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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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중세 스페인문학의 산실, 부르고스(Burgos)

 수도원에서 문학의 싹이 자라고, 그것은 마을의 광장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드디어 중세를 벗어나 근대문학의 뿌리가 형성된다! 부르고스(Burgos)에서 곤살로 데 베르세오를 만난다!



‘부르고스’(Burgos)는 무언가 성스러운 분위기를 갖고 있는 도시이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나 이곳은 번잡함보다는 차분함이 압도적이다. 문학사를 배우면서 부르고스가 많은 성자와 성직자들을 길러 냈고 수도원이 많다는 소리를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연과 건물의 아늑함, 그리고 여유 있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에는 옛 성직자들의 후예다운 풍모가 흐른다. 


                                                         (Gonzalo de Berceo)


부르고스 출신 인물로는 곤살로 데 베르세오(Gonzalo de Berceo, 1197?~1264)가 있는데, 그는 스페인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이름이 언급된 작가이기도 하다. 이전의 '후글라르'(Juglar)는 사회의 하급인들로서 이야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한 떠돌이 이야기꾼들이었지만, 수도원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글을 씀으로써 당시 문학의 자취를 남긴 '끌레리고'(Clerigo)는 학식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글자도 익혔던 이들에 의해, 구전된 이야기가 정형화된 문자로써 정식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마련된다.


                                                                    (Juglares y Trovadores de Edad Media)


후글라르와 끌레리고들이 이룩한 업적은 우리 문학의 17~18세기 강창사, 강담사, 강독사들이 해 온 역할과 유사하다. 


                                                                    (Clerigo)


사람들을 모아 놓고 노래와 만담을 늘어놓는 이들의 모습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도 없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전쟁 등에서 이야기를 채집하였으므로 서사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고, 문자가 자리 잡으면서 정리와 창작으로 이어졌다. 


스페인의 초기 소설이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우리 문학의 초기 소설이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이후 이런 식의 발전 경로를 밟아 성립된 것과 비교된다. 스페인의 후글라르들은 12~13세기, 그리고 끌레리고들은 그다음 시대를 이어 활동하게 된다. 이들은 마을의 중앙광장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기도 하고, 귀족의 집, 특히 규방에서 여인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와 노래로 심금을 울렸을 것이다.


                                          (Monasterio de Santo Domingo de Silos)


곤살로 데 베르세오는 12세기 말엽에 라 리오하(La Rioja)에서 출생하여 13세기 중엽까지 살았으며, 부르고스에 있는 산또 도밍고 데 실로스(Santo Domingo de Silos)라는 수도원에서 생활했다. 이 수도원은 중세 스페인의 가장 뛰어난 종교 활동의 본산지였던 것으로 평가되는데, 중세에 금지되었던 교회 연극도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곤살로가 지은 작품으로는 산또 도밍고 데 실로스, 산 미얀 데 라 꼬고야, 그리고 산따 오리아 성자의 삶을 그린 작품들과 『수난 날 성모의 고통』 등이 있으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는 『우리 성모님의 기적』(Milagros de Nuestra Senora)이 꼽힌다. 종교적인 교훈을 담은 이 작품은 많은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는 데서 의미가 깊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끝난다.




결국 이 선량한 청년은

수도원에 찾아가

칩거한 채, 열심히 기도를 올렸을 것이며,

그럼으로 주께서는 그 가련한 영혼에 상을 내렸을 것으로 믿는다.


이 젊은이가 이룬 기적적인 일로 보건대,

성모 마리아께서는 몹시도 마음이 여리시고 사랑하사,

청년의 기도를 잊지 않으셨으니,

성모께서는 무소불위하셔서 모든 일을 이루심이 확실하도다.



이 당시의 문학은 문학이라고 평가되기보다는 교회의 설교집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작품들은 교회 내의 것에서 점차 교회 밖의 내용, 세속적인 것들이 삽입됨에 따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Monasterio de Santo Domingo de Si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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