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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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동굴의 비유

https://youtu.be/V8cq5-_jWSI


1. 산 정상에서 지하세계로 (From Mountain Peak to Underworld): 『돈키호테』 2권을 읽다 보면, 돈키호테가 여러 모험을 이어가던 중 모든 활동을 멈추고 몬떼시노스 동굴로 들어가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1권에서 돈키호테가 시에라 모레나 산으로 들어가 수행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죠. 1권에서는 산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면, 2권에서는 오히려 땅 속 깊은 곳,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모습입니다. 이 두 장면은 상반된 공간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려내고 있으며, 만약 세르반테스가 의도적으로 배치했다면, 이는 작가의 심오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즉, 이런 장면들은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에서 모험을 잠시 멈추고 사유에 잠기는 시간으로서의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이 사유의 시간이 끝난 후 다시 모험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 '멈춤의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2. 세상을 알기 위한 심연으로 (Into the Abyss to Know the World): 그렇다면, 세르반테스는 왜 돈키호테를 동굴 속으로 보냈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연결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돈키호테가 동굴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여기 눈 앞에 나타나는 깊은 심연(深淵)에 가라앉을 것이옵니다. 그것은 오직 세상을 알기 위함입니다.” 이 말에서 우리는 “세상을 알기 위해” 동굴에 들어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페인어 원문으로는 “Hundirme en el abismo sólo para conocer el mundo”라고 표현되는데요,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세계에 대한 인식의 탐구를 목적으로 동굴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플라톤이 말한 철학자, 즉 ‘철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3. 플라톤의 동굴 비유와 돈키호테 (Plato's Cave Allegory and Don Quixote):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사람들은 동굴 안에 갇혀 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 허상을 깨닫고 동굴 밖으로 나가면, 그는 진정한 현실, 즉 이데아의 세계를 보게 되죠.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세계는 그림자에 해당하며, 우리의 감각은 제한적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감각이 만들어내는 왜곡의 쇠사슬을 풀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해가 있는 밝은 세계를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그다음입니다. 이 철인은 다시 동굴로 돌아와 동굴 속 사람들에게 진실을 전해야 하죠. 하지만 동굴 속 사람들은 그 철인을 비웃거나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있는 이 설정이 『돈키호테』의 몬떼시노스 동굴 장면과 굉장히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4. 험난한 진리의 길 (The Arduous Path to Truth): 돈키호테가 동굴로 들어가는 장면은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그는 깊은 동굴로 다가갔는데 칼질을 하거나 팔 힘으로 덤불들을 걷어내지 않으면 밧줄을 타고 내려가거나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손으로 칼을 잡고 동굴 입구에 있는 덤불들을 자르고 쓰러뜨리기 시작하니, 그 소음과 시끄러운 소리에 아주 커다란 까마귀와 갈까마귀들이 수없이 튀어나왔다.” 동굴로 들어가는 길은 험하고, 위험하고, 외롭습니다. 이는 철인이 동굴을 나오거나 다시 돌아가는 과정처럼,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죠. 동굴에서 만난 몬떼시노스 역시 돈키호테의 용기를 높이 평가합니다. 5. 진실을 말하는 자의 운명 (The Fate of the Truth-Teller):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동굴을 다녀온 돈키호테가 다시 바깥 세상으로 돌아와 산초에게 동굴 속 이야기를 하자, 산초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산초는 주인한테 이 이야기를 듣고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든지 웃음이 터져 죽을 뻔했다. 산초는 주인이 정신이 나갔거나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 반응은 동굴의 비유에서 밖의 밝은 세상을 보고 동굴로 되돌아와 자신들에게 전해주는 철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비웃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산초의 의심에 대해 돈키호테는 조용히 이렇게 말하죠: “세월이 가서 때가 되면 저 밑에서 본 걸 자네에게 또 이야기해줌세. 그러면 지금 내가 한 이야기를 믿게 될 걸세. 그게 다 진실인 건 재론이나 반박의 여지가 없으니까.” 6. 역전된 동굴 비유 (The Inverted Cave Allegory): 흥미로운 점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돈키호테』의 구조가 거울처럼 뒤바뀌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현실을 동굴 속에 비유하고, 철학자는 동굴을 벗어나 바깥세상의 진실을 보고 다시 동굴로, 즉 현실로 돌아오죠. 하지만 돈키호테에게는 바깥이 현실이고, 동굴이 또 다른 진실의 세계입니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봤던 동굴 속 세상을 “가장 사려 깊은 인간의 상상력이 꿈꿀 수 있는, 자연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라고 표현합니다. 몬떼시노스 동굴 이야기에서는 동굴 속이 이상적인 세계이고, 동굴 밖의 세계, 즉 산초가 있는 공간은 감각으로 왜곡된 세상, 쇠사슬로 묶인 채 그림자를 현실로 보는 세상인 것입니다. 돈키호테는 이 아름다운 내면의 진실을 보고 돌아와서 말하지만, 산초는 그를 미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죠. 마무리하며 (Conclusion): 소설 『돈키호테』는 단순한 해학의 소설이 아닙니다. 작품 안에는 철학적, 존재론적, 인식론적인 질문들이 수없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닮은 몬떼시노스 동굴의 이 장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현실과 사실이란 무엇입니까? 혹시, 그것은 나와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아닌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요? 돈키호테가 경험했다는 동굴 속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아니면, 산초가 말했듯 돈키호테가 미쳤기 때문에 나온 환상일까요? #돈키호테 #몬떼시노스동굴 #플라톤의동굴의비유 #문학속철학#세르반테스 #인식론 #인문학강의#스페인문학#진실과허구#세계문학 #DonQuixote #CaveOfMontesinos #PlatosCaveAllegory #PhilosophyInLiterature #Cervantes #Epistemology #HumanitiesLecture #SpanishLiterature #TruthAndIllusion #WorldLiterature #DonQuijote #CuevaDeMontesinos #AlegoriaDeLaCavernaDePlaton #FilosofiaEnLiteratura #Cervantes #Epistemologia #ConferenciaDeHumanidades #LiteraturaEspañola #VerdadYIlusion #LiteraturaUnivers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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