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객줏집 사절단은 마드리드에서 둘로 나눠졌다. 교황의 서신을 왕실에 전달했기에, 그에 대한 답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일행은 먼저 세비야로 출발하기로 했다. 루이스 신부와 쓰네나가는 마드리드에 남았으며, 석희가 선발대를 이끌었다. “갑시다!” 마드리드를 떠나는 석희에게는 만감이 교차했다. 로마의 교황이 스페인 왕에게 일본 기독교인들의 요청을 떠넘긴 것도 그렇고, 스페인 왕 역시 일본의 상황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정보를접하고는, 쓰네나가 일행의 은 무역 요청에 대해서도 정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반갑게 맞아주고, 관심을 쏟아주더니, 결국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냉정한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루이스 신부, 특히 쓰네나가의 어깨는 더욱 내려가 있었다. 로마에 갈 때와 돌아올 때 모습의 차이는 천양지차였다. 그렇다고 마드리드를 빈손으로 떠날 수는 없었다. 어떤 형태의 답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편, 분리되어 있던 일본 내부는 전국시대를 거쳐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는, 사실 상 정해지지 않아 안개 상태임을 스페인 왕실과 바티칸은알고 있었다. 특히, 교황으로부터 결정권을 부여 받았으나, 스페인 왕실 입장에서는 쓰네나가 일행이 주장하는 바를 인정했다가, 만일 그들이 정권을 잡지 못 하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쓰네나가의 주군이라는 마사무네는 나름 영향력은 갖고 있었지만, 단지 영주에 불과하고, 그 위에 이에야스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일본에서 돌아온 예수회 소속의 스페인 사제들이 왕실에그렇게 보고했던 것이다. 사실, 마사무네와 루이스 신부가 합작하여 사절단을 꾸린 의도는, 어쩌면 마사무네 위의 권력자인 이에야스의 정치적 소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마사무네가 사절단을 보내면서 이에야스에게는 기독교와 관련된 임무를 말하지 않았고, 다만 스페인 왕의 은 교역과 관련된 것 만 보고했던 것이다. 사절단 파견을 무리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