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돈키호테, 니체 철학의 예언적 그림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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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20세기를 선도한 바르셀로나 예술: 피카소(Pablo Picasso)(2)


청색 시대 다음으로 피까소는 유랑 극단에 관심을 가진다. 광대 혹은 원숭이 같은 동물의 모습에서 먹고살기 위해 사회라는 곳에 편입하여 떠돌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포착하였으며, 이는 프랑스 생활에 대한 그의 심경을 대변한다. 물론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유랑 극단이라는 소재이지만, 그중에서도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떠돌이 신세가 작가 스스로의 삶과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공중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광대」, 「곡예사 가족」 등이 이 주제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그림을 이루는 주 색깔이 청색에서 장미색으로 변모하고 있으니, 바로 ‘장미의 시기’이다. 이 무렵, 피까소는 자신의 중요한 미술적 전환을 알리는 「아비뇽의 여인들」(1907)을 발표하는데, 여기서는 엘 그레꼬의 그림 양식과 당시 아프리카에 가지고 있던 관심이 가미되어, 여인이 아프리카의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피까소의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은 고갱이 그랬던 것처럼 그즈음의 유럽이 당면한 복잡하고 잔인한 인간 사회에 대한 거부반응이었으며, 좀 더 단순하고 원시적인 것을 향한 갈구에서 비롯되었다. 「아비뇽의 여인들」은 그의 친구 막스 자코브가 바르셀로나 사창가의 이름을 붙여 줌에 따라 제목이 결정된 것이다. 즉, 그림 속의 여인들은 매춘부이다. 이어 피까소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 세잔의 그림에 영향을 받는 등, 스페인 전통과 아프리카 미술 및 색의 새로운 발견이 어우러져 그만의 독특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Les Demoiselles d'Avignon)

1915년 피까소가 사랑하는 에바가 죽었고, 같은 해에 내놓은 「익살 광대」는 그 슬픔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입체주의는 꿈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듯한 초현실주의 경향과 잘 어울릴 수 있었다. 즉 사물의 입체적인 시각은 마치 상상에 의한, 사물의 다른 면을 보려는 시각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전통적 기법에 대한 부인은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가 피까소에 와서 결합한 이유이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기법들은 그림에는 물론이고 이후 1934~1936년에 걸쳐 줄곧 작업한 시나 조각 등에 배어 있다.

피까소가 다시 스페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스페인 내란 때로, 이념 전쟁 속에서 그는 공화국 정부에 지지의 손을 들어 줬다. 1937년 프랑꼬군의 요청에 따라 독일군이 바스꼬 지역의 게르니까에 폭격을 가하여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프랑스 신문에 보도되었고, 피까소는 이를 보고 느낀 감정을 즉흥화하여 약 3주 만에 「게르니까」라는 작품을 완성해, 1937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의 스페인관에 전시하게 되었다. 흰색과 회색 등으로 그려진 「게르니까」는 비극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고 있으며, 이전에 그가 색채를 사용했던 방식과는 상이한 정신세계의 변화를 알리고 있다. 가로 3.49미터, 세로 7.77미터의 규모가 큰 작품으로 현재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Guernica)

피까소는 말년에 자신의 그림을 재해석하거나 기존 작가의 작품을 다시 그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러한 변형은 창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표현이며 문학에서의 재해석 및 재발견의 모습과 유사하다. 마네와 렘브란트, 벨라스께스 등의 그림을 다시 그린 것은 피까소가 거기서 ‘차연’의 개념을 발견한 것일 테고 피까소 그림의 본질적인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Los Tres Musicos de Velazquez) 

(Los Tres Musicos de Picasso)

피까소의 그림은 독창적이다. 그러나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피까소가 어떤 그림들을 변형시켰다는 사실을 여러 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때로 피까소 그림들과 비교되면서, 변형이 어떤 의도와 방법으로 이루어졌는지 알게 해 준다. 먼저 유명한 「게르니까」는 당시 신문에 나온 사진을 묘사하고 있을 것이며, 「한반도에서의 학살」 역시 그림은 아니지만 사진을 대상으로 그렸다. 이 밖에 그가 가장 모범으로 생각했던 화가 벨라스께스의 「궁녀들」(1656)은 피까소의 「궁녀들」(1957)로 다시 만들어졌으며, 들라크루아의 「알제리의 여인들」(1834)은 1955년 피까소의 「알제리의 여인들」로 다시 그려진다. 푸생의 「실레노스의 승리」(1637)는 1944년 「바쿠스의 축제」로, 세잔의 「대수욕도」는 정확하게 지정할 수 없지만 「아비뇽의 여인들」(1907)로 패러디 되고 있다. 특히 피까소의 「궁녀들」은 벨라스께스가 그랬듯 피까소가 노인이 되어 그린 작품으로 벨라스께스와 고야, 그리고 피까소를 비교한다면 피까소의 존재가 엄청나게 부각되는 작품이다. 피까소의 「궁녀들」은 벨라스께스 그림에 대한 피까소의 개인적인 해석의 넓이와 깊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을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수 있는데, 피까소가 기존의 작품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기법으로 다시 그리는 시도들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피까소는 그의 주 활동 무대가 파리였기 때문에 프랑스인으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호안 미로(Joan Miro, Juan Miro, 1893~1983)는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진짜배기’ 스페인 사람이다. 그는 당시 스페인에서도 프랑스의 바람이 가장 거세게 불던 바르셀로나에서 미술을 시작한다. 초현실주의라고 불리는 바람은 미로를 독특한 기법의 소유자로 만들었고,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은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감수성을 더욱 자극하였다. 스페인의 전통과 가장 현대적인 기법이 호안 미로에 의해 혼합되고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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