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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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스페인으로 들어온 모든 것들이 혼합된 곳, 사라고사 (Zaragoza)

                                   아라곤, 스페인 땅의 모든 역사를 품다!


까스띠야(Castilla) 왕국의 이사벨(Isabel)과 아라곤(Aragon) 왕국의 페르난도(Fernando)가 1469년에 결혼을 함으로써 이후 스페인 통일의 기틀이 마련되었음을 기억한다면, ‘아라곤’이 국토회복(Reconquista) 이후의 정치 상황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물론 남부의 까스띠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지만, 그런대로 강력한 왕국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라곤이다.

                                  



로마와 아랍 시대에 중요한 도시였던 ‘사라고사’(Zaragoza)가 있으며, 북부 스페인의 젖줄인 에브로(Ebro) 강이 통과하고 있어 땅이 비옥하다. 아랍의 건축과 기독교인들의 건축이 공존하니, 특히 북부 지역으로는 드물게 아랍의 자취가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요 도시로는 ‘우에스까’(Huesca)와 ‘떼루엘’(Teruel), ‘하까’(Jaca) 등이 있다.


사라고사는 아라곤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스페인을 대표하는 중요한 몇몇 도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Basilica del Pilar)


스페인 북부와 중부를 잇는 주요 거점 지역이면서 동서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여 오래전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각광 받았다. 지리적으로 볼 때, 과거 한국의 천안이나 지금의 대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서쪽으로는 소리아(Soria)와 그 위로는 라 리오하(La Rioja)와 나바라(Navarra),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과달라하라(Guadalajara)와 접하고 있다. 


마드리드(Madrid), 바르셀로나(Barcelona), 발렌시아(Valencia), 빌바오(Bilbao) 등은 사라고사와 등거리에 위치하고, 반도의 중부나 남부에서 프랑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라고사를 거쳐야 한다. 로마 시대에는 남부의 메리다(Merida)에서 중앙의 알깔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 그리고 사라고사를 잇는 경로가 일직선으로 형성되어, 물자와 인력의 중요 통로로 이용되었다.


때문에 사라고사는 로마 시대, 아랍 시대, 중세시대,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치면서 발전한 전통 있는 도시이지만, 그래도 이곳을 중요한 삶의 터전으로 만든 에브로 강은 외부인들 이전에 스페인인의 조상들이 처음 머물렀던 장소임을 말해 준다. 요컨대 ‘강’이라는 뜻의 ‘에브로’는 스페인, 또는 이베로 사람이라는 '이베로'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존재했다.


                                          (Museo de Tapices, La Seo, Catedral de Zaragoza)


‘사라고사’라는 이름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즉 이베로인들이 이 지역을 ‘살두이에’라고 불렀지만 지금의 이름과는 상관없고, 기원전 15~14년경에 이 도시를 세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의 이름에서 로마 시대에는 ‘까에사라우구스따’(Caesaraugusta)였으며, 아랍 시대에는 ‘메디나 알바이다 사라꾸스따’(Saracusta)로, 그리고 아라곤 왕국에 와서는 지금의 ‘사라고사’(Zaragoza)로 정착되었다. 


                                                 (La Seo, Catedral de Zaragoza)


이렇게 네 개의 주요 문화가 섞인 사라고사는 711년 반도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아랍인들에 의해 714년 점령되었고, 그 이후 스페인 국토회복운동의 첫 발화지로 알려진다. 이와 같이 아랍인들로부터 기독교인들이 국토를 회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전쟁은 북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에 따라 아라곤 왕국이 성립되었고, 이 북부의 강대한 지역은 1035년부터 1095년까지 확장을 거듭해 알폰소(Alfonso) 1세 때와 알폰소 2세 때를 거치면서 1118년까지 완전히 회복하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저항 세력이 일어난 일이 여러 차례 있었으며, 나중에 까스띠야 왕국과 결합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되찾아, 이후에는 부왕 지배 지역으로 바뀌게 된다. 한 왕국의 수도였던 만큼 이곳에는 아직도 귀족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며, 왕궁을 비롯하여 대학교, 법원, 의회, 극장들이 모두 갖춰져 있는, 규모 면에서 스페인의 대여섯 번째쯤 되는 도시이다.


                                                   (Teatro Romano de Zaragoza)


도시를 본다면, 먼저 15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세워진 ‘세오 성당’이 있고, 역시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로 16세기에 지어진 ‘삘라르(Pilar) 성당’도 유명하다. 세오 성당의 내부는 웅대하며 전형적인 기독교 건물이지만, 외부를 본다면 오히려 아담한 데다 아랍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건물의 벽은 세세하게 문양을 내고 있어, 그라나다를 비롯하여 스페인에 분포하는 아랍식 건축물을 장식하는 그런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삘라르 성당은 에브로 강가에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하늘을 찌를 듯한 날카로움과 세세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Campo de Borja)


사라고사 도는 북부의 피레네(Pirineos)로 인한 산악 지역과, 그 이남의 평지, 그리고 에브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으로 구분되며, 에브로 강 주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에브로 강은 그야말로 이곳의 젖줄 역할을 하면서, 특히 포도주 생산의 토대가 되고 있다. 물론 서북쪽의 라 리오하가 스페인의 대표적인 포도주 산지로 명성을 얻고 있지만, 에브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 특히 깜뽀 데 보르하(Campo de Borja)를 비롯하여 까리녜나(Carinena), 깔라따윳(Calatayud) 등지에서도 포도주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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