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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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인문학강의] [돈키호테]로 풀어보는 [시녀들] / [Las Meninas] y [Don Quij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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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GK2XQ1MX63U

[하루] 순정이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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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주소:  https://youtu.be/z3vReqxzPtY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35.윤종국(Familia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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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국은 해남에서 태어났다. 집과 그 주변을 감싸는 커다란 나무들이 집과 가문의 긴 역사를 말해주었다. 그가 어렸을 때, 집 앞의 굵은 나무들은 물론, 자신의 집은 매우 컸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타지의 기와집들과 비교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오래된 집이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종국의 어린 시절 추억은 거의 모든 게, 집과 그 주변에서 만들어졌다. 그 기와집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서첩들이 참으로 많았다. 종류와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종국의 아버지는 그것들을 보존하는 게 장손인 자신에게 주어진 평생의 임무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자식들보다도 더 귀하게 다루고 우선 시하는 아버지를 보고, 종국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한편, 누구를 만나도, 종국이 해남에서 태어난 윤씨라고 하면, 늘 그에게 묻는 게 있었다. 윤선도며, 윤두서, 그리고 좀 더 깊이 아는 사람들은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등 삼형제를 나열하고는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 묻곤했다. 그들은 두 집안의 연결고리를 아는 사람들이다. 물론, 정약용의 실학사상과 수원 화성 축조의 특징, 그리고 당시의 발전된 과학기술과 건축술에 대한 이야기로 내용을 확대하는 사람들도 간혹 만날 수 있었다. 종국은 그것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집안에 내려오는 많은 물건과 화첩, 서첩 중에 다른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색적인 것이 있음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어왔다. 하나는 은 목걸이였고, 하나는 오래된 편지였다. 특히, 은 목걸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있는 형상을 담고 있었다. 비교적 작지만 아주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보이는 그 물건이, 특히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가 언제부터 집안에 보관되어 내려오는 지에 대해서는, 그것을 보물처럼 여기시는 아버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가 고등학교 때 우연히 살펴본 문서는 한자와 함께 중간 중간에 영문 알파벳으로 된 몇 몇 글자가 있었다. 한편, 그 알파벳이 스페인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은 대학입학 시...

[인문학강의] 창작은 편집이다. / Intertextuali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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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강의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Oauubw2o2aw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34.고백(Confes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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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희, 내가 할 말이 있네.” 평소 쓰네나가는 근엄한 얼굴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에 만 충실했다. 그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석희도 늘 그와 거리를 두고 자신의 역할 만을 해왔다. 석희도 쓰네나가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다만 서로를 존중하는 입장에 있었음을 여행 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경험했다. 그렇게 석희의 능력에 대해, 늘 인정해줘고, 표시나지 않게나마 배려를 해주었던 쓰네나가가 석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먼 항해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 하고 석희를 찾은 것이다. 마드리드에서 세례를 받은 후의 쓰네나가 “지난 번 여행 중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우리 집안은 신라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네. 말하자면 우리는 도래인이고, 11세기 초에 한반도에서 건너와 미야기현 시바다군에 자리를 잡았다네. 선조들은 철을 잘 다뤄 농기구와 무기들을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고 하네. 물론 칼을 잘 다루는 사무라이라는 존재도 거기서 나왔다고 하지. 내가 사무라이인 것도 다 그 뿌리는 도래인 선조들에 두고 있는 것이겠지. 조선인들은 알지 못 하겠지만, 일본에서의 역사 역시, 백제계와 신라계의 끊임없는 다툼이었고, 그 양상에 따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네. 백제가 한반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후, 일본에서는 둘 간의 충돌이 더욱 심해졌네. 한반도는 신라계가 주류를 이뤘고, 그것은 일본 내의 패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네. 결국에 가서는 일본은 백제계가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지만, 일본의 통일과정에서도 이런 경쟁이 표출되었고, 그것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한반도를 침략한 것이네. 다시 말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은, 전쟁을 통해 신라계와 백제계가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네.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내부의 적들은 서로 싸움을 멈추고 단결하여 진정한 일본인, 하나의 일본이 되었다는 뜻이지. 이런 의미에서, 1592년에 발발한 전쟁은 매우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 신라계인 나조차 과거 신라계 지배 구조로 엮...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33.꼬리아 델 리오(Coria del Rí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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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꼬리아 델 리오 석희 일행이 세비야에 도착하자마자, 아나 마르띤은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 중의 하나였다. 석희의 손을 잡은 그녀는 반가움의 눈물을 흘렸다. 쓰네나가 일행이 세비야를 출발해 마드리드로 급하게 갈 때, 석희가 개인적으로 써 준 감사의 편지는 시장에게 잘 전달되었다는 말도 했다. 아나를 다시 만난 석희도 기쁨이 컸다. 사실, 그녀와 헤어진 후, 그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머리에서 지우려 해도, 그럴수록 더 떠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가톨릭 전도사로서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둘씨네아를 말하면서, 한 여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는 게 기사라고 했고, 진정한 사랑이며, 명예라고 했을 때, 석희는 하마터면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할 뻔 했다. 성모 마리아의 자리에, 한 여인을 대신 올려놔야 한다고 말할 때, 석희 자신도 아나를 생각했었다. '꼬리아 델 리오' 마을은 세비야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한편, 세비야에 도착한 석희는 꼬레아 델 리오에 가보겠다고 말했고, 아나는 주저없이 동행하겠다고 했다. “나의 고향도 이렇게 생겼소.” “아, 예. 참 편안한 곳입니다.” 다시 찾은 마을은 생각했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작은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의 작은 광장이 형성되어 있지만, 집들과 길은 정비되지 않아, 대도시인 세비야에 비할 바 없는 그냥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다만, 세비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내려, 육로로 갔기에, 이동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마을 앞을 흐르...

[하루] 오리 네 마리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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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이 목줄을 풀어주기 위한 긴 작업(3월부터 11월)이 마무리 되는가 했는데, 오늘 다시 순정이가 밖으로 나갔다! 계속 보완에 보완을 거듭해오던 중이기에, 오늘 보수한 곳으로 이제 마무리 될 것 같은데.... 하기야, '개구멍'을 막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으니.... 어쨌든, 다시 순정이의 목줄을 풀어줬다! 그런데, 집 주변에 이렇게 작업을 하다가, 아주 멋진 공간을 발견했다! 소나무 두 그루가 만들어내는, 아주 아늑하고, 아주 소박하고, 아주 우아한 곳! 그곳에, 돌담을 쌓았고, 그곳에 이렇게 구조물을 만들어, (돌) 오리를 올려놨다! 그냥,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밤에 불을 밝혀보니, 바로 이 모습!!!! 과거에 작업해놓은 돌탑과 오늘 작업한 오리들의 쉼터는 집의 좌우에서 멋진 모습을 연출해준다!

[문예] 아스뚜리아스(Asturias), 스페인의 자존심(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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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 스페인의 국왕 펠리뻬 6세는 1968년에 태어났는데, 왕자시절에는 ‘쁘린시뻬 데 아스뚜리아스’(Principe de Asturias, 스페인에서는 왕위 계승자를 이렇게 명명하고 있다.)라고 명명되었다. 통상적으로 스페인 왕실에서는 왕자나 왕실의 가족이 새로 생기는 경우 각 지역, 특히 과거 왕국과 연결해서 작위를 부여해 왔으며, 이는 국가의 통일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스페인 왕실에서는 쁘린시뻬 데 아스뚜리아스인 ‘돈 펠리뻬 데 보르봉 이 그레시아’의 이름을 따서 상을 제정하여 자국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여러 분야의 공로자를 선정, 시상하고 있다. 말하자면 스페인의 노벨상에 해당한다.                                     펠리뻬 6세(Felipe VI) 아스뚜리아스의 기후는 다습하며 연평균 기온은 13도 정도이다. 바다 쪽으로는 어업이 성하지만, 내륙 쪽으로는 목축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산악 지역이기 때문에 광산이 많으며, 축산업을 통해 양질의 우유와 유제품이 만들어진다. 경작지는 별로 없으나 이곳에서는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가 생산된다. 대량 생산되는 사과는 스페인 전통 사이다라고 할 수 있는 ‘시드라’(Sidra)의 원료가 되며,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판매점 ‘시드레리아’(Sidreria)에서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시드라는 사과 주스에 탄산가스를 주입한 맛이 나는데, 더부룩한 속을 시원하게 달래 주는 음료이다. 시상식 ‘파바다 아스뚜리아나’(Fabada Astuiana)는 이 지방의 독특한 음식이다. 돼지의 발과 귀를 비롯한 여러 부위와 소시지 및 강낭콩을 섞어 만드는 이 음식은 한국에서 머리 고기나 내장류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입맛을 돋울 만한 것이며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물론 한국식으로 조리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 산...

[문예] 아스뚜리아스(Asturias), 스페인의 자존심(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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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투박하고 끈질긴 사람들을 찾으라고 하면 북부의 아스뚜리아스인들을 지칭해야 할 것 같다. 독립한 지 오래되었으며, 빠이스 바스꼬(Pais Vasco)만큼이나 순수성을 지키고 살았다. 아스뚜리아스 지역은 로마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서쪽의 갈리시아(Galicia)와 더불어 켈트족들의 터전이었다.                        아스뚜리아스 아스뚜리아스의 지형을 살펴보면 내륙 쪽으로는 산악이 버티고 있다. 삐꼬스 데 에우로빠(Picos de Europa)는 깐따브리아(Cantabria) 쪽보다는 아스뚜리아스 쪽에 더 많이 걸쳐 있으며, 그 줄기인 2,648미터의 또레 세레도(Torrecerredo, Torre de Cerredo) 산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다.  또레 세라다(Torre Cerrada) 산이 많으니 깊은 계곡이 많으며 물도 풍족하다. 풍부한 물을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전국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송어와 연어잡이도 흥행하고 있다. 아스뚜리아스는 험준한 지형으로 말미암아 남부에서 올라오는 끊임없는 외부 세력의 침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고, 로마인들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기원전 29년부터 19년까지 약 10년을 고생해야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스페인 전역에서 가장 로마화가 덜 된 곳이 되었다. 아스뚜리아스의 말은 강인하고 빠르기로 유명하여 로마의 네로 황제가 아스뚜리아스에서 보내온 말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때문에 아스뚜리아스는 아랍인들에게 대항해 국토 회복에 나섰던 전쟁의 본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전의 국토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이 전쟁을 ‘국토회복전쟁’ 또는 ‘레꽁끼스따’(Reconquista)라고 부른다. 이들은 아랍의 지배하에 들어가지 않은 순수 스페인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32.담배공장(Real Fábrica de Tabacos de Sev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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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담배공장 “저쪽이 담배공장!” 라몬이 소리쳤다. 그랬다. 어느덧 세비야에 들어왔다. 그라나다를 나와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스페인 남부의 들과 산은 온통 올리브 밭이었다. 아니, 올리브의 바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할 만큼 참으로 넓었다. 그리고 다시 세비야. 세비야의 왕립담배공장 지난 번 세비야 방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식 행사로 이어졌었다. 세비야에 입성하기 전에 외곽의 마을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행사 준비가 다 되었다는 전갈과 함께, 시청에서 내준 호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세비야에 들어갔었다. 세비야 체재 중에도 대부분 일정으로 짜 있어서, 개인적으로 다른 곳을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처음 대하는 유럽의 대도시가 제공하는 전혀 새로운 것들로 인해 완전히 위압당해서 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시청의 보호를 받으며 세비야 중앙광장에 나갔을 때, 정말 많은 인파들이 일행을 에워쌌다.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얼굴 생김새는 물론, 머리의 형태, 옷, 그리고 몸에 지닌 칼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세비야 성당 앞에 섰을 때, 건물은 대단히 웅장했다. 그 옆의 높은 탑 히랄따에 올랐다.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히랄따는 규모는 물론 높이가 일행을 압도했다. 그리고 맨 꼭대기 종탑이 있는 층에서 보이는 세비야는 참으로 거대한 도시였고, 아름다웠다. 일본의 그 어떤 도시도, 석희가 기억하는 조선의 그 어떤 것도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하지 않았다. 속이야 어떻든 건물의 규모와 건축양식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담배공장 정문 세비야에 처음 들어올 때, 과달끼비르 강가에 세워진 황금탑은 저녁 햇살을 받아, 건물 전체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갖는 부의 상징이었다. 처음 세비야를 방문했을 때는 시청에서 정해준 큰 것들 만 봐서 그런지, 담배공장은 방문하지 못 했었다. 그러나, 라몬의 안내로 살펴본 담배공장도 그리 작은 규모가 아님을 보고, 석희와 일행은 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