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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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20세기를 선도한 바르셀로나 예술(1): 가우디(Anonio Gaudi)

마드리드가 보수적이고, 그 배경에 스페인의 16~17세기를 지칭하는 황금세기(Siglo de Oro)와 20세기 이전의 고전적 전통이 있다면,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20세기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항구도시이며 외부와의 교류가 많았던 바르셀로나는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준 사람들 중에는 위대한 건축가와 화가가 많다.

마드리드가 쁘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을 중심으로 엘 그레꼬(El Greco), 루벤스(Rubens), 벨라스께스(Velazquez), 고야(Goya)가 있어 풍요롭듯이, 안또니 가우디(Antonio Gaudi)와 빠블로 피까소(Pablo Picasso),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호안 미로(조안 미로, Joan Miro) 등의 인물은 바르셀로나를 가장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Museo de Picasso, Barcelona)

살바도르 달리 등의 여러 작품들이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Reina Sofia)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긴 하지만, 이들 작가의 작품에 들어 있는 배경은 바르셀로나였으며, 바르셀로나에도 그들의 작품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물론 가우디의 작품은 시내 이곳저곳에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서, 마치 시내 전체가 그의 작품인 양 느끼게 한다.


(Museo de Joan Miro, Barcelona)

가우디(Gaudi, 1852~1926)가 없는 바르셀로나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는 이 도시와 스페인을, 그리고 스페인 예술과 건축의 전통을 세계에 알린 제1의 공신이다. 특히 가우디가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성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은 바르셀로나에 대한 포스터 가운데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도시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안또니 가우디의 건축양식은 고딕에 이슬람 양식이 곁들여지며, 거기에 작가의 창조 정신이 가미된다. 보통 가우디를 르네상스 양식과 로마네스크, 비잔틴 양식의 영향권에 있다고 보지만, 그의 건축양식이 새롭고 경이적인 것은 약 800년간 스페인에 뿌리박힌 아랍 양식이 작품 속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Azulejo)

특히 흰색과 청색이 많은 타일과 모자이크와 유리가 그렇다. 여기에 현대 과학의 산물인 철이 들어가면서 모더니즘적인 색채를 띤다. 익히 알고 있듯이 흰색은 아랍인들의 색깔이었으며, 청색 역시 아랍인들이 만들어 사용한 타일의 색깔이다. 이렇듯 가우디 건축의 재질은 아랍과 기독교 세계의 것들이 혼합되어, 어느 나라의 어느 작가도 만들어 내기 어려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고전과 현대의 혼합, 고전을 통한 혁신이 가우디 예술의 기본이다.

(Pared con Azulejo)

안또니 가우디는 모더니스트로 평가된다. 바르셀로나에는 모더니즘계 건축물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에서 가우디의 것이 대표적이다. ‘빨라우 구엘’(Palau Guall, 구엘 저택)을 비롯해 예술과 삶이 무척 잘 어울리는 여러 구조물들이 환상적으로 들어찬 ‘빠르끄 구엘’(Parc Gual,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작품이며, ‘빨라우 데 라 무시까 까딸라나’(까딸루냐 음악당)와 ‘까스뗄 데 뜨레스 드라곤스’(Castell dels Tres Dragons, 세 마리 용의 성)는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건축가 루이스 도메네흐(Luis Domenech, 1850-1923)의 작품이다. 한편, 식당 ‘엘스 꾸아뜨레 가츠’(네 마리 고양이)는 조셉 푸익(Josep Puig, 1867-1956)의 작품이다.


(Palau Guell)

가우디의 대표 작품 성가족 성당은 가로가 60미터, 세로가 95미터로 고안되었으며 제단 뒤의 장식은 고딕식으로 꾸며졌고 좌석은 13,000석으로 만들어졌다. 중앙의 철탑은 170미터이며, 기타 열일곱 개의 탑은 100미터 높이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골똘한 상념에 잠긴 채 느리게 달리는 전차에 치여 갑작스레 가우디가 사망하자 작업이 일시 중단되었고, 1936년의 노동자 폭동으로 인해 설계도와 여러 고안물들이 파괴되었다. 1950년 이후에 작업이 재개되었지만, 그때부터의 공사는 완전히 상상에 달려 있는 셈이다. 『돈끼호떼』에서 돈끼호떼의 여행을 막기 위해 신부와 이발사가 주축이 되어 여행을 부추기는 기사문학 작품을 불태운 다음 오히려 돈끼호떼의 여행이 상상의 도움을 받아 계속되었고, 이어 진정 기사다운 돈끼호떼가 만들어지고, 그의 행적으로 『돈끼호떼』란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면, 가우디의 설계도가 사라진 다음의 건축은 이후의 건축가들에게 하나의 숙제가 되었지만, 작품이 시간을 두고 감상되며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위안해 본다.




(Parc Guell)

성가족 성당이 많은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면서 미래에 완성될 모습이 각자의 마음속에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성당의 영원성에 더불어 가우디가 의도했던 신앙의 영원성과도 통한다고 본다. 탑의 동쪽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서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남쪽 면은 영광을 의미하고 있다. 가우디가 사망할 당시에는 중앙 제단 뒤쪽과 한 개의 탑이 완성되었고 정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1930년에 세 개의 탑이 추가되었고 북동쪽의 정문이 만들어졌다. 1950년 이후에 남서쪽 문과 네 개의 탑이 더 만들어졌으며, 성가족 성당의 공사는 신자들의 헌금을 바탕으로 계속될 것이다. 오래 걸리는 이유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문제도 있지만, 하나하나 쌓이는 단계마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건축가들의 고심이 있기 때문인 듯도 하다.




(Palau de la Musica Catalana, Lluis Domenech)

성당의 모습에서는 직선을 찾아보기 어렵다. 위험하게 보일 정도로 곡선인데, 이는 가우디가 건축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한 데서 비롯된다. 즉 기존의 성당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 있는 데 반해 성가족 성당은 중앙 부분이 아주 많이 팽창되어 있는데, 주변의 몬세랏 산의 형상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산의 곡선과 인간이 만든 성당의 곡선이 어우러진다면, 그것은 인간과 신의 만남을 상징하는 공간일 것이다. 가우디가 영원한 바르셀로나인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도시를 사랑했고 이 도시를 배경으로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으며 그것들이 보존되는 한 가우디의 이름 역시 거의 영원성을 갖고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ls Cuatre Gats, Josep Pu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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