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움베르토 에코의 [돈키호테](III)
https://youtu.be/eoxr_FZWOhI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닮아 있을까요? 두 작품에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여러 명의 기록자와 번역자, 편집자가 등장합니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아드소의 수기가 마비용과 발레를 거쳐 에코에게 전달됩니다. 이 과정은 하나의 텍스트가 해석과 번역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형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세르반테스 역시 『돈키호테』의 진짜 작가를 아랍인 연대기 작가 시데 아메떼 베넹헬리라고 설정합니다. 세르반테스 자신은 창조자라기보다 원고를 편집하고 구성하는 사람으로 자리합니다. 이처럼 두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와 서술 층위를 겹쳐 놓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서사 형식을 우리는 ‘액자구조’ 또는 ‘액자소설’이라고 부릅니다. 액자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지금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진짜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바로 여기에서 현대문학의 중요한 개념인 ‘작가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작가의 죽음’은 작가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의미를 작가의 의도 하나로 결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역시 작품이 완성되면 작가는 작품의 해석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작가가 권위를 내려놓는 순간 작품은 독자에게 열리고, 독자의 해석이 시작됩니다. 에코가 말한 ‘열린 작품’은 바로 이러한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전제로 합니다.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 역시 창작을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배열로 바라봅니다.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또한 자신을 작품의 첫 번째 독자와 같은 위치에 놓습니다. 결국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새로운 해석의 공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열린 공간에서 독자는 단순한 독자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공동 창작자’가 됩니다. #움베르토에코 #장미의이름 #세르반테스 ...