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20세기를 선도한 바르셀로나 예술: 피카소(Pablo Picass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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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주요 인물로는 피까소(1881~1973)가 있다. 미래에 스페인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까소가 될 화가가 스페인 남부 해안가 말라가(Malaga)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서 바르셀로나에 정착한 것은 1895년의 일이다. 피까소는 스페인에서도 가장 진보적이며 파리에 가까운 이 현대적인 도시에 도착함으로써 자신의 창작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피까소가 파리에 발을 디딘 것은 1901년이었으며, 1904년에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창작 생활을 한 것이 바로 ‘청색 시대’(Epoca Azul)라고 일컬어지는 시기이다. 파리에서 돌아온 그의 눈에 비친 바르셀로나는 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했으며, 스페인에 대한 생각이 감상에서 현실로 돌아옴에 따라 그림 속에 노동자와 하층민의 생활이 등장하면서, 청색 시대의 작품은 작가의 암울한 현실 인식을 나타내게 된다. 피까소는 이어 1904년에 프랑스에 간 다음 그곳에 완전히 정착하여, 거의 모든 생을 프랑스에서 보내면서 창작을 했다.
(Las Obras de la Epoca Azul de Picasso)
그가 스페인에 잠깐씩 들어왔던 것은 방문 형식이었고, 그 배경에는 프랑꼬(Franco)의 독재정치에 저항하려는 의도도 들어 있기는 했으나, 스페인의 창작 조건이 그의 화가 생활에 도움을 주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피까소는 살아생전에 대단한 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그가 그린 그림은 그대로 전시되어 경매에 붙여지고 막대한 액수로 판매되었으니, 돈과 명예에서 남보다 뒤지지 않았다. 애정 행각도 대단했으며 천수를 누리는 복도 얻었으니, 금세기 보기 드문 예술가라고 칭할 수 있겠다. 1962년에는 하이메 사바르떼스란 사람이 제안하여 피까소 미술관이 바르셀로나에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던 많은 작품이 다시 스페인에 모이는 계기가 되었다.
피까소는 말라가 태생으로 라 꼬루냐(La Coruna)로 옮겼고 이어 바르셀로나 및 마드리드 등지를 옮겨 다니면서 그림을 배우게 된다. 집안 자체가 그림과 관계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림과 가까운 분위기에서 살았다.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은 피까소의 그림 세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쁘라도 미술관은 그에게 여러 가지로 자극을 주었다. 그는 벨라스께스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였고 엘 그레꼬의 그림도 좋아했다. 물론 고야의 그림은 피까소의 창작력을 배가하였으며, 인물의 반복 또는 새로운 형태, 새로운 공간에의 배치는 피까소가 20세기 고야의 재탄생임을 말해 준다.
피까소의 인생 역정을 열거하면, 프랑스에 동행했던 친구 까사헤마스의 자살과 아내 올가와의 사랑 및 마리테레즈와의 사랑, 그리고 그들과의 헤어짐, 크로아티아계 사진작가 도라 마르와의 동거, 1943년 젊은 화가 프랑수아 질로와의 사랑 행각, 1953년 그녀와 헤어져 1954년에는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던 자클린 로크와 만나 1961년 결혼한 일 등으로 요약된다. 피까소는 항상 주위에 여성이 있었고, 그녀들은 그에게 뮤즈로서 작용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는 스페인 전통 기법을 충분히 이해하였기 때문에 전통 속의 전통과 혁신을 모두 취할 수 있었고, 세계성을 스페인 전통 그림에서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까소의 출생지 말라가는 벨라스께스의 초기 본거지 세비야(Sevilla)와 가까우며, 그것은 피까소가 스페인 전통과 사실주의적 기법의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피까소의 초기 작품에는 300년 전 작가, 벨라스께스에게서 발견되는 스페인인들의 삶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한편 당시 세계를 풍미하던 프랑스의 화단에 들어가 나름의 세계적인 작가로 군림할 수 있었는데, 그는 몽마르트르 언덕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나란히 작업을 하게 되었고 신사조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이 고야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면, 다시 고흐와 세잔의 화법이 피까소에게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피까소의 프랑스 방문은 그의 그림에 색채의 다양함을 주었다고 이야기된다. 즉 이전에는 말라가의 흰색과 검은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원색 및 다양한 색의 실험과 색채 자체의 다양성은 그가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1901년 프랑스에 갈 때 동행했던 친구 까를로스 까사헤마스가 자살한 것에 충격을 받아서 청색 시대(1901~1904)가 시작되었고, 「조객들」과 「초혼」 및 그에 대한 두 편의 초상화를 남기게 된다. 한편 까사헤마스는 피까소의 1903년 「인생」이란 작품에 예술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때 그의 그림은 주제 자체가 우울하고 피곤하며 늘어져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색상도 녹색을 띤 푸른색으로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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