까레도 때에 와서 국교로 정해졌으니, 그동안 많은 순교자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열세 살에 순교한 산따 아우렐리아(Santa Aurelia)가 가장 유명하다. 비시고도의 통치 기간에는 기독교에서 출발한 사교인 아리우스파에게 견제당했으며, 나중에 국교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는 ‘산 이시도로 데 세비야’(San Isidoro de Sevilla)의 역할이 컸다.
산 이시도로는 교회와 정치를 정리하여 이후 스페인 종교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의 사상과 학문은 로마식의 체계와 아랍식의 지식이 혼합된 형태라고 평가된다. 한편 기독교는 점차 스페인의 근간이 되어 갔는데, 이슬람 세력이 들어왔을 때 보여 준 스페인인들의 800년간에 걸친 저항 운동도 바로 이러한 정신적인 면에 기반을 두고 일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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