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예술로 빚은 도시, 바르셀로나(Barcelon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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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역사적으로 오래전부터 중앙정부와 적대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을 보면, 그들로부터 분리되려는 까딸루냐 자치주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새로운 왕이나 독재자가 나타날 때마다 이에 반대하고, 20세기 초에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많았다. 사실 까딸루냐 지역은 까스띠야 왕국이 통일을 하는 동안 저항했으며, 그들의 영향권 밖에 있었을 때 융성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까딸루냐는 예술 면에서도 중앙의 마드리드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는데, 중세극이 교회에 의해 금지되었다가 다시 허가되는 과정에서 다른 유럽 지역과 동시에 까딸루냐에서도 개방되어 그 현상이 까딸루냐로부터 남쪽에 위치한 무르시아(Murcia)까지 확대되었으나, 까딸루냐 이외의 지역, 특히 마드리드 주변에서는 여전히 중세극이 금지되는 보수성과 중세성을 보였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높은 종탑과 정문의 아치 모양은 바로 이들 인접 지역에서 건너온 유산이다. 당시 가장 선진적인 그림을 그렸던 빠블로 피까소(Pablo Picasso)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호안 미로(Juan Miro) 등의 작가가 이곳을 본거지로 활동한 것을 봐도 이해되는 말이다.
까딸루냐인의 언어인 까딸란도 스페인 공식어인 까스떼야노와는 다르다. 까딸루냐 지방이 아랍인들의 지배하에서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회복되었던 역사, 그리고 12세기에야 스페인의 도시로 편입되어 나름의 독립된 국가 체제를 유지해 왔던 역사가 보여 주듯, 까딸란은 프랑스어와 까스떼야노의 중간에서 프랑스어에 가깝다. 그래서 까딸루냐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통한다. 그뿐만 아니라 까딸루냐 사람은 프랑스어를 더 선호한다. 학교에서는 공식어인 까스떼야노 대신 까딸란을 따로 지정하여 가르치며, 수업도 까딸란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한 편 들어오면 까스떼야노로 번역되고 다시 까딸란으로 번역된다. 스페인이 번역이나 더빙에 있어서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앞선 것도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현재 까딸루냐에는 공업의 발달로 다른 곳에서 유입된 인구가 많아지고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까스떼야노를 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까딸루냐 사람들의 자존심을 생각할 때 두 언어를 공용할 가능성이 높다. 길을 갈 때 마드리드에서는 거리라는 단어가 ‘까예’(Calle)라고 쓰여 있지만, 까딸루냐에서는 거리라는 단어가 ‘루아’(Rua)라고 쓰여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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