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바야돌리드(Valladolid), 양고기와 와인의 그 맛을 기억하며 (2)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바야돌리드의 젖줄이자, 포도 농사와 포도주 생산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자연물이 ‘두에로 강’이다. 넓이는 30미터 정도이지만 바야돌리드 지역을 길게 흐르고 있어 어디서나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물이 흐르는 곳마다 포도 농사가 성행하며, 아름드리나무들이 빼곡히 차 있어 사막 같은 광야에서도 그런대로 쉴 수 있는 그림자의 섬을 만들어 낸다. 이런 나무 가운데 떡갈나무들은 포도주 통에 사용되고, 남는 것들은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것이 바로 이곳에서 가구 공업이 시작된 원인이며, 원목은 스페인 가구 공업의 대표 도시인 발렌시아로 옮겨지기도 한다. 일본이나 한국으로 가는 스페인산 가구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오는 재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세고비아 쪽으로 가는 길에 늘어선 가구 공장에서는 정교하고 예술성 높은 스페인 가구를 생산하고 있다.
(Rio Duero)
‘시망까스’(Simancas)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그러나 이곳이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결코 무시하고 지나칠 수만은 없다. 스페인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미주 대륙을 점령하고 엄청난 부를 쌓을 때의 중심 지역이 세비야였다면, 거기서 가져온 자료들이 보관된 곳이 시망까스이다. 시망까스가 이렇게 다른 지역의 물자를 전시하고 있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세비야가 모든 경제의 중심지로 있었을 때, 바야돌리드는 살라망까와 함께 중요한 정치적, 학문적 중심지였음을 알고 나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세비야에는 중남미의 것들이 전적으로 전시되어 있는 반면, 여기에는 중남미와 타 지역의 것들이 두루 전시되어 있는 게 특징이고, 고문서를 뒤지는 공부를 할 사람들은 특히 세비야와 함께 이곳에서 연구한다면 소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망카 고문서 보관소, Archivo General de Simancas)
바야돌리드 외곽의 시망까스 옆에는 ‘루에다’(Rueda)라고 하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은 특히 백포도주가 유명하다. 프랑스의 샴페인에 해당하는 ‘부르부하’(Burbuja)가 여기서 생산된다. 루에다에는 포도주 공장이 즐비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가르시그란데(Garcia Grande) 포도주 회사이다. 이 회사는 겉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모양의 전형적인 창고 같은데, 이런 창고를 스페인어로는 ‘나베’(Nave)라고 한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깥에서는 기껏해야 20년 정도 된 것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깊은 굴이 있어 그 깊이가 약 30미터에 달하고, 실제로 내려가는 계단의 길이는 그 두 배 이상이 되는 것 같다. 단순해 보이는 이 포도주 공장은 다음과 같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 여러 곳을 유랑하면서 경제권을 잡았던 유대인들은 기독교 지역이며 아랍인들의 힘이 강했던 스페인 땅에서 나름대로의 경제를 유지하면서도 종교 행위를 하기 위해 ‘시나고가’(Sinagoga)를 만들었다. 다른 종교인들의 눈을 피해 이렇게 깊고 긴 굴을 파는 공사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1492년 가톨릭 양왕의 유대인 추방령이 반포되면서 이곳을 떠나야 했고, 그대로 포도주 공장으로 변조된 것이다. 처음 만들어진 때가 13세기였으므로, 포도주 공장의 역사는 약 500년을 이어 온 것이다.
‘포도주의 침실’이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대단히 신성시하는 이곳에는 여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중간에는 밖으로 나가기 위한 중간 창고도 마련되어 있다. 맨 밑 지하 창고의 높이는 3미터 정도이고, 넓이는 4미터, 길이는 25미터 정도가 되어 보인다. 이렇게 적은 공간만을 채워야 하므로 그 양은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선별된 포도주’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당연하다. 종교 사원이 포도주로 가득 채워진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포도주가 이곳 사람들에게 중요한 경제원이고 중요한 삶의 일부이기에 이곳이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성지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근처에는 ‘메디나 델 깜뽀’가 있다. 그리고 이사벨 여왕의 거처였던 것으로 알려진 ‘모따 성’이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아빌라의 성’과 함께 스페인의 대표적인 성으로 꼽힌다.
(Gerardo Diego)
시인 헤라르도 디에고(Gerardo Diego, 1896~1987)에게 두에로 강은 변함없이 흐르는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에 바빠서, 도시를 형성하고 그들 이전부터 흐르며 어머니의 품, 젖줄 역할을 해 온 두에로 강을 바라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두에로의 무한한 사랑은 희석되지 않는다. 풍작이나 흉작을 막론하고 두에로는 모든 것을 편안히 안은 채, 그저 흐를 뿐이다. 영원한 진리를 품은 모습으로, 시인은 「두에로의 노래」에서 강을 노래한다.
두에로 강,
아무도 널 마주하지 않고,
아무도 너의 영원한 물소리를
들으려 멈추지도 않는구나.
무관심하거나 겁쟁이,
도시는 등을 돌린다.
거울 같은 너의 맑은 물에
자신의 오욕스런 성이 비치길 원치 않도다.
너, 유구한 두에로,
은빛 수염 사이로
흉작인 곡식을 갈면서도
노래하는구나.
미겔 델리베스(Miguel Delibes, 1920~2010)의 고향이기도 한 바야돌리드. 그의 작품의 배경에는 분명 바야돌리드의 한 시골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오며, 그 스스로도 이곳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바야돌리드는 다른 작가보다도 미겔 델리베스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바야돌리드 #스페인여행 #양고기 #스페인요리 #스페인음식 #스페인 #스페인어 #스페인와인 #리오하 #두에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스페인문학 #시망카 #스페인미술 #스페인음악 #Valladolid #Madrid #산티아고순례길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