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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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산초의 자각, "그 때가 행복했단다"

 https://youtu.be/tsLKs2mTw6U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델포이 #소크라테스 #산초 #통치 #총독 #휴브리스 #아테 #네메시스 #파멸 #자기성찰 #자기구제 #Barataria #Conocerte a ti mismo #Don Quijote #Sancho Hubris #Ate #Nemesis #Arete #Anagnorisis #Nada en exceso #Una confianza trae la ruina #산초와 당나귀 “너 자신을 알라.” 이 표현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전실 기둥에 새겨져 있던 세 가지 경구 가운데 첫 번째 문장이다. 소크라테스가 특히 강조했던 말로, 우리는 종종 그의 목소리로 기억한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탁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지혜란 모든 것을 아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깨닫는 데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고대의 격언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도 흥미롭게 변주된다. 2권 42장에서 돈키호테는 바라따리아 섬의 총독 자리에 오르게 된 산초를 따로 불러 통치자의 자세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건넨다. 그 가운데 두 번째가 바로 “너 자신을 알라”였다. 본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두번째는 자네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주의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알려고 노력해야 하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어려운 지식이요 지혜일세. 자신을 안다면 지나치게 으스대는 일은 없을 게야. 개구리가 황소가 되려다가 배 터져 죽은 일 같은 건 없어야 하니까.”(Lo segundo, has de poner los ojos en quien eres, procurando conocerte a ti mismo, que es el más difícil conocimiento que puede imaginarse. Del conocerte saldrá el no hincharte, como la rana que quiso igualarse con el buey.)(II,42) 돈키호테가 전한 이 말은 단순한 충고를 넘어선다. 우리의 눈은 흔히 타인을 향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과제다. 산초는 글을 배우지 못했고 신분도 낮았지만, 의외로 총독으로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근면했고, 원칙을 지켰으며, 공정하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통치의 길은 쉽지 않았다. 반란 세력이 등장하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마음껏 먹지도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산초는 통치자가 아무리 현명하고 공정하더라도, 그 자리를 노리는 세력은 늘 존재하며, 그들이 결국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2권 53장에서 산초는 총독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도망쳐 나온다.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당나귀였다. 그는 당나귀를 끌어안고 화해의 키스를 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이리 오게나, 나의 동반자이며, 나의 친구여! 내 수고와 빈곤을 함께 한 친구여. 내가 그대와 마음이 잘 맞아 다른 생각없이 그대 마구나 수선하고 챙기고 그대의 그 조그만 몸뚱이나 먹여 살릴 걱정이나 하고 지내던 때의 내 시간 시간이, 하루 하루가, 세세년년이 행복했었지. 그러나 그대를 떠나 야심과 오만의 탑으로 내가 올라섰을 때, 나에게는 수 많은 불행과 수고로움, 그리고 그 보다 훨씬 많은 불안이 엄습해오더라.”(II,53) 돈키호테가 일찍이 경고했던 것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실천하기 어렵다. 그러나 산초는 자신을 성찰하며 그 과정을 잘 통과했다. 황소를 흉내 내던 개구리처럼 파멸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 고백은 인간의 욕망이 끝없이 높은 탑을 쌓도록 이끌지만, 그 탑이 결국 오만의 탑으로 변해 자기 파멸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오만(hubris, hybris)은 필연적으로 파멸로 이어진다. 오만은 눈을 가리고, 결국 신의 징벌(nemesis)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산초는 자신이 뛰어난 통치자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오만을 인식했다. 바로 그 깨달음 덕분에 파멸을 피할 수 있었다. 『돈키호테』를 읽으며 얻는 중요한 교훈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산초는 지혜롭고 성실한 통치자였지만, 진정으로 그를 구한 것은 돈키호테가 전해 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었다. 그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깨달았고, 그 깨달음이 결국 생명을 지켰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타인을 설득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쓰일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데 목적이 있다. 산초의 경험이 보여주듯, 이 성찰은 때로 생명을 지키는 힘을 발휘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에서 비롯되어 소크라테스가 강조했던 이 말은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있다. 산초의 사례는 이 격언이 단순한 고대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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