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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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환멸'인가, '깨닮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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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문학, 예술, 그리고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Engaño’와 ‘Desengaño’라는 표현이 있다. 두 단어는 매우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다. ‘Engaño’는 ‘속임수’ 또는 ‘기만’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Desengaño’는 ‘Engaño’와 연관된 개념으로 ‘환멸’ 혹은 ‘실망’이라 풀이된다. 이것은 사전적 의미이다. 그러나 스페인어 ‘Desengaño’를 우리말 '환멸'로만 해석하는 것은 그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깨달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떤 속임을 당한 뒤에는 '환멸'을 느낄 수 있지만, ‘Desengaño’의 의미는 그보다 깊게, 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즉, 속임과 환멸,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쓰라린 교훈 또는 깨달음은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엮을 수 있다. ‘Engaño’와 ‘Desengaño’라는 용어를 『돈키호테』에 적용하면 보다 이해가 쉬워진다. 돈키호테는 연속적으로 ‘속임수’를 당한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 그렇다. 돈키호테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존재는 마법사다. 마법사의 속임에 빠져 돈키호테는 모험을 시작한다. 풍차를 보고 돈키호테는 거인이라고 여기는데, 풍차를 거인으로 본 것이 아니라, 원래 풍차지만 그 본질을 거인으로 해석하며 달려드는 것이다. 즉, 산초가 풍차라고 밝혔더라도 돈키호테는 마법사의 속임수로 인해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여 행동한다. 작품 속에는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용해 재미를 보려는 이들이 있다. 그중 공작 부부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연극을 만들어 돈키호테와 산초를 놀린다. 결국 돈키호테에게는 모험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 상황 자체가 연극이고, 산초의 바라따리아 섬 총독 임명 역시 일종의 속임수에 해당한다. 중요한 것은 돈키호테의 모험, 즉 속임수나 사기를 돈키호테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이다. 그는 수많은 기사 이야기를 읽었고, 그의 머릿속은 온통 기사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결과, 풍차를 거인으로, 양떼를 군인으로, 세숫대야를 투구로, 객줏집을 성으로, 주인을 성주로, 딸을 공주로 본다. 즉, 돈키호테에게 있어 속임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각자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돈키호테와 다를까? 사실 모두 각기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의 부모, 형제, 친구, 개별 경험 그리고 교육, 그리고 돈키호테처럼 읽은 수많은 책들이 각자의 눈을 형성하며, 그렇게 형성된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돈키호테의 예가 극단적이어서 그를 미쳤다고 평가하지만, 각자도 상대적으로 광기 있는 존재로 보일 수 있다. 돈키호테처럼 말이다. 고대부터 쓰이는 표현이 있다. ‘Fallimur Opinione’. 로마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43)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며, 17세기 스페인 Diego de Saavedra Fajardo(1584-1648)가 이 표현을 다시 채택했다. 이 라틴어 표현은 ‘속인다’와 ‘의견’이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우리는 우리의 의견에 속는다”로 직역할 수 있고, 확장하면 "우리는 의견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한다"고 해석된다. 즉,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이 잘못된 판단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앞서 돈키호테의 예처럼, 어린 시절부터의 경험, 학습, 독서가 머리에 자리 잡고 그런 틀로 세상을 해석하게 된다. 결국 모두 고유한 자기만의 눈을 갖고 있으므로 각자 자기 착각에 빠져 있다는 의미와 같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 할 수 있다. 다시 ‘Engaño’와 ‘Desengaño’에 ‘Fallimur Opinione’의 개념을 적용하면, 각자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세상의 현상을 해석하므로, 자신에게 닥친 모든 상황을 속임이라고 느끼고, 결국 환멸을 경험하지만, 그 원인은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돈키호테는 이 과정을 그대로 겪는다. 처음엔 기사 이야기 속에 머물며 세상을 바라보고 모험을 떠나지만, 작품 후반에 가면 기사 이야기의 색채가 희미해지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지난 날의 광기를 후회하며 죽음을 맞는다. 돈키호테의 깨달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으나, 그의 변화야말로 ‘Engaño’와 ‘Desengaño’의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속임 #속임수 #환멸 #실망 #자각 #깨달음 #바로크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연극 #Engaño #Desengaño #Barataria #Molinos #Fallimur #Cervan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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